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개와 인간의 시간에 대하여

2016.11.10
개 키우기를 지레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등장하는 개들은 그들을 가장 사랑한다는 보호자조차 한숨을 내쉬게 할 만큼 문제적이다. 미니어처 핀셔 짱이는 집에 외부인이 방문할 때마다 무작정 짖거나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하고, 믹스견 별이는 낯선 사람이 가족들 중 누군가와 스킨십을 하기만 하면 곧바로 공격 태세를 취한다. 잘 놀다가도 목욕, 발톱 깎기 등 미용을 시도하는 순간 급변해 으르렁거리는 푸들 리치도 있다. 반복되는 상황에 지치는 건 개와 보호자 모두 마찬가지다. 가까이서 살아가지만 여전히 개는 인간에게 불가해한 동물이며, 인간보다 훨씬 작고 약한 개는 당연히 보호자의 조마조마한 마음을 먼저 배려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와 강형욱 반려견 훈련사가 내리는 솔루션은 생각보다 간명하다.

개는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생활을 바꿔놓고, 인간 또한 개의 일상을 바꾸어놓는다. 개와 함께 사는 것은 단순히 내 삶에 ‘겨우 강아지 한 마리’가 얹혀가는 일일 수 없다. 개들의 이상행동은 제각각이지만 이는 특정한 보호자와의 생활 아래 형성된 것이며, 강형욱 훈련사는 개에 따라 다른 처방을 제시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보호자의 면밀한 관찰과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어릴 적 보호자의 사정으로 잠깐 다른 집에 맡겨졌던 별이는 여전히 안전을 확신하지 못하고, 예민한 리치에게는 과거 삭발을 당했던 트라우마가 있다. ‘누구세요?’ 소리만 들려도 짖기 시작한다거나, 이유 없이 인형을 빨고 있는 개들의 모습 등은 보호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이상 징후다. 짱이의 보호자는 인간과 개 사이의 정리되지 않은 서열이 문제의 원인일 거라고 추측했으나, 보다 중요한 건 개를 어엿한 가족 구성원이자 동반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강형욱 훈련사가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밝혔듯, 지금까지 반려견 교육은 훈육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은 개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된다고 여기면서도 서열을 똑바로 잡아야 한다거나 적절한 보상과 징벌을 통해 개를 길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아하는 간식으로 개를 달래고,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지 가르쳐주는 행위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그 전에, 개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방식과 언어와 사고체계를 가진 생명체로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말한다. 짖거나 물면 소리를 지르고, 언제나 재롱부리길 원하고, 시도 때도 없이 번쩍 안아 올리거나 뽀뽀를 퍼붓는 건 사람에게만 편리한 방법일 뿐 개의 입장은 좀처럼 고려되지 않는다. 강형욱 훈련사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와 인사 방법으로 다가가면 많은 강아지가 이해한다”고 설명하며 자신을 향해 짖는 개 앞에서 잠시 몸을 피해준다. 아기에게 적대적인 개에 관해서는 개 역시 예측 불가능한 사건에 적응하고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호자를 설득한다. 개와 사람은 예쁨을 받고 예뻐하기 위해 만난 사이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과 마찬가지로 어울려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필수적인 관계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방송은 개와 보호자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올해로 13세를 맞은 코리는 아무 데나 배변을 보고, 벽이나 문을 인지하지 못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를 박고 턱에 걸려 넘어지는 등 치매를 앓고 있다. 안구적출 수술을 경험한 데다 1년 전 폐암 판정을 받기도 한 17세 순이는 움직이기조차 어려우며, 15세 마리는 밥을 먹자마자 전부 토해버린다. 개가 복도에서 귀를 휘날리며 신나게 뛰어오고, 가족들 사이에 끼어 사진을 찍고, 누워서 애교를 부리던 모습은 카메라뿐 아니라 보호자들의 기억 속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작고 귀엽고 활달하던 개가 어떻게 늙어가고 죽음에 가까워지는지는 십 몇 년의 시간을 꾸준히 같이한 사람이 아니라면 잘 알 수 없다. 보호자들은 처음 겪는 사건에 당황하면서도 그동안의 경험을 기반으로 자신의 개와 잘 이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누군가는 씰룩거리는 코만 보고도 늙은 개의 불편한 기분을 눈치채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개에게 비 냄새를 맡게 하며 이별하는 순간까지 최대한 많은 풍경을 보여주려 애쓴다.

결국 개와 함께 산다는 건 그들과 같은 시간,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개가 어떤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불쾌해하는지 등은 깜찍한 ‘짤방’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개와 보호자, 오직 둘 사이의 내밀한 정보다. 세상에 같은 개는 없고, 전혀 다른 두 종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동안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며, 강형욱 정도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내 개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고백하자면, 개가 아니라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도 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고양이를 마음대로 만지면서도 예뻐서 그러는 줄 이해할 거라 착각하지 않기, 고양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집을 오랫동안 비워도 괜찮을 거라 안심하지 않기, 억지로 몸줄을 매면서 고양이를 훈련시킨다고 믿지 않기. 그리고 무엇보다 고양이와의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기. 그것만으로도 반려동물과 인간 사이에서 풀리지 않는 과제는 없다는 사실을,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며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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