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모든 시간, 양육이라는 노동

2016.11.09
[나는 엄마다](다음. 순두부)

순두부 작가의 다음 웹툰 [나는 엄마다]는 여섯 살, 일곱 살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아이들이 눈 뜨는 아침부터 잠드는 밤까지, 그는 쉴 새 없이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안아주고 놀아주며 보낸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수많은 과제와 행사, 학부모 모임을 챙겼고 홈스쿨링을 시키기 시작하자 자신의 육아 방식에 대해 매일 고민하고 후회한다. 그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엄마됨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편, 종종 육아 슬럼프를 겪으며 ‘힘들다’고 토로한다. [나는 엄마다]에는 “이 작가는 아이들을 싫어하는 거 같다. 그렇지 않고서 불만이 계속 나올 수 없다”는 댓글이 달린 적도 있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애정과 육아로 느끼는 피로감은 모순이 아니다. 아니,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노동의 강도는 더 높아지기도 한다. 순두부 작가는 결혼 전 지독히 개인적이던 자신과, 엄마가 된 이후 자신의 자아가 부딪힐 때 피로해진다고 말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감정노동은 엄마의 일상을 속속들이 지배한다. 여섯 살 아들을 키우는 회사원 S씨(35)는 “한글은 언제 가르칠까,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할까, 수영을 가르칠까, 태권도를 가르칠까 등 아이에게 그 시기에 필요한 걸 알아보고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일”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아이의 친구 관계와 성격 형성에 대한 감정 관리자인 동시에 놀이 파트너로서도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두 살, 다섯 살 딸들의 엄마인 교사 K씨(36)는 “인형놀이가 너무너무 싫지만 바비와 켄이 여는 과자 파티에서 플레이도우로 만들어진 쿠키의 맛을 묘사해줘야 하고, ‘엘사 머리’로 인형 머리카락을 땋아줘야 하는” 고충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또한 아이가 태어난 이후 많은 여성은 시부모와 아이 간의 다리 역할을 ‘자연스럽게’ 도맡는다. 메신저로 아이의 사진을 보내며 근황을 전하는 것은 아들이 아니라 ‘애 엄마’인 며느리의 당연한 도리로 여겨지기에, 그들이 시부모와의 관계에서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무시된다. K씨는 “가사, 육아, 부부, 시가가 연속되어 있는 게 결혼 이후의 삶인데 그 안에는 결혼 전에 있었던 ‘나’라는 존재만 쏙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고 끝나지 않는 양육의 영역에서 한층 더 사각에 놓인 것은 이른바 ‘전업맘’의 노동이다. 대부분 ‘워킹맘’에 주목하는 미디어들은 비록 한화그룹 광고 ‘나는 불꽃이다 – 직장맘’ 편처럼 그 극한의 노동 강도를 열정으로 극복하면 된다는 듯 헛다리를 짚기도 하고, 별다른 대책 없이 고충을 전시하는 데 그치기도 하지만 어린이집 이용 시간 제한 같은 쟁점에서 ‘워킹맘’의 반대 항에 놓이는 ‘전업맘’의 노동은 그보다도 더 축소되곤 한다. 재택근무 등 경제활동 여부를 떠나 ‘집에 있는 여자’의 노동은 평가절하된다. ‘애유엄브(애는 유치원 보내고 엄마끼리 브런치)’라는 신조어는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여성들의 ‘한가로움’을 상징하는 말처럼 쓰이고, 평일 낮 백화점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여성들은 괜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순간마저 이들이 엄마로서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워진다. 아이와의 외출은 단지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아이를 놀게 해주기 위한 돌봄 노동의 일환이고, 엄마들의 모임은 친목 이전에 육아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형성된다. 프리랜서로 번역 일을 하며 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Y씨(36)는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는 건 나쁜 엄마일 거라고 스스로 굴레를 씌우며 살다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야 겨우 일상의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또래 친구’가 생기면서 아이의 사회생활이 시작되자 새로운 감정노동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동네 ‘놀이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엄마들의 관계는 개인의 취향과 무관하게 양육자로서의 책임감에 의해 유지된다. 마음이 맞지 않거나 무례한 사람이 있어도 멀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간식 및 장난감을 공유하고 집에 초대해야만 한다. Y씨는 “이런 관계들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육아공동체에서 내가 송곳처럼 튀어나오면 혹여 아이가 친구 사귈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 두렵다”고 털어놓는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도 아이를 둘러싼 ‘관계’는 엄마의 숙제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엄마 친구가 애들 친구라고들 하더라.” 초등학교 1학년 딸과 세 살짜리 아들을 둔 P씨(39)는 이렇게 말한다. 자영업자인 그는 바쁜 엄마 때문에 아이가 친구들로부터 생일 초대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인다. P씨의 딸이 속한 학급의 학부모 단체 카톡방에는 엄마들만 모여 학교 행사 등을 논의한다. 그는 “아이는 하나만 키울 생각이었지만,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큰애한테 동생이 필요하다고 난리여서” 둘째를 낳게 됐다.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엄마의 책임은 종종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보다 앞서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고백한 여성들에 대한 책 [엄마됨을 후회함]에서 말한다. “수십 년째 엄마로서의 삶을 역할로 간주해온 사회에서는 엄마들을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다. 아이들과 관련해 엄마들은 객체가 된다. 타인의 인생을 위해 봉사하는 의존변수인 것이다.” 

