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2016.11.18
11월 12일 밤에 나는 광화문 청계광장에 차린 [시사IN] 거리편집국에 있었다. 백만 촛불 인파의 한가운데인데, 거기가 집회를 취재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아니다. 사실 집회 취재로는 휴전선 남쪽에서 가장 나쁜 장소다. 일단 사람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다. 몇 시간이고 사람 사람 사람… 풍경 변화가 전혀 없다. 장소라도 옮기려면 사람의 물결에 올라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밀려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통신이 먹통이다. 방송 영상도 볼 수 없고 메신저로 들어오는 정보도 차단된다. 집회의 풍경을 보려면 사무실 모니터 앞이 훨씬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시간 초연결 사회에서,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고 생중계 영상을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온라인보다 훨씬 불편하고 시야가 좁아지고 제약이 많은 광장으로 모여든다. 이건 보기보다 커다란 수수께끼다. 왜 그러는 걸까. 사람들이 모여서 요구한다고 들을 것 같지 않은 분이 상대일 때는, 더 수수께끼다. 게임이론 연구자인 마이클 최의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는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해 준다. 책이 던지는 키워드는 둘이다. 조정 문제, 그리고 공유 지식.

조정 문제란 이를테면 이런 문제다. 나와 여자친구가 만원버스에 탔다. 어쩌다 보니 서로 멀리 떨어져서 의사소통이 어렵다. 그런데 창밖에서 둘을 모두 아는 지인이 우리를 보고 소리친다. “내려! 술 한잔하고 가!” 자, 나는 술이 땡긴다. 여자친구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저 목소리를 들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버스를 내릴지 결정하려면, 내가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서로의 의도를 알고 행동을 조정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목소리를 그녀도 들었는지 알아야 하고, 내가 들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아야 하며, 그녀가 안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야 한다. 필요한 정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유되어야 조정 문제가 풀린다. 이게 공유 지식이다. 혼자 광장에서 반정부 투쟁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여간해선 없다. 집회 홍보, 바닥을 기는 여론조사 데이터, 온라인에 넘실대는 분노의 물결, 주변 지인들의 성토 등이 모이고 뒤엉켜 “쟤는 갈 거다. 그리고 내가 갈 거라는 걸 쟤가 알 거다”라고 공유 지식이 형성된다. 이렇게 우리는 행동 조정에 성공한다.

공유 지식이 쌓여 성사된 집회는 역으로 공유 지식을 생산하는 기막히게 효율적인 작업장이 된다. 집회에 함께 서 있는 순간 참여자들은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이 생각한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유지식을 단박에 생산해 낸다. 이 복잡한 연쇄를, 아무런 방해 없이, 백만 명이 동시에! 그게 사람들이 거실의 60인치 TV를 버려두고 광장 스크린으로 축구를 보는 이유고, 온라인 집회에 만족하지 않고 굳이 같은 물리적 공간에 서 있으려 모여드는 이유다.

대규모 집회 후에는 대규모 회의론도 분출되게 마련이다. 모이기만 한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며 정권을 물리적으로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도 흔히 듣는다. 한데 모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난제이며, 이걸 풀어낸 것이 왜 탁월한 성취인지 이 책은 우아하게 논증한다. 경찰을 향해 휘두르는 쇠파이프를 두려워하는 권력은 없다.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간담을 진정으로 서늘하게 만든다. 폭력혁명 상태가 아니라 헌정 체제가 갖춰진 공화국이라면, 집회의 대단히 중요한 목적은 이 한 문장을 얻는 것이다. “네가 있다는 걸 내가 알아. 그리고 내가 널 알게 되었다는 걸 너도 알지.”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목록

SPECIAL

image 2017년의 시위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