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 ★★★★ 한국 연극의 미래

2016.11.16
연극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
라이선스 초연│2016.11.08~11.27│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작: 매튜 윌킨슨│번역: 성수정│연출: 박지혜│아트디렉터: 여신동│배우: 손상규(니콜라이 코슬로프), 양조아(리즈카 외), 양종욱(가이징어 박사 외)
줄거리: 2002년 독일 위버링겐 상공, 러시아에서 스페인으로 향하던 여객기 한 대가 이탈리아에서 벨기에로 향하던 화물기와 부딪혀 추락한다. 이 사고로 양쪽 비행기에 타고 있던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다. 사고의 원인은 항공 관제사 실수와 항공 시스템의 결함으로 밝혀지고, 아내와 두 아이를 잃은 니콜라이 코슬로프는 관제사를 찾아가 그를 살해한다.

★★★★ 한국 연극의 미래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오늘 당면한 우리의 이야기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대신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 일반적인 연극 문법에서 한 발자국 빗겨 서 있는 양손프로젝트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에서 지극히 연극적인 방식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극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극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즐기면 된다. 그저 양손프로젝트가 이끄는 대로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나름의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Together: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
양종욱, 손상규, 양조아 그리고 박지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선후배로 만난 세 명의 배우와 한 명의 연출가로 구성된 양손프로젝트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작품 선정을 포함한 모든 창작 과정을 공유하는 공동 창작 방식으로 작업해오고 있다. 연출과 배우로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이들은 맡은 역할과 관계없이 어떤 장면을 버리고 어떤 장면을 취할지 함께 고민하고 결정한다. 여기에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에는 또 한 사람의 창작진이 이 과정을 함께 한다. 폐공장에서 일제 강점기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렸던 [여직공]부터 최근작인 [폭스 파인더], [가까스로 우리]에 이어 이번 작품의 아트디렉터로 참여한 여신동이다. 그는 무대 디자인뿐 아니라 사운드와 조명, 의상을 포함해 공간을 이루는 모든 것을 총괄하고, 배우의 신체만으로 공간을 채워 나가던 양손프로젝트의 이야기는 기술적이고 미술적인 다른 관점의 이야기와 결합하여 시너지를 발휘한다. 캄캄한 어둠, 의자 위에 올라서서 조명과 연기가 만들어낸 구름 사이로 손을 뻗는 배우, 비행기인지 바람 소리인지 모를 사운드,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배우들의 음성. 도입부, 니콜라이 코슬로프가 나뭇가지에 걸린 딸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의 미장센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New: 가장 새로운 연극
짧고 강렬하다. 양손프로젝트 특유의 속도감은 장황하게 서사를 풀어내는 연극에 지쳐있는 관객들에게는 단비 같다. 그들은 하나의 희곡에서 뻗어 나가는 이야기 중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를 뽑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소품과 무대는 최대한 간결하게 덜어낼 수 있는 데까지 덜어낸다. 배우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대신 주로 빈 의자나 허공을 생명이 있는 존재처럼 마주 대하며 연기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대사나 몸짓 하나하나에서는 생활감이 묻어난다. 하지만 양손프로젝트의 진정한 독창성은 지금까지 열거한 특징들이 아니라, 무엇으로도 그들의 다음 행보를 예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 역시 당장의 희곡을 완독한다고 해서 작품의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다. 무대는 도리어 객석보다 낮게 자리해 있고, 빈 의자 4개만 동그마니 놓여있다. 희곡과 같은 점은 줄거리와 ‘무대 디자인은 최대한 심플해야 하고, 시간과 장소는 주로 조명과 음향으로 설명된다.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쭉 진행된다’라는 작가의 노트뿐이다. 작가는 배우가 두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언급했지만 아마 작가조차도 양손프로젝트의 해석을 본다면 결코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희곡과 단편소설을 넘나들며 마치 처음부터 이 작품을 작가와 함께 써내려간 것처럼 극화하는 양손프로젝트가 작품을 선택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단 하나다. ‘지루하지 않을 것’.

Now: 지금 보아야 하는 이야기
“눈앞이 깜깜해졌어요.” 극작가 매튜 윌킨슨은 이 한마디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2년에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은 영국 런던과 에든버러에서 두 차례의 공연을 거치며 관객을 매료시켰다. 영국에서는 잘 짜인 연극적 즐거움을 선사했겠지만, 2016년 서울로 오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혼자서 야간근무를 서야 했던 관제사, 불통이 된 전화 대신 TV를 고치러 온 관제탑의 관리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 날의 죽음. 니콜라이 코슬로프의 절망은 어쩔 수 없이 우리로 하여금 많은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왜’라는 질문에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시대, 양손프로젝트는 어떠한 해답을 내렸을까? 양손프로젝트의 대표 양종욱 배우는 말한다. “연습 때부터 스스로 물었어요. ‘왜’ 이 작품을 해야 하지? 눈물샘을 자극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니까요. 무엇이 옳다 그르다, 혹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1시간 동안 같이 모여서 이 고통을 목도하는 거예요. 무대와 객석을 가깝게 만든 것도 관객이 그의 몸과 마음을 가깝게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죠. 명확히 알 수는 없어도, 이 시간들이 쌓여 공연 이후 삶에 건강하게 작용하기를 바라요. 저희에게도, 관객에게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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