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나라│②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가십과 사사로움

2016.11.08
박근혜 대통령의 40년 지기, 비덱 스포츠의 실소유주 최순실 씨(최서원으로 개명)를 둘러싼 권력형 비리 사건들이 국정을 거의 마비시켰다. 끊임없이 폭로가 터져 나왔다. JTBC는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를 입수했고, [세계일보]는 유럽 어딘가에서 최 씨의 눈물 어린 해명을 받아 적었고, TV 조선은 ‘강남 의상실 도촬 영상’을 공개했다. 그리고 ‘특종’을 놓친 언론들은 온갖 가십과 ‘드립’들을 막 던지기 시작했다. 최 씨가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한 뒤인 11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다”며 고개 숙였지만, 이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는 그렇게 마무리될 만큼 ‘사사로운’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어떤 언론들은 이를 사사로운 이야기로 비추어냈다.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국민의 ‘모를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질 만큼.

‘강남 아줌마’라고 불렀다.
10월 25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받아 수정했다는 보도에 대해 한 강연에서 “위정자들이 헌법 제1조 1항과 2항에 대해 늘 심각하게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과연 강남에 사는 웬 아주머니가 대통령 연설을 저렇게 뜯어고치는 일이 어떻게 벌어지냐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알다시피 헌법 제1조 1, 2항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이제 와서 헌법의 가치를 논하는 게 너무 새삼스럽긴 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런 자격도 공식 직함도 없는 민간인이 단지 친분을 매개로 국가통수권자의 공적 발화에 수시로 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을 비판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정보 값을 갖지 못한 데다,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중년 여성에 대한 선입견만 담고 있는 ‘강남’과 ‘아주머니’라는 키워드는 불필요하거니와 부적절하다. 그동안 대통령의 남성 측근에 대해 ‘아저씨’라고 칭했던 적이 있는가? 최 씨가 강서구 주민이었다면 ‘강서 아줌마’라고 불렀을까? 하지만 유 의원의 발언 이후 많은 매체는 최 씨를 권력형 비리의 중심인물 이전에 탐욕스럽고 무식한 ‘강남 아줌마’라는 캐릭터로 접근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일보]의 “최순실 20년 단골 강남 목욕탕 세신사가 본 최 씨 모녀” 기사는 ‘돈은 많지만 무례하고 상스러운’ 최 씨와 딸 정유라 씨에 대한 ‘뒷담화’에 가깝게 구성되며 이 사안을 막장 드라마적 서사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신는다’고 그랬다.
10월 31일 오후,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한 최 씨에게 취재진을 비롯한 인파가 밀려들었다. 그 과정에서 최 씨가 신고 있던 검은 신발이 벗겨져 바닥의 로고가 노출됐다. 이탈리아 브랜드 프라다였다. ‘최순실 신발’과 최 씨가 들고 있던 ‘토즈 가방’은 곧 포털 사이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 2위를 다툴 만큼 뜨거운 아이템이 됐다. 신발과 가방의 모델명, 가격 정보 역시 톱스타 협찬 제품처럼 유명해졌다. 구두를 떨어뜨린 ‘신데렐라’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신는다]를 패러디해 제목에 실은 수십 개의 기사 가운데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 화면에 오른 것은 “‘순데렐라’는 프라다를 신는다”([매일경제])였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의 핵심 인물로 수백억 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최 씨가 명품을 입고 쓰는 것은 새삼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다. 이미 26일 최 씨의 신사동 자택 압수수색 당시 “신발장에 명품 구두 수두룩, 최순실은 한국의 이멜다?”([노컷뉴스]) 같은 기사들은 충분히 쏟아져 나온 뒤였다. 언론이 앞다투어 최 씨에게 동화적인 애칭을 붙이고 ‘악’과는 거리가 먼 칙릿 영화 제목을 마구 가져다 쓰며 ‘사치스런 명품 중독자’라는 캐릭터로 그를 빠르게 소비한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도피했던 유병언 일가의 패션, 헤어스타일, 먹거리 등 온갖 것을 다 알게 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막장 드라마’라고 그랬다.
10월 29일, [연합뉴스]는 “정유라, 페라가모·프라다·구찌에 1천만 원 고양이까지?”라는 기사를 통해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페이스북 계정에 대해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는 해당 계정에 올라온 고양이 사진과 ‘Ragdoll Breeder(래그돌 사육사)’라는 프로필에 대해 언급하며 “래그돌은 1960년대 미국에서 개량된 품종이다. 국내 분양가는 최소 250만 원, 최대 1천만 원인 수준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최 씨 모녀와 ‘명품’ 브랜드를 끊임없이 연결 짓는 보도 트렌드에 따라, 26일 압수수색 당시 드러난 구두들의 브랜드가 다시 한 번 언급된 것은 물론이다. 정 씨의 출산 관련 의혹과 아이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성의 과거 직업을 둘러싼 소문 등 사생활에 대한 보도 역시 무성한 추측과 몇 개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가십으로 다루어졌다. 또한 최 씨의 측근으로 함께 사업에 참여해온 고영태 더 블루K 이사가 과거 호스트바에서 일했으며,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단독 보도한 TV 조선은 이들의 관계에 대해 폭로한 A씨의 멘트를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장르를 분명히 했다. “내가 광분하는 건, 만나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나랏일을 걔(고영태)를 데리고 했다는 게 너무 막장 드라마니까.”

