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찬바람 불 때, 따뜻한 [차, 茶, TEA]

2016.11.11
슬슬 차가 그리운 계절이다. 마시는 것도, 끓이는 것도, 다구를 모으는 것도 즐겁다. 처음에는 립톤 티백만으로도 만족이지만 세상에는 더 근사한 차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종류가 너무 많고 와중에 이름들은 하나같이 복잡해서 함부로 발을 들였다가는 영원히 길을 잃게 생겼다. 그렇지만 차는 결국 나뭇잎을 띄운 물이며, 그것도 카멜리아 시넨시스라는 하나의 나무다. 백차, 녹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의 맛과 향기가 다른 것은 순전히 가공 방법의 차이다.

조지프 웨슬리는 일찍부터 차에 관심을 갖고 세계를 돌아다니다 결국 거대 로펌의 변호사 자리를 걷어차고 직접 차 회사를 차린, 독특하지만 의외로 흔한 사연의 주인공이다. 업계인이지만 큰 회사 사람들처럼 몸 사릴 것 없이, 최신 정보를 민감한 부분까지 풀어내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아편전쟁, 공산혁명, 문화혁명 등 연이은 격변 속에 중국 고급 차 산업은 거의 사멸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래로 서서히 소생했고 독자적인 차 문화를 발전시키던 서구에서 중국 명차의 재발견이 한창이다. 웨슬리는 이를 틈탄 유럽 회사들의 프리미엄 브랜드화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유럽 회사는 수미백차를 스페셜티 차로 홍보하는데, 사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소작인들이나 마시는 싸구려 차였다. 중국 업체들이 창고에 대량으로 쟁여두는 것은 박리다매를 위해서인데 마치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숙성된다는 홍보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대형 업체와 경쟁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류의 비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적당히 가려듣기만 한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재미있으면서 유용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는 전문가이면서도 애호가로서의 취향을 잃지 않고,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목소리를 높인다. 홍차를 끓일 때는 팔팔 끓는 물이지만 녹차는 아니라는 것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상식이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온도가 있는 게 아니고, 차의 종류와 조건에 따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옳다는 규칙이 철저히 논리에 근거한 객관적 분석의 결과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 다수의 의견에 따라가다 굳어버린 잘못된 통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기를 데운다, 건차를 넣는다, 건차를 뜨거운 물에 적신다, 침출시킨다, 옮겨 붓는다. 이 다섯 가지만 지키면 나머지는 취향에 달렸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바로 그것이 차를 마시는 재미다. 

[차, 茶, TEA]는 차에 대한 책을 어지간히 읽은 사람과 난생처음인 사람 둘 다에게 권할 만하다. 전자에게는 익숙한 사실을 새롭게 조망하는 기회를 주고, 후자에게는 흥미롭게 술술 넘어가면서 다른 책도 읽어볼 생각이 들게 만든다. 차, 다구, 티 푸드에 대한 실용서다운 설명도 있는데 조만간 여기서 권하는 대로 차에 치즈를 곁들여볼 생각이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드완즈 데스베드 펀치라는 차 칵테일도 마셔보고 싶다. 아삼을 우린 럼, 우유, 마살라 시럽, 육두구, 시나몬에 달걀흰자까지 들어 있다니 걱정이 앞서지만 혹시 맛있으면 큰일이니까.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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