트와이스 vs I.O.I 2차전

2016.11.02
I.O.I의 ‘너무너무너무’는 박진영이 프로듀싱했다. 트와이스의 ‘TT’는 박진영의 작품이 아니지만, JYP 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기획 안에서 탄생했다. JYP를 교집합 삼아 유사한 여성상을 보여주면서도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 두 걸 그룹에 대해 김윤하 음악평론가와 황효진 기자가 이야기했다.



트와이스 ‘TT’, 무해하게 예쁜 걸 그룹의 딜레마
‘TT’는 백아연이 쓴 곡의 트와이스 버전 같다. “콧노래가 나오다가 나도 몰래 / 눈물 날 것 같애 / 아닌 것 같애 내가 아닌 것 같애”라거나 “이미 난 다 컸다고 생각하는데 / 어쩌면 내 맘인데 왜 /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건 왜” 등의 가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끼고 달라지는 자신에게 당혹스러워하는 소녀의 마음을 보여준다. 사실은 나도 널 좋아하지만 상처 입을까 봐 겁이 나서 튕기고 있으니 다가와 달라던 ‘CHEER UP’보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곡이지만, 뮤직비디오는 전작과 거의 흡사하다. 할로윈을 알리바이 삼아 엘사와 피노키오, 인어공주, 토끼 등 다양한 의상을 입은 멤버들의 모습은 코스튬플레이로 활용될 뿐이며, 노래의 메시지나 콘셉트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조금 더 복잡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비주얼로 풀어낼 수 있었음에도 ‘TT’의 뮤직비디오는 예쁘고 귀여운 걸 원한다면 기대를 충족시켜주겠다는 의도, 딱 거기에 멈춘다. 그 결과 곡과 비주얼 콘셉트는 별개의 기획처럼 보일 정도다.

데뷔 당시 멤버들 각자의 외모를 강조하는 전략은 대중적 인지도를 빠르게 획득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CHEER UP’을 지나 세 번째 활동에 이른 현재, 멤버들의 각각 다른 이미지는 예쁘고 귀엽고 무해한 소녀들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로 납작하게 수렴된다. 특히 모모와 지효를 다루는 방식은 ‘TT’의 문제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OOH-AHH하게’와 ‘CHEER UP’에는 댄스브레이크가 있었고, 해당 파트는 모모의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부각하는 동시에 수동적인 여성상을 노래해도 생기가 넘칠 수 있는 트와이스 특유의 얼굴을 완성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지효의 내지르는 보컬 또한 팀의 기세를 연출한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그러나 댄스브레이크가 없는 ‘TT’에서 모모는 팅커벨 분장을 하고 양갈래 헤어스타일을 하는 등 귀여움을 한껏 강조하며, 지효의 목소리는 간드러진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애교스러운 톤으로 활용된다.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방에게 삐친 척 팔을 허리 쪽에 얹거나, 손으로 ‘TT’ 모양을 만들며 팔자 눈썹을 한 채 몸을 살짝 흔드는 후렴구의 안무도 퍼포먼스라기보다는 앙탈과 애교 사이에 있다.

‘OOH-AHH하게’에서는 도도하지만 접근 가능성을 열어놓은 여성이었고, ‘CHEER UP’에서는 도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랑받길 원하는 여성이었다. ‘OOH-AHH하게’부터 ‘TT’까지 소녀가 사랑을 알아간다는 나름의 스토리는 존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률적으로 ‘무해한 예쁨’만을 강조하는 기획 안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보다 상대방, 특히 남성의 취향에 맞추겠다는 수동적인 여성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CHEER UP’에서 사나에게 굳이 ‘샤샤샤(Shy Shy Shy)’ 파트를 맡긴 것은 발음이 서툴러서 귀엽다고 여겨지는 ‘무해한’ 일본 출신 여성에 관한 판타지를 이용한 전략이나 다름없었다. ‘TT’ 뮤직비디오의 코스프레는 트와이스의 서사와 결합하며 ‘좋아하는 사람의 판타지를 위해서는 코스프레까지 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사이 한 명 한 명 다른 생기로 빛나던 멤버들의 얼굴은 점차 흐릿해진다. 아이돌 산업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에 힘을 더하는 것은 결국 멤버들 각자의 뚜렷한 캐릭터고, 시장 바깥에서는 수동적이며 무해한 여성상을 거부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진다. 아마 트와이스의 다음 단계는 데뷔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I.O.I, 살아남은 자들이 만든 세계

