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BL 웹 드라마에는 국경이 없다

2016.11.04
지난 2월 22일, 중국 웹 드라마 [상은]은 서비스 중이던 플랫폼 ‘텐센트’와 ‘아이치이’에서 삭제됐다. 공개된 지 약 한 달만의 일이었다. 제작사와 작가, 플랫폼 관계자 중 누구도 공식적인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중국 매체와 이용자들은 동성애라는 소재 때문일 거라고 추측했다. 2014년에는 BL(Boys Love, 남성과 남성의 로맨스를 다루는 장르) 팬픽을 썼던 20대 여성들이 체포당한 바 있으며, 중국의 미디어를 총괄 관리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하 광전총국)이 발표한 ‘드라마콘텐츠제작통칙’에는 “TV 프로그램은 근친상간, 동성애, 성 도착, 성폭행, 성적 학대, 성 폭력 등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상은]은 부잣집 아들이자 반항아인 구하이(황경유)와 가난하고 공부 잘하는 소년 루인(허위주)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작품으로, 둘의 스킨십이나 서로를 향한 감정이 직접적으로 다뤄진다. 두 주연 배우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쾌락대본영]은 아예 방영조차 되지 못했으며, 황경유의 [극속적진] 합류는 무산되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중국은 BL의 불모지 같지만, 상황은 오히려 반대다. 지금 중국에서는 BL 웹 콘텐츠가 특산품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기획사 대표인 위원(레오)과 그의 죽은 동생을 닮은 택배 배달원 광광(루카스)을 주인공으로 한 [착생]에 더해 [불가항력], [쌍정], [유사애정], [Goodbye Mr.X], [성세]까지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BL, 중국어로 ‘단메이(耽美)’라고 하는 이 장르는 하나의 뚜렷한 흐름이 되고 있다. 정효정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한콘진) 북경사무소 주임은 엄격한 규제와 온라인 BL물의 유행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2016년 초 광전총국에서 전통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관리감독 기준을 동일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천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국 콘텐츠 전문가들의 평가다.” 빠르게 성장하는 웹 콘텐츠 시장에서 규제는 과도기적이며, 때문에 아직까지는 “[상은]처럼 입소문을 타고 인기가 많아져야 광전총국의 눈에 띄게 된다.”(한콘진 장민지 박사) 가령 지난해 8월 공개된 [역습지애상정적]은 제재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BL을 표방하지만 남성의 영혼이 여성의 몸에 들어갔다는 설정을 활용하는 [착생] 역시 콘텐츠 삭제 혹은 주연 배우 활동 제한 등의 조치를 당하지 않았다. 크게 화제가 되지 않거나, 동성애를 다룬다 해도 직접적인 묘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광전총국의 검열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BL 장르 자체의 인기가 너무 많아서 규제를 하려고 해도 어려워지는 경우가 생긴다.”(장민지 박사) [상은]은 서비스를 개시한 지 단 이틀 만에 조회수 1,000만 건을 기록했다. 전체 웹 콘텐츠 중 BL이 마이너한 장르라 해도, 워낙 인구가 많은 중국의 특성상 절대적인 숫자로 따지자면 결코 마이너하지 않은 셈이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의 광고 수입이 2015년 1분기에만 약 41억 위안(한화 약 6,874억 원. 중국 리서치 전문기관 ‘이꽌즐쿠’ 자료)을 기록하는 등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어떤 장르든 열성적인 팬 층이 존재한다면 콘텐츠 공개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BL의 경우 이 열성적인 팬 층은 일본의 ‘후죠시(腐女子)’처럼 자신을 ‘푸누(腐女)’, 즉 ‘썩은 여자’라고 칭하는 여성들이다. 중국 매체 [글로벌타임즈]는 올해 9월 크리스티나 양이라는 27세 여성을 중심으로 BL 문화에 대해 취재한 바 있는데, 이 여성은 15세에 BL 소설을 처음 접한 이후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100권이 넘는 BL 소설과 만화를 읽었으며 현재는 ‘바이두 티에바’에 개설된 회원 2백만 명 규모의 BL 팬클럽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BL 사극 [신여불신정]에 빠져 있다거나 “주변 친구들 10명 중 3명은 BL 팬”이라는 증언도 함께였다. 중국 독립 미디어 사이트 [오락천천설]의 작가 신디 리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기사에서 “주로 1995년 이후 태어난 젊은 여성들이 남성들 간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와 소설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런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이 유명해지면서 팬들은 이들을 만나기 위해 10,000위안(한화 약 167만원)을 기꺼이 지불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의 이러한 변화는 비슷한 취향의 소비자들이 존재하는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끼친다. 유튜브로 세계 곳곳에서 올린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중국 BL 웹 콘텐츠가 어떻게 아시아 곳곳으로 퍼졌냐는 의문은 품을 필요도 없다. [상은]의 영상에는 태국어와 영어, 한국어 자막이 각각 달린 채 퍼지고, 배우들은 중국과 대만, 태국, 한국을 차례로 돌며 팬미팅 혹은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11월 중 [상은] 스페셜 에디션이 케이블 TV VOD 및 IPTV를 통해 공개되며, 황경유의 팬 미팅 또한 예정되어 있다. 지난 8월 많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출간된 [상은] 웹 소설은 리디북스 BL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 중이다. 현정환 리디북스 콘텐츠그룹 실장은 “최근에도 [불가항력]의 원작이나 [상은]을 쓴 차이지단 작가의 다른 웹 소설에 대한 문의가 많은 만큼 중국 콘텐츠를 예전보다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어려서부터 BL 문화를 향유해온 여성들이 콘텐츠의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 잡고, 모바일 산업의 급격한 발달까지 더해지자 음지에서만 소비되던 BL의 시장성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BL이 중국의 최고 수출품 중 하나가 될 줄은 몰랐다. BL로 아시아가 하나 될 줄은, 더더욱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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