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권위 잃은 아버지에게 온 특이점

2016.11.10
전(前) 국민 MC. 아직 방영 초반인 JTBC [한끼줍쇼]는 투톱 MC인 이경규와 강호동에 대해 한물 간 스타 취급을 한다. 기획의 핵심인 일반인 가정에서의 식사를 첫 회부터 실패한 것에 대한 우회적인 질책이거나,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엄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국민 MC 타이틀을 놓고 한 발 물러나 예능의 대부 위치에 만족했던 이경규와 달리, ‘그’ 강호동에게 전(前) 국민 MC라는 타이틀은 장난이나 엄살이라 해도 뼈아프다. 최근 KBS [우리동네 예체능]까지 종영되며 현재 지상파에서 완전히 하차한 그를 아무리 애정 있게 봐도 국민 MC라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현재 강호동의 위기를 전(前) 국민 MC라는 말로 요약하는 건 오히려 문제를 축소하는 것이다.

현재 그는 단순히 라이벌 유재석과의 격차가 벌어진 걸 떠나 아예 동시대 예능에서 옛날 사람 취급을 받는다. tvNgo [신서유기]의 은지원은 “요즘 누가 진행을 하느냐”고 면박을 줬으며, JTBC [아는 형님] 첫 화에서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듣자 강호동은 “미래형 진행을 해보라”며 욱하기도 했다. 가장 장수한 프로그램인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도 이수근은 “호동이 형은 오프닝이 반”이라고 그의 진행 방식을 지적했다. 강호동과 책의 어색한 조합을 시도한 KBS [달빛 프린스]나 해당 게스트 팬덤 외엔 딱히 관심 없는 이야기일 MBC [별바라기]는 심지어 제목조차 촌스럽다. 아무리 김연경 돌풍이 시작되기 전이라고 하지만 리우 올림픽 직전 나온 김연경에게 터키 현지에서 인기가 있느냐고 묻고([우리동네 예체능]), 이미 힙스터의 성지가 된 성수동에 대해 방송 덕분에 성수동이 뜨겠다고 말할 정도로([한끼줍쇼]) 동시대 정보 업데이트에 늦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강호동은 재미없는 아재가 되었다고만 정리하기도 어렵다. 여전히 TV는 그와 동세대 아재들의 천국이다. 무슨 차이일까. 

파이팅을 강조하고 리더가 되어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끌던 그는 같은 아재 중에서도 70-80년대 고성장 시대의 카리스마 있는 아버지와 흡사한 모델이다. 열심히 하면 하는 대로 성과를 낼 수 있고, 그 성과로 네 식구 정도는 거뜬히 건사하고 집도 살 수 있으며, 그 경제력으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아버지. 강호동이란 모델은 예능에 있어서만 옛날 사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옛날 사람이다. 강호동의 파이팅은 단순한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전성기 그의 예능은 그 파이팅과 에너지로 무언가를 이루고 나름의 공익을 실현하는 서사로 완성된다. 고생한 만큼 더 아름다운 절경을 국민들에게 소개할 수 있던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이 그러했고, 당대 최고의 스타들만을 섭외해 강한 박력으로 밀어붙여 속내를 털어놓게 하고 최종적으로 인터뷰이의 미담을 완성시켜주던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가 그러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SBS [스타킹]은 말 그대로 당신도 스타의 왕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자리였다. 정치적으로 올바른지는 모르겠지만 노력과 긍정의 힘을 믿고 윗세대에 깍듯해 자식과 남들에게 존경받는 강한 아버지의 모습은 강호동을 통해 예능의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최대 다수가 만족할 예능을 추구해온 유재석과 달리 과잉에 가까운 강호동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즐길 수 있었던 건, 종종 그 방식이 불편할 때조차 투지와 압박이 그대로 비례해 만족할 만한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즐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조선’의 시대에 과거의 아버지는 다시 오지 않을 꿈같은 것이다. ‘노오력’의 허구를 인식하고 자조하거나 조롱하는 시대에 그의 전성기 예능과의 정서적 연결고리는 끊어져버린다. 이러한 소비의 변화가 예능을 더 세련되게 만들진 않았다. 강하고 엄한 아버지의 자리가 건들대는 못난 형들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성과를 내자고 압박하는 대신, 툭하면 게스트나 패널을 후려치고, 젊은 여성에게 애교를 강요하고, 자기들끼리 ‘아무 말’을 나누며 낄낄대는 그런 아재 예능의 안착. 

현재 강호동이 아재 예능의 한 극단에 선 [아는 형님]에서 에이스 이수근에게 형님 대접을 받으며 어느 때보다 폭압적인 태도에 탐닉하는 동시에 올리브TV [한식대첩 4]와 [한끼줍쇼]에서 참가자들과 거리의 시민에게 깍듯하고 살갑게 구는 이중적인 모습은 카리스마와 권위를 잃은 전통적인 가부장이 닿을 수밖에 없는 어떤 특이점을 보여준다. 더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어려움에도 파이팅을 잃지 않는 그를 나이 든 호랑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최근의 그는 과거의 위명을 등에 업고 하이에나들과 고기를 나눈다. 품위 있는 산중의 왕은 될 수 없지만 그럭저럭 왕 놀이는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유교적인 질서에서의 좋은 사람도 포기할 수 없다. [아는 형님]에서 걸 그룹을 막 대하는 모습을 위악이라 말하기 어려운 만큼, [한식대첩 4]에서 통일을 말하며 눈물을 훔치는 북한 참가자에게 숙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는 모습을 위선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둘 다 그의 모습이다. 다만 과거 그 두 가지가 하나로 통합되어 최강의 카리스마 MC가 될 수 있었다면, 이제는 화제성은 있지만 정치적으로 불편한 예능에서 그나마도 주변부에서 저질스런 아재의 본성을 드러내거나, MC 역할이 철저히 제한된 위치에서 야성을 누르고 그럭저럭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곳도 국민 MC와는 거리가 멀고, 잘나가는 MC가 되기에도 부족하다.

지금 강호동의 부침은, 그래서 오랜 기간 슬럼프를 겪다가 JTBC [마녀사냥]과 함께 부활한 신동엽이나, KBS 연예대상 징크스를 호되게 겪었던 탁재훈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어떤 뛰어난 예능인도 새 시대의 트렌드에 적응해야 하지만 강호동의 MC로서 가장 뛰어났던 장점들은 지금 이곳에선 봉인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강호동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최근의 탁재훈처럼 최소한의 자기 검열을 포기하고 토크에서의 반응 속도를 높여 하이에나 무리의 새 두목이 되거나, 더는 프로그램을 ‘하드캐리’ 할 수 없는 롤을 받아들이고 어르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에 집중하는 것 정도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 시작한 [한끼줍쇼]나 실버 세대 예능의 허브라 할 수 있는 MBN에서 부모 세대의 일상을 자식 세대와 관찰하는 [내 손 안에 부모님](가제)에 합류하기로 한 결정은 후자의 가능성을 짐작게 한다. 무엇이 예능인으로서 더 많은 인기와 더 오랜 활동을 보장하는 방향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할 수는 있지 않을까. 약해진 아버지가 그저 그런 아재 무리에 섞여 센 척하는 것과 현재를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품위와 예의는 지키는 모습 중 무엇을 더 보고 싶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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