Mnet [프로듀스 101]에서 투표를 통해 데뷔한 걸 그룹 I.O.I는 데뷔곡 ‘Dream Girls’에서 시대의 변화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걸 그룹 클리셰로 범벅된 노래를 불러야만 했고, ‘Whatta Man’에서는 각 소속사의 사정에 의해 7명으로만 활동해야 했다. 그리고 사실상 마지막 활동이 될 가능성이 높은 ‘너무너무너무’는 이들이 마지막 인사조차 속 시원히 하기 어렵게 만든다. 후렴구인 “너무너무너무”를 중심으로 멜로디를 반복하는 구성은 미나의 랩이 신선함을 더한 것 외에는 어떤 개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남자들은 똑같대 믿지 말래 사랑한다는 말” 때문에 “아직 난 네 마음만 믿고 마음을 열 수는 없어”라고 말하는 여성화자의 모습은 작사가 박진영의 철 지난 여성관뿐만 아니라 그가 제작자로 있는 JYP 엔터테인먼트의 걸 그룹, 트와이스가 ‘CHEER UP’에서 보여주며 공분을 산 모습 그대로를 답습한다. I.O.I가 지난 1년여 동안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건 [프로듀스 101]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거치며 증명하고 만들어낸 각자의 매력과 캐릭터에 있지만,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히 그들만을 위한 무대를 갖기 어렵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I.O.I는 어느 걸 그룹이나 불러도 될 법한 이 평범한 노래에서 기어코 빛난다. ‘너무’, ‘자꾸’, ‘미안’ 같은 단어를 주기적으로 반복시키는 노래나 귀엽게 꾸며낸 목소리는 첫 만남에도 한 달은 반복해 들은 듯한 익숙함을 전하지만, 각기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멤버들은 그 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한다. 에이핑크에서 레드벨벳까지 걸 그룹의 파스텔톤 영상을 짜깁기한 기시감을 전하는 뮤직비디오 속에서도, 멤버들은 자신이 클로즈업되는 순간마다 강렬하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지난 1년여간의 활동은 이들이 각자 어떤 매력을 가졌는지를 대중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한 유예기간이었고, 덕분에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파트를 불러도 최유정과 주결경의 그것은 근본부터가 다르다. 무대 위 뜬금없이 펼쳐지는 전소미의 발차기는 그 자체만으로는 당황스럽지만, 여러 활동을 통해 자신이 태권도 유단자임을 밝혀온 덕에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마냥 귀엽고 수줍은 소녀를 연기해야 하는 숨 막히도록 고정된 역할 속에서도, I.O.I는 곡과 안무의 틀을 찢고 자신들의 개성을 표현해 낸다. ‘너무너무너무’가 지금 음악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제작자들이 걸 그룹을 그려내는 방식을 보여준다면, I.O.I는 그 속에서 걸 그룹 멤버들이 직접 자신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그로 인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명력을 증명한다.

데뷔 후 처음으로 ‘완전체’로 1위를 차지한 뒤 펼쳐진 앵콜 무대에서, I.O.I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무대 중앙에서 울음이 터져버린 미나를 끌어안으며 동시에 오열하는 세정이 있었고, 소혜는 바로 그 곁에서 누구보다 해맑은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1위가 주는 희열에 서로 마주 보며 팔짱을 끼고 몸을 흔들며 어쩔 줄 모르는 소미와 결경을 지나친 카메라는 어느새 조명도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등을 돌리고 울고 있는 유정을 비췄다. 이것은 비단 I.O.I만의 일은 아니다. 긴 연습생 생활과 고된 신인 시절을 거쳐 끝내 1위 트로피를 거머쥔 아이돌 그룹들은 대부분 웃거나 환호하거나 울거나 날뛰거나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그 모든 유형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경험은 그리 흔치 않다. 그것이 서바이벌을 통해 문득 하나의 팀이 된, 시작부터 이상했던 이 팀을 계속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었다.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글. 김윤하(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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