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뉴스룸의 영리함

2016.11.08
미국 보스턴에서 오랫동안 벌어졌던 가톨릭 아동 성추행 사건의 취재과정을 소재로 한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무슨 통쾌한 폭로의 순간이 아니다. 취재팀 기자들이 이미 수집한 수십 건의 피해사례를 당장 공표하고자 할 때, 편집장은 그들을 제지한다. 이대로 내면 그냥 잠시 경악하고 끝이니, 사건의 방치와 은폐가 윗선에서 내려온 체계적 문제임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심층 보도의 목표는 무슨 악행에 대한 표면적 충격이 아니다. 사회에 박혀 있던 깊숙한 오작동을 끄집어내는 공공성, 그것을 빼도 박도 못하게 직면시키는 전략성으로 이뤄진 이슈화여야 한다. 우리에게 좀 더 가까운 예를 들자면 그간 국가 정책 자체가 아예 엉뚱한 이들의 유사 종교적 농단으로 이뤄져왔고 정권세력이 그것을 방기해왔다는 공적 문제를, 그 누구도 얼버무리지 못하게 시민들에게 각인시키는 것 말이다. 그것이 바로 속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손석희가 이끄는 JTBC 뉴스팀을 돋보이게 한 부분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 이번 사태는 원정도박, 대학입시 특혜, 청와대 비서관 부동산 비리, 스포츠 재단 자금 출연 등 여러 구석에서 물의가 드러나던 와중에 일어났다. 특히 지속적으로 관련 사안을 다각적으로 추적 보도해서 정보의 바탕을 다져준 [한겨레]의 공은 크다. 하지만 JTBC는 결정적 순간에, 모든 사건의 연결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그것이 정권의 체계적 문제임을 시민들에게 일거에 설득시켰다. 공무 자격을 부여받은 적 없고 수상쩍은 사적 친분으로 엮인 이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에 관여해왔다는 사실을 캐낸 것이다.

JTBC가 취재활동을 통해서 파일이 담긴 태블릿PC라는 결정적 증거자료를 확보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돌파구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자료의 공공적 함의를 제대로 파악하여 체계적 문제를 드러내는 쪽으로 활용했다는 부분이다. 또한 호스트클럽이 어떻다느니 누구와 출산을 했다느니 온갖 자극적인 사적 정보들로 화제성을 따라잡고자 하던 어떤 매체들과 달리, 국정농단이라는 공적인 요소만 골라내서 다루는 절제력을 발휘했다. 사실 TV조선도 그보다 최소한 수개월 전에, 비슷한 수준의 함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을 자료를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바로 해당 개인이 대통령 의상실을 관장하는 상당량의 영상자료였는데, 공적 함의 찾기를 방기하고는 JTBC가 이뤄낸 국면전환 이후에야 부랴부랴 특종이라며 풀어놓기 시작했다.

전략성의 측면은, 첫 제기로 인해 모기업이 청와대의 본격적 공격을 받자 이내 침묵해버린 TV조선의 전철을 걷지 않고, 이슈화를 최대한 이끌어내도록 턴제 게임형 정보공개 배분을 적용한 것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JTBC가 해당 개인이 청와대 연설문을 농단했다는 뉴스를 측근 증언을 근거로 들어 방송하고 나자,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비서실장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잘라냈다. 그 직후에 비로소, 태블릿PC로 파일을 이미 확보했음을 방송했다. 박 대통령이 첫 번째 대국민사과에서 개인적 소감 정도만 교환했다고 다시금 대처하자, 국가 기밀급 정보를 마음껏 받아보았다는 분석을 방송했다. 정권의 줄을 붙잡고 있던 의원이나 최순실 본인이 인터뷰로 태블릿의 주인을 알 수 없다고 나오자, 이번에는 해당 기기로 찍은 셀카 사진들을 공개했다. 상대측이 뿌리는 오정보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연이어 의제를 집중시키고 주도해나가는 작전을 성공시킨 셈이다.

중요 단서를 찾아 공적 사안의 체계적 문제로 철저하게 집중시키기, 그리고 향후 벌어질 정보 공방전까지 염두에 둔 공개 방식의 결합은 그만큼 대단했고, 향후 모든 언론이 참조해야할 지점이다. 물론 이번 JTBC의 보도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이전에도 수차례 지적된 바 있는 타 언론사 자료의 출처 없는 인용 문제가 이번에도 다시금 발생한 것, 혹은 이번 정국을 설명하며 사안의 앞길을 닦아주었던 [한겨레]나 TV조선, 이대 학생 시위 등의 역할을 가벼이 넘어간 점 등이 그렇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JTBC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는 한국에서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 규범을 거의 이상적으로 실천해준 사례로 남을 것이다. 다만 거기 더하여 모두의 기여를 제대로 알려내는 미덕까지 발휘할 때, 이슈화라는 원래의 목표 또한 모두의 도움 속에서 한 층 불붙게 된다는 것도 명심해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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