‘보톡스 시술을 받았다’고 그랬다.
10월 31일, [고발뉴스]는 “최순실, 청와대에서 박근혜 보톡스 시술”이라는 기사를 단독 보도했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매체들은 이를 인용했다. 기사에는 최 씨의 ‘최측근’ A씨가 “최 씨가 6개월에 한 번가량 정기적으로 의사를 대동하고 청와대에 들어갔으며, 박 대통령에게 의사로 하여금 얼굴에 100방가량 주사를 놓는 일명 ‘연예인 보톡스’ 시술을 해줬다고 들었다”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다. “강남 일대 피부과를 중심으로 성행”한다는 일명 ‘매선침’ 시술에 대해 그 원리와 방식, 시술 비용까지 자세히 설명하며 PPL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 이 기사는 한 성형외과 전문의의 말을 빌려 “시술에서 정상적 회복까지는 통상 7시간가량 소요된다”고도 덧붙이기도 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 공백에 대한 의혹을 뚜렷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기사를 링크하며 ‘7시간’을 강조하기도 했다. 여성 정치인의 소비나 미용에 관련된 폭로는 2011년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의 ‘연회비 1억 피부과 의혹’ 보도들이 그랬듯 남성 정치인들의 어떤 과오보다 강력한 파급력을 지니는 선정적 이슈다. 또한 최 씨가 박 대통령을 통해 국정에까지 영향력을 끼쳐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하나둘 등장하는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음모론 역시 충격적인 내용에 비해 검증되지 않은 ‘설’들이 많다. 그러나 “굿을 했다는 설, 보톡스를 맞았다는 설, 정윤회와 있었다는 설 이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박근혜의 7시간은 당연히 업무시간입니다”([오마이뉴스])라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의 말대로,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의 직무유기 그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순실이’라고 불렀다.
10월 26일, [경향신문]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진상규명을 요구한다는 기사와 함께 #언니끝났어 라는 해시태그를 올렸다. 최 씨와 박 대통령이 ‘언니동생’ 하는 사이라는 증언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언론사가 그 사적인 호칭을 굳이 ‘드립’에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여성 정치인의 성별을 강조하는 여성혐오적 태도이기도 하다. 그 후에도 [경향신문] 계정은 박 대통령과 최 씨에 대한 여러 기사에 #순실이조교수도했구나, #심사숙고하고 계시다(아직 순siri가 안 알려줬다) 등의 해시태그를 꾸준히 걸거나 “순실이가 증시까지 무너뜨렸다”는 멘트를 덧붙였다. 그중에서도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정유라 씨와 관련해 승마계 비리 조사를 재촉했다는 기사와 함께 올린 ‘#300명목숨보다순실이딸’이라는 해시태그는 직관적인 만큼 경박한 표현으로 오히려 사안의 무게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인사 개입 의혹 기사를 링크하며 “우리 순실이 딸 건드린 ‘나쁜 사람’들,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다 찍어낼 거야”라는 말로 박 대통령의 ‘마음’을 적어 넣기도 했다. 국가통수권자가 가족이나 친분이 있는 인물로 인해 공사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치적 과오를 저지르는 일은 정권마다 빠짐없이 있어왔던 일이다. 그러나 이 심각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이상한 두 여자가 나라를 망쳤다’거나, ‘최 씨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공주님’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공인이 아니라 자유의지 없는 ‘사인’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그의 책임을 덜어주는 일이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라는 신세 한탄을 늘어놓고 있는 대통령과, 그 그늘에서 이익을 얻었던 수많은 정치인 및 기업인들이 져야 할 책임 말이다.




목록

SPECIAL

image 2017년의 시위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