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이승환과 차은택의 인생

2016.11.16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차은택의 커리어는 이승환을 빼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가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당부’ 연출로 1999년 Mnet [영상음악대상](MMF) 대상을 받아서만은 아니다. 1997년, 그의 뮤직비디오 데뷔작인 이민규의 ‘아가씨’는 어느 하나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부’까지 2년 사이 그는 이승환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급격하게 성장했다. ‘애원’에서는 별도의 프롤로그나 음악이 끊기지 않고도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를 매끈하게 만들어냈고, ‘침묵의 기록’ 연출 당시에는 컴퓨터 그래픽을 써보거나 세트 전체를 독특한 스타일의 미술로 빼곡하게 채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당부’는 [The War In Life]의 세 번째 뮤직비디오였지만, 이승환은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화면에 잠시 스쳐가는 문에 붙은 한지에도 빼곡하게 글자를 써넣을 만큼 미술에 공을 들였다. 이런 투자 속에서 차은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슬로우 모션으로 촬영하고, 색상의 대비로 남녀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 연출을 선보일 수 있었다.

차은택뿐만이 아니었다. 이승환은 스스로 제작까지 했던 데뷔 앨범 [B.C 603]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뒤, 그 돈을 아낌없이 썼다. 미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와 엔지니어를 기용해 앨범 [Human]을 녹음했고, 그다음 앨범 [Cycle]은 여기에 더해 앨범 재킷을 팝아트적인 3D 이미지로 만들었다. 1999년 앨범 [The War In Life]의 재킷은 혈액이 담긴 앰플을 집어넣은 듯한 입체적인 형태였고, 이승환은 뮤직비디오와 공연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비주얼 스타일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차은택처럼 많은 사람이 성장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작곡가로 주목받기 시작하던 유희열은 [Human], [Cycle], [The War In Life]에 참여, 다양한 연주자와 사운드를 경험했다. 이 앨범들에 참여한 국내 엔지니어와 연주자들도 해외의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다. 이승환의 공연은 지금까지도 한국 공연 업계 스태프에게 교과서 역할을 한다. 자신의 회사명인 드림팩토리처럼, 이승환은 꿈을 만들고 있었다. 성공한 누군가가 아낌없이 투자를 하면, 모두의 역량이 발전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

물론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스토리의 끝은 절망이다. 차은택은 최순실의 측근이 돼 온갖 문화산업의 이권을 챙겼다. 혐의 중에는 독립 광고 대행사의 지분을 강탈하려고 했다거나, 특혜로 따낸 광고를 하청 주면서 제작비는 안 줬다는 사실도 있다. 그는 이승환처럼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투자하는 대신 돈 때문에 동종 업계 사람들의 미래를 짓밟았다. 차은택이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접근한 것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하향세를 탄 뒤다. 그는 부족한 실력을 노력으로 극복하는 대신 쉽게 부와 권력을 얻을 방법을 택했고, 어이없을 만큼 크게 성공했다. 한 분야의 장인이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끊임없이 투자하는 것보다, 한물 간 크리에이터가 권력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세속적인 성공을 하는 데 훨씬 나았다.


지난 12일 이승환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국민들의 집회에 나서 노래를 불렀다. 이것은 그의 선택일 뿐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름을 알린 뮤직비디오 감독이 부정한 권세를 누리는 것을 지켜봤다. 그 사이 이승환은 [Human]을 기점으로 그 이상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드림팩토리라는 이름 아래 모였던 뮤지션들이 그때처럼 하나의 세력으로 모이는 일도 없었다. 아끼던 후배이자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던 신해철은 어이없는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선보인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누군가 훔쳐갈 때마다 지난한 싸움을 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집회에 섰다. 희망이 끊임없이 부정당해도, 과거의 영화가 다시는 재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인간은 추구한 삶에 대한 존엄을 지키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나라의 바닥에 남은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꽃’은 미사일이 날아오는 전쟁터에서 아이를 감싸며 죽음을 택한 로봇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뮤직비디오처럼, 모든 나쁜 것이 몰려온다. 현실을 자각한 누군가 할 수 있는 것은 보다 약한 존재를 보호하는 것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스스로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차은택처럼, 젊은이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겠다던 인디 밴드의 멤버에서 온갖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국립박물관재단 사장이 된 이처럼 살지 않으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세상에 대한 절망이 자신의 악함에 대한 변명은 결코 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계속된 질문을 통해 얻어지는 결론일 것이다. 앨범 [Egg]의 ‘위험한 낙원’에서 “그대가 꿈꾸던 파라다이스 원하는 것 모두 가질 수 있는 / 그런 대신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게 하죠 / 벽을 부수고 또 허물수가 없다면 / 난 그대로 여기 남아 하찮아질 거예요”라며 현실에 대해 자각했던 이승환이 그다음 앨범 [Karma]의 ‘물어 본다’에서 “현실과 마주쳤을 때 /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 그런 나이어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라는 질문이자 답을 내린 것처럼. 그리고 그는 12일에도 ‘물어 본다’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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