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성석제, 정이현의 신작은 어떤가요?

2016.11.02
천명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제목 그대로다. 이 소설에는 보통 ‘수컷’으로 표현되는 남자와 그들이 살아가는 우연 가득한 세상이 있다. 천명관의 ‘구라’에 술술 풀려나오는 이들은 조직폭력배라고 부르기도 조금 부족한 건달들이다. 인천과 안산, 영암과 부산의 건달들이 밀수된 다이아와 35억짜리 종마를 사이에 두고 대소동을 벌인다. 생매장이 되었지만 사흘 만에 구덩이를 뚫고 살아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처단하고 인천 바닥을 통일했다는 주인공이 바로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양 사장이다. 거기에 이름보다는 별명, 직함으로 통칭되는 남자들이 우글우글 모여 폭력과 직감으로 해결되는 세계에서 지지고 볶는다. 

짐작했겠지만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소위 ‘알탕 영화’와 거의 동일한 서사구조,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검사나 형사가 등장하지 않을 뿐, ‘수컷’들의 사고 구조나 이야기 전개에 대한 상상력은 놀랄 만큼 흡사하다. 누군가 사기를 쳐서 도망을 갔다면 그곳은 십중팔구 베트남이나 필리핀이며, 복수의 댓가는 손가락이나 팔로 받는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등장하는 남자들이 모두 이유도 모른 채 싸우고 나동그라지는 순간을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마치 끔찍한 전쟁이라도 치른 듯 하나같이 아수라 같은 몰골이 되어갔다”고 묘사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기시감이 들 정도다. 지금까지 비슷한 남자들을 차고 넘치게 봐왔기에 이들에게 연민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름을 가진 여성은 두 명 등장하지만 마주치지도 않기 때문에 영화였다면 벡델테스트를 당연히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비록 간절히 남성성을 열망하는 여성일지언정, 세 세대에 걸친 여성의 욕망이 이글거리던 [고래]의 세계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이다. 심지어 반대 방향으로.
글. 윤이나(칼럼니스트)

성석제 [믜리도 괴리도 업시]
성석제의 신작에 대해 말하는 일이 내게는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성석제의 소설이다, 라는 설명으로 충분하고 그런 소설가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오해하면 안 된다. 설명이 필요 없는 걸작이라는 말이 아니다. 성석제가 늘 비슷비슷한 소설만 쓴다는 말도 아니다. 성석제를 좋아하는 독자는 좋아할 소설이고 성석제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는 좋아하지 않을 소설이라는 말이다. [믜리도 괴리도 업시]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라면 인용하지 않고는 못 배길 문장이 있다. 첫 번째 단편 ‘블랙박스’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사. 작중 화자(소설가)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형님, 문학이 별거예요? 그냥 노가리 까고 생각나는 걸 글로 쓰면 문학이지. 문학은 말로만 해도 되니까 과외나 비싼 레슨 받아야 하는 그림이나 음악보다 훨씬 쉽죠.”

과연 그럴까? 성석제는 말로만 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는 소설이 실은 말로만 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특유의 말솜씨로 보여준다. 확실히 성석제의 이전 소설들을 특징짓던 ‘구수한 입담’이나 ‘터져 나오는 웃음’이 덜하기는 하다. 상관없다. 만약 당신이 이 소설집을 읽고 성석제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이전 작품들을 찾아 읽으면 되니까. 아니라면, 이전 작품들을 아무리 찾아 읽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성석제를 좋아하는 당신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일 수 있다. 성석제를 좋아하지 않는 당신 또한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일 수 있다. 하지만 성석제에 대한 호오가 없다면, 당신은 소설을 읽지 않는 독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당신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글. 금정연(서평가)

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
도시의 사람들에 대해, 정이현은 꽤 잘 알고 있다. 똑같은 모양을 한 집들로 서둘러 귀가해, 옆집과 같은 TV프로를 보고 같은 것에 분노하고 또 비슷한 타이밍으로 잊어버리며 내일 하루를 위해 노력해 잠드는 이들의 세계. 그 삶의 판타지가 무엇인지도 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끈 [달콤한 나의 도시]가 그랬다. 읽지 않고도 어렴풋하게 정이현을 알 것도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단편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는 상냥한 주먹을 날린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서랍 속의 집’의 주인공은 진과 유원이다. 결혼하고 6년, 세 번의 이사, 맞벌이,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 그들은 새 집을 알아봐야 한다. 전세금이 너무 올랐다. 무리해서라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로 했는데, ‘마침’ 시세보다 참 싼 가격에 나온 아파트가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사는 전셋집 계약을 할 때 이런 대목이 있다. 계약서를 써야 하는데 집주인이 늦게 자줏빛 SUV를 타고 등장했다. 유원이 진의 귀에 속삭였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야.” 나는 그만 이 대목에서 웃고 말았다. 집주인이 충분히 부유하면 그만큼 너그러우리라는 기대가, 자기는 탈 일이 없을 차를 끄는 사람에 대한 선망이 그 안에 숨어있었다. 나도 말하거나 들은 속삭임들. 어쨌거나 그들은 새 집을 사기로 한다. 그리고 이삿날,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단편마다 긴 주석을 달고 싶어지는 책이다. 주석이라고 해야 하나. 일기라고 해야 할까. 가까스로 그러모은 용기가 한숨에 흩어진다. 쓴웃음이 난다. 이것이 당신의 세계, 나의 도시. 달콤하고 상냥한 것들의 전말이다.
글. 이다혜([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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