[어쿠스틱 라이프](다음. 난다)

엄마가 전력을 다해 아이를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로 여겨지되, 엄마인 여성이 보호받기 어렵고 오히려 엄마이기 때문에 쉬운 공격 대상이 되는 한국 사회에서 엄마들의 스트레스와 노동 강도는 한층 더 높아진다. 다음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의 난다 작가는 최근 어린 딸을 데리고 지하철을 탔다가 술 취한 남성으로부터 무례한 말을 듣고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Y씨 역시 얼마 전 아이와 길을 걷다가 갑자기 자신에게 반말로 시비를 거는 남성을 만났지만 조용히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임신부임이 드러나는 시기부터 공공장소에서 유독 자주 무시와 괴롭힘을 당했다는 그는 “나라는 사람은 변한 게 없는데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불특정 다수에게 만만한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큰 스트레스고, 독립적인 성인에서 재생산의 도구로 전락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에는 횡단보도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50대 남성이 “여기는 금연 구역이고 아기도 있는데 다른 데 가서 피우면 안 되겠냐”고 말한 아기 엄마의 뺨을 때린 사건도 있었다.

남편, 즉 남성인 보호자와 함께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독박육아’를 수행하는 현실에서 집 밖으로 나온 엄마와 유아에게 적대적인 분위기는 여성들에게 과도한 자기검열마저 요구한다. 지난 11월 1일 [한겨레]에는 “아이 엄마를 ‘맘충’이라 부르는 사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여성 혐오 프레임이 모성에까지 확장되었다는 데 대한 비판과 육아에서 아빠의 부재를 지적한 이 기사에 대해,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애들이 공공장소에서 폐 끼쳐서 나온 용어를 맞벌이, 독박육아로 연결시키다니 참신한 발상이다”와 “선동질 하지 마라”였다. “아이가 크게 잘못한 게 없을 때도, 다른 사람이 싫은 소리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혹시 내가 ‘맘충’처럼 보일까 봐 괜히 더 엄하게 다그치게 된다”는 K씨의 자책은 이러한 시선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더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이지만, 최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의 출생아 수는 또다시 역대 최저를 갱신했다. 육아를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아빠들에 비해 육아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많은 여성은 다른 여성들에게 출산을 쉽게 권장하지 않는다. 양육은 단지 아이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데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이 전담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고되고 복잡한 노동이다. 한 인간의 삶이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까지 다른 인간의 삶에 바쳐지는 방식으로 돌아가던 시스템은,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그토록 혹독한 ‘엄마되기’의 무게를 거부하면서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육아에 수반되는 무수한 노동이 여성들에게만 부당하게 쏠려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 노동의 강도와 스펙트럼에 대한 논의가 훨씬 더 활발해져야만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엄마는 위대하다’는 무용한 찬사가 아니라, 엄마도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가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짐을 줄이거나 나누어 지는 것이다. 자신이 지워지고 지친 엄마들이 불꽃은커녕 재가 되어 스러져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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