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① [슬램덩크] 이후의 소년들

2016.11.15
“여섯이서 강한 쪽이 강한 거야.” 이것은 일본 배구 만화/애니메이션 [하이큐!!]의 주제처럼 보인다. [하이큐!!]에서 배구는 혼자 잘해서, 개인의 재능이 뛰어나서 이기는 게 아니다. “재능은 피워내는 것, 센스는 갈고 닦는 것”이고, 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을 때 진정으로 강해진다.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이하 카게야마)는 볼에 대한 센스와 서브, 뛰어난 두뇌 플레이 등을 지닌 압도적인 천재지만 자기중심적인 배구를 해왔다. 그러나 뛰어난 운동신경과 스피드, 체력 그리고 작은 신장을 커버하는 엄청난 점프력을 가진 히나타 쇼요(이하 히나타)를 비롯한 카라스노 고등학교 배구부원들을 만나면서 차츰 타인과의 협력을 배운다. 그들과 대결하는 상대 역시 배구를 통해 차츰 성장해나간다. “여섯이서 강한 쪽이 강한 거야”라는 말부터가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상대한 아오바죠사이 고등학교의 오이카와 토오루(이하 오이카와)가 천재에 대한 열등감을 털어버리며 외친 것이다. [하이큐!!]에는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저 멀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한 번의 토스, 한 번의 리시브에 모든 것을 걸고 동료를 믿고 몸을 달려드는 무모함이 있다. 그들에게 실패는 끝이 아니라 “한 번 더”를 외치며 성장해나가는 발판이다. 이들의 배구 코트에 악인은 없고, 1승도 못 해본 팀이라도 그들만의 배구와 이야기가 있다.

[하이큐!!]를 연재중인 일본 만화 잡지 [소년 점프]의 전 편집장 니시무라 시게오는 [만화 제국의 몰락]에서 “우정, 노력, 승리”를 [소년 점프]의 편집 방침이라 언급했다. [하이큐!!]에서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무너진 강호 카라스노 배구부에 들어와 전국제패라는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 역시 “우정, 노력, 승리”를 담는다. 특히 [하이큐!!]는 [소년 점프]의 최고 인기 작 중 하나였던 [슬램덩크]와 유사한 구성을 가졌다. 재능은 있지만 아직은 어설픈 주인공(히나타-강백호), 주인공의 라이벌이자 최고의 콤비이며 냉철한 플레이를 하는 제2의 주인공(카게야마-서태웅), 상냥한 선배(스가와라 코시-권준호), 다시 돌아온 에이스(아즈마네 아사히-정대만) 등 캐릭터의 설정과 관계가 닮아 있다. 그리고 이 [슬램덩크]의 적자는 일본에서만 누적 판매 수 1,600만부를 기록했고(작년 기준), 2016년 점프 합본호 표지(모든 연재만화 캐릭터가 다 나오는 표지)에 [원피스]에 이어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와 함께 가장 눈에 띄게 실렸다.

그러나 [하이큐!!]는 [슬램덩크]의 적자이되 [슬램덩크] 이후의 소년들을 보여준다. 강백호와 서태웅이 첫 만남부터 주먹다짐을 했던 것처럼, [슬램덩크]에서 농구코트 밖은 종종 폭력의 장소가 된다. 반면 [하이큐!!]에서 이런 기싸움은 눈싸움으로 끝나고, 대결은 주먹이 아닌 코트 위에서만 벌어진다. 형, 선배, 선생님, 코치, 성인 배구부 등 연장자들은 소년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존재하고, 다른 팀 선수들은 적이라기보다 좋은 라이벌이자 함께 훈련도 하는 친구다. [하이큐!!]의 소년들은 코트 안에서 동료를 믿으며 강해지고, 코트 밖에서는 수많은 사회관계망 속에서 성장한다. [하이큐!!]가 그리는 배구의 특성은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이큐!!]의 배구에는 농구처럼 격렬한 몸싸움이 없다. 또한 모든 선수가 교대로 뛰어야 하는 배구의 룰은 아주 뛰어나지는 않은 선수라도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조명받을 기회를 얻는다. 그 결과 뜨거운 열정이 있지만 위험하지 않은 이 세계는 여성 독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었다. [소년 점프] 독자 조사에 따르면 [하이큐!!]의 66.8%가 여성 독자(2014년 기준)였다. 국내에서도 [하이큐!!]의 2차 창작과 관련 행사들은 모두 여성 독자를 중심으로 소비되고 유통된다.

[하이큐!!]는 [소년 점프]의 변화인 동시에 그들의 한계도 함께 보여준다. [하이큐!!]의 모든 남성 캐릭터에게는 각자의 고민과 성장이 있다. 반면 여성인 두 매니저의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10대 소년 중심의 스포츠 만화여서라고만은 할 수 없다. 오래전 [슬램덩크]에서도 매니저가 강백호에게 드리블을 가르치거나, 매니저로서 적절한 조언을 하기도 했다. 반면 이른바 ‘냉미녀’ 캐릭터를 가진 [하이큐!!]의 매니저 시미즈 키요코는 어떤 서사도 부여받지 못한 채 단지 부원들의 선망의 대상으로만 소비된다. 두 매니저가 부원들을 챙기며 옷을 준비하고, 물을 챙겨주는 과정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도 생략된다. [소년 점프]의 남성 캐릭터가 변하면서 보다 많은 여성 독자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녀가 다른 소년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는 거의 없다. “우정, 노력, 승리”라는 키워드를 뽑아냈던 집영사의 나가노 타다스는 “소년지의 편집자가 교육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를 키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하이큐!!]의 어른들이 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겹친다. 그러나, 그 독자에는 여전히 [소년 점프]와 [하이큐!!]를 읽는 여성 독자의 자리는 없는 듯하다. 시대는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다. 그리고, [하이큐!!]와 [소년 점프]에도 새로운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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