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달을 판 사나이], 모두의 달을 만든 SF

2016.11.04
SF에서 달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달은 신화나 문학 속에서 언제나 중요한 소재로 다뤄지기는 했다. 하지만 가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나 “달이 참 아름답네요”라는 문장과 같이 일종의 상징 혹은 은유로만 기능하는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SF에서의 달은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논리적인 필연성을 요구하는 공간이다. 초자연적인 무언가의 개입이 없이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신체를 온전하게 보존한 채로 달 표면 위에 두 발을 얹어놓지 않고서는 머리가 돌아버릴 인간들로 득시글한 동네인 것이다.

달을 향한 SF작가들의 열망은 과학사를 뒤흔드는 결정적 사건으로 이어졌다. 쥘 베른의 [달나라 여행]은 그 책을 읽고 자란 다음 세대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었고 이는 치올코프스키나 고다르와 같이 인간이 탈 수 있는 크기의 로켓을 만들어 달로 떠난다는 꿈에 이론적인 설계를 더하는 과학자들의 탄생으로, 인류 최초로 인간이 달 위에 한발자국을 남긴 아폴로 계획으로 구체화되었다. 로버트 A. 하인라인 단편집 [달을 판 사나이] 역시 꿈을 꾸는 사람들의 미래사에 대한 기록이다. 주인공들은 꿈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선지자인 동시에 개척자이고 순교자이기까지 하다. 다른 이들은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용하려고만 할 뿐이지만 이 인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어쩌면 이에 굴하지 않는 스스로에 도취되어―아집을 지킨다. 등장하는 인물상에 대한 소개로 미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무척 낡았다. 여성이나 노조 그리고 냉전을 다루는 방식은 이제 와서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지점이 많다. 책의 완성도 또한 그렇다. 표지나 편집 모두 30년은 묵은 느낌이며 자잘한 오탈자에 원문이 짐작될 직역과 뜬금없는 주석은 전문편집자의 원칙보다는 팬보이의 감성에 가깝다.

[달을 판 사나이]는 불새 출판사의 과학소설 걸작선의 첫 번째 책이다. 불새 출판사는 시작 당시 SF팬덤과 장르출판계에서 많은 이목을 모았었다. 돈이 되지 않기로 소문이 난 SF, 그것도 고전명작들을 다루는 1인 출판사의 출범은 희망찬 기대로든 우려로 가득한 지적이든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아쉽게도 결과는 후자의 예측대로였다. 얼마 전 불새 출판사가 두 번째로 문을 닫았다. 첫 번째 폐업 때는 많은 독자들이 응원의 목소리를 보태고 대표의 결단 덕분에 소생할 수 있었지만 그리 긴 기간을 담보하지는 못했다. 결국 들려온 두 번째 폐업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기획력의 부재나 홍보의 부족 등 전략적인 차원에서의 아쉬움이 소회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결과와 무관하게 원하는 것을 향해 전진한 출판인이 처음으로 출간했던 책의 이야기가 떠오를 뿐이다.

[달을 판 사나이]의 원제는 [The Man Who Sold the Moon]이다. 소설의 내용을 고려했을 때 이 제목은 ‘달을 팔아버린 사람’ 혹은 ‘달을 팔아버리고 만 사람’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법의 허점을 찾고 언론을 농락하며 대중을 상대로 야바위를 벌여 인류 최초로 달을 향한 사람이 탄 로켓을 쏘아올린 남자, 디디 해리먼은 그 여정 속에서 마음속에 간직했던 꿈을 접어야만 했으니까. 여기에 대해 누군가는 실패라고, 누군가는 포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비록 그가 달을 팔아버렸다고 할지라도 그 덕분에 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달을 갖게 되었으며 그에게 일종의 빚을 지게 되었을 뿐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일종의 차용증으로서 나의 서재 한가운데에 간직하고자 한다.

dcdc
영화배우 김꽃비의 팬. SF작가. 장편 [무안만용 가르바니온], 단편집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 출간.



목록

SPECIAL

image [신혼일기]

MAGAZINE

  • imageVol.168
  • imageVol.167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