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썰전]이 열어젖힌 시대

2016.11.09
지난 3일 방영한 JTBC [썰전]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의 극복 대상이 됐다. 이날 패널 유시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해 “(국민들이) 저런 사람들에게 지배를 당했구나”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검찰 수사의 방향을 예측했고, 함께 출연한 전원책은 이에 대해 “(검찰의) 와꾸(짜놓은 틀)대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TV 프로그램이 현직 대통령의 통치 능력을 직접적으로 부정했고, 검찰 수사가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갈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그사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내용부터 향후 정국 예측,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제안까지 담아낸다. 김구라가 진행하지만 사실상 시사 프로그램인 [썰전]이 여느 예능 프로그램의 풍자보다 더 직접적으로 대통령과 검찰을 비판하고, 복잡한 맥락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 결과는 역대 종편 예능 중 최고인 9.2%의 시청률(닐슨 코리아 기준)이다.

한 달 전이라면 KBS [개그콘서트]나 tvN [SNL 코리아 8] 출연자가 최순실을 연상시키는 복장만 해도 이른바 ‘용자’의 행동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하면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판사님 이 글은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같은 풍자가 있는 사회다. 그러나 불과 2주 사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5%까지 떨어졌다. 대선은 1년 남짓 남았다. 정부, 여당, 야당 모두에게 여론의 향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동시에, 그 키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정보를 쥐고 있는 미디어가 가졌다. 미디어는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정치 권력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 그러니 애초에 시사를 예능의 방식으로 녹이던 [썰전]은 굳이 풍자 없이 직접적인 비판과 분석만으로도 재미를 끌어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의 관련 인물 흉내 내기나 ‘드립’이 큰 인상을 남기기는 어렵다. 이미 ‘박근혜 하야’가 구호가 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시위 현장에서 그보다 더 수위 높은 풍자가 나오고, SNS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SNL 코리아 8]이 정치 풍자를 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스스로 코미디의 소재로 삼았을 만큼, 예능 프로그램의 정치 풍자는 어느 순간부터 보기 어려운 것이 됐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도 많은 사람이 안다. 그만큼 [SNL 코리아]나 [개그콘서트]가 더 재미있는 정치 풍자를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로 새로운 재미를 찾는다. 대통령이 공직 바깥에 있는 누군가와 사실상 권력을 나눴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며 직관적인 스토리다. 이 스토리에 새로운 사실을 더하거나, 맥락을 풀어내기만 해도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다. 모든 예능 프로그램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다룰 필요는 없다. 하지만 MBC [무한도전]은 우주여행을 소재로 한 대형 에피소드를 방영 중이지만, 인터넷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한 듯한 자막이 화제가 됐다. KBS [연예가 중계]가 연예인 인터뷰 도중 단 자막도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것으로 읽히는 시절이다. 다루지 않는다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시청자의 화제가 되기도 어렵다. [썰전]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은 이 모든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한도전]이건 tvN [삼시세끼]건, JTBC [아는 형님]이건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건, 정치에 대한 관심은 동시대적 감각을 의미하는 것이 됐다.

이것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 새로운 체제로 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10년 전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를 열었고, 다시 Mnet [슈퍼스타 K]가 오디션을 중심에 둔 서바이벌 예능의 시대를 열었다. 그 후 tvN [더 지니어스]와 [소사이어티 게임] 류의 모의 사회 실험이나 MBC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 예능이 더해지기는 했지만, [무한도전] 이후의 2000~2010년대는 리얼리티의 시대였다. 연예인들의 실제 (같은) 모습을, 실제 사회에 있는 인간군상을 TV가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썰전]을 비롯한 최근 여러 미디어는 현실의 사건 그 자체를 풀어내면서 재미까지 끌어낸다. 예능과 시사의 만남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더욱 커졌고,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에게는 단순한 ‘드립’을 넘어 시대를 읽는 감각이 필요해졌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용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풍자, 어떤 비판이 더 수준 높은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리고 이것은 미디어의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다. 정의를 위해서든 정략을 위해서든, 대부분의 미디어는 요즘 할 말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이것을 앞으로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굳힐 수 있을까. 대통령부터 일반 국민까지, 시사부터 예능까지 모두에게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중요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목록

SPECIAL

image 비밀의 숲

MAGAZINE

  • imageVol.170
  • imageVol.169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