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희섭│①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다”

2016.11.04
오래된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고 죽은 것처럼 살아가던 남자는 죽음과 가까이 살고 있는 여자와 만난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혼자였던 두 사람은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간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한적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쓸쓸하지만 애틋한 정서를 담아낸 영화 [흔들리는 물결]은 주인공 연우 역을 맡은 심희섭의 잔잔한 얼굴 위로 흘러가는 작품이다. 3년 전, [변호인]의 군의관 윤 중위 역으로 그가 보여줬던 단단하고 맑은 눈빛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반가울 것이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그리고 부드러운 표정 뒤에 방심할 수 없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배우 심희섭을 만났다.

[흔들리는 물결] 시사회에서, 이번이 첫 주연작인데 마지막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희섭
: 진심이다. (웃음) 

지금까지의 분위기는 어떤 것 같나. 
심희섭
: 주위 분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셔서 분위기는 좋은 것 같고, 멜로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도 있는 것 같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하며 여덟 번 정도 봤는데, 누구보다도 내가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충북 단양이 배경이라 로케이션의 90%가 단양에서 이루어졌다고 들었다. 많은 이야기가 서울이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데, 단양에서의 촬영은 어땠나. 
심희섭
: 촬영 전에 감독님과 한 번 둘러보러 갔던 적이 있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단양은 이름을 자주 들어 알고 있던 도시니까 아주 외진 곳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었는데 가보니 생각보다 더 조용하고 너무 차분한 분위기라 놀랐다. 막상 촬영하면서는 같은 장소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 특별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데, 완성된 후 스크린을 통해 보고 나니 연우가 태어나고 자라온 곳이 어떤 공간인지에 대해 전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와 닿았다.

촬영 외의 시간에는 뭘 하면서 지냈나.
심희섭
: 아침부터 저녁까지 찍고, 밤을 새우는 촬영도 많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봄이라 쉬는 시간이 생기면 다른 분들은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가기도 하셨는데 나는 무서워서 못 했다. 혹시라도 배우가 다치면 안 되는 상황이기도 하니까.

바이크를 타는 신이 많던데, 그건 무섭지 않았나.
심희섭
: 사실 촬영을 앞두고 급하게 면허를 딴 거다. 일정상 학원을 3, 4주 다니고 바로 시험을 봐서 한 번에 합격을 해야 했다. 필기에 코스까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바로 붙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합격률이 2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 (웃음) 운이 좋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첫 촬영이 바이크를 타고 출근하는 신이어서 엄청나게 긴장했다. 그때 테이크를 여러 번 갔다. 사실 주연으로서의 부담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타이틀보다도 오히려 바이크를 타는 거나 수영처럼 연기 외의 영역이면서 연기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부담이 더 컸다. 그런 건 별도의 실력이 필요하고, 잘 못 하면 관객들의 몰입이 깨져버리니까.

강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신이 있는데, 원래 수영을 잘하는 편인가. 
심희섭
: 다행히 배운 적이 있고, 수영을 좋아한다. 2년 전, 시간이 많을 때 뭐라도 해야겠는데 수영을 배워두면 언젠가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동네 구민회관 수영장에 갔다. 주 3회 4만 6천 원이라 다른 곳보다 가격이 확실히 싸고 시간도 적당하고. 낮 2시 타임이었는데 우리 반은 전부 어머님들이시고 남자는 나 혼자이다 보니 다들 좋아해주셨다. (웃음)

2년 전이면 [변호인]에 출연한 이후 아닌가. 
심희섭
: 아무도 못 알아보셨다. 알아보시는 게 더 신기하지 않았을까. 그냥 취업 준비 중인 백수라고 했더니 2주 정도 빠지기라도 하면 취업이 된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 (웃음) 자유형부터 접영까지 기본적인 영법은 다 배웠다. 마음먹고 하면 500m 정도는 갈 수 있다. 물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좋고, 묘하게 해방감이 든다. 열심히 해서 건강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운동하면서 뭔가 해소되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요즘도 가끔 가서 하고 온다.

다른 운동도 좋아하는 편인가. 
심희섭
: 러닝이나 자전거도 좋아하고, 얼마 전부터 축구도 한다. [1999, 면회]를 만드신 광화문 시네마의 감독님들이랑 배우들, 지인들이 모여서 ‘제한구역’이라는 팀을 만들었다. 김창환이나 이이경 같은 친구들도 같이 하고. 나는 자주 안 나가다가 요즘에 열심히 나가고 있다. 목요일마다 하는데 포지션은 여기저기, 감독님들이 많기 때문에 뛰라는 대로 뛴다. (웃음)

[흔들리는 물결]의 연우는 죽음을 가까이서 겪은 이후 자기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말수는 물론 감정 표현도 아주 적은데, 연기하는 데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심희섭
: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진심을 전달하는 게 감독님이 원하시는 방식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그 감정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상태인데, 거기까지 다가가는 게 정말 힘들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남이 볼 때는 아닌 경우도 있고. 연우의 심경과 상태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막막했다.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다.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 편인가?
심희섭
: 과거를 떠올린다. 예전에 집중이 잘 되었을 때의 상태를 생각하면서 자신감을 찾으려고 한다. 아니면 아예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혼란스러울 때 뭔가를 더 하려고 하면 걷잡을 수 없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운동을 좋아한다. 집중하다 보면 차분해질 수 있으니까.

연기를 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나. 
심희섭
: 평범했다.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남동생이 있긴 하지만 역시 조용한 편이라 그냥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뭔가에 몰두하는 성격이라기보다는 쓸데없는 생각 많이 하면서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남들이 볼 때 끼가 있거나 활발한 성격이 전혀 아니다 보니 처음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도 굉장히 신기해하셨다. 아마 군대 다녀오고 나면 다른 일 할 거라 생각하셨을 텐데 계속 연기를 하니까 놀라셨지만 말리시지는 않았다.

그렇게 조용한 성격인데 어떻게 이 길로 접어들게 된 건가. 
심희섭
: 고등학교 때 수업의 일환으로 연극을 보러 갔는데,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스스로 답답할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워낙 조용하고 표현을 잘 안 하는 성격인데 배우들이 무대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걸 보고 매료됐다. ‘저럴 수도 있구나,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그렇다고 이걸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입시를 앞뒀을 때니까 대학에 가야겠다는 압박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연극영화과에 가서는 많이 놀았다. 

뭘 하고 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나. 
심희섭
: 술을 좋아해서, 술밖에 안 먹었다. 그냥 사람들과 어울리고 술 먹고 MT 가서 술 먹고, 그 자체가 재미있었다. 술자리를 주도하거나 나서서 뭘 하는 성격은 아닌데 혼자서 꾸준히 마시는 편이다. 그렇게 지내다 군대 다녀와서 다시 연기에 재미를 느끼고 그 후로 3년 동안은 극장에서 거의 살면서 연극만 열몇 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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