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에 모든 것을 거는 드라마들

2016.11.21
빠르다. 너무 빠르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의 강동주(유연석)가 김사부(한석규)의 수술을 지켜볼 때 깔리는 그의 내레이션은 이 드라마의 특징이기도 하다. 첫 회의 경우 시작 5분 만에 동주의 어린 시절 사연을 정리하며 그가 왜 의사가 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고, 윤서정(서현진)이 응급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포함해 총 세 번의 어려운 수술이 등장했으며, 동주와 서정의 키스와 프러포즈, 서정의 약혼자 문태호(태인호)의 교통사고, 태호의 죽음, 슬픔에 잠긴 서정이 등산을 하다 우연히 김사부와 만나게 되는 모습까지를 모두 담았다. 네이버 메인에 걸린 [낭만닥터 김사부] 관련 기사 ‘베플’ 역시 첫 회부터 얼마나 많은 전개가 이어졌는지를 요약하는 내용이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첫 회 9.5%(AGB 닐슨 전국 기준)의 시청률로 시작해 4회 만에 13.8%까지 올랐다.

[낭만닥터 김사부]만큼 극단적이진 않지만, 첫 회부터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를 보여주는 것은 최근 흥행한 드라마들의 공통점이다. 이런 드라마들의 1~2회는 캐릭터를 소개하거나 앞으로 펼쳐질 전개의 토대를 다지는 발단이 아니라, 굵직한 사건을 터뜨리며 위기의 역할을 한다. KBS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들은 첫 회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데이트를 준비하다 유시진(송중기)이 헬리콥터를 타고 사라지면서 이별했고,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은 1~2회 만에 영(박보검)과 악연으로 엮였던 라온(김유정)이 내시 시험을 치르기 위해 궁에 들어오고 여자임이 발각될 위기까지 겪는 내용을 모두 담았다. 그리고 [태양의 후예]는 1회 14.3%에서 3회 23.4%로, [구르미 그린 달빛]은 1회 8.3%에서 3회 16.0%로 가파르게 시청률이 올랐다. 반대로 초반에 시청자의 시선을 끌지 못한 드라마는 시청률이 급락한다. tvN [안투라지]는 혹평과 함께 1회 시청률 2.2%, 2회 시청률 1.1%, 4회 시청률 0.7%로 눈에 띄는 하락세를 기록했다. 그만큼 시청자들은 드라마 시청을 빠르게 결정한다.

과거 드라마 업계에서는 4회 안에 승부를 보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이제는 그 시기가 더 앞당겨졌고, 시청자들은 4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요즘은 2회까지의 시청률 추이를 보면 이 드라마가 잘될지 못될지 대충 감이 잡힌다.” 한 광고회사 관계자 A씨의 말은 요즘 드라마 산업의 경향을 보여준다. [태양의 후예]처럼 아주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최근 드라마는 시청률 10%만 넘어도 동시간대 1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본방송 시청자 수는 줄어들었지만, SNS 혹은 포털 사이트 동영상 클립, 기사 댓글을 통해 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빠르게 퍼진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 B씨는 “네이버 TV캐스트 조회수 및 반응, 기사 클릭수와 SNS 버즈를 반영하는 콘텐츠영향력지수(CPI) 등의 화제성 지수도 함께 모니터링한다. 이것들은 시청률의 선행지수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초반부터 SNS와 포털 사이트에서 연기력이나 세트의 허술함을 지적받았던 SBS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는 11시 드라마 단독 방송 특수로 2회에 9.3%의 시청률을 올렸지만, 바로 다음 주에 5.7%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빨라진 드라마의 전개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더욱 빠르고, 그것은 화제성 높은 드라마라도 시청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곧바로 반응이 식도록 만든다.

전보다 숫자는 적어진 대신 작품에 대한 평은 빨리 퍼뜨리는 소비자들은 초반 전개의 영향을 많이 받고, 광고회사는 초반 시청률 추이로 판단을 하며, 드라마를 편성하는 방송국은 광고 수입을 신경 쓴다. 한 드라마 작가 C씨는 “전체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제작사와 방송국, 작가가 협의를 해나가며 초반 대본을 수정한다. 그러다 보면 시놉시스에서 흥미가 있을 만한 사건을 앞부분에 몰아넣게 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낭만닥터 김사부]의 기이할 정도로 빠른 전개는 요즘 팔리는 드라마의 풍경이기도 하다.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는 티격대던 남녀 주인공들이 점차 가까워지는 전개를 선호했지만, 올해 가장 성공한 로맨스의 주인공인 유시진은 상대에게 첫눈에 반해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직진’형 인물이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첫 회부터 키스신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나치게 빠른 속도는 종종 다뤄야 할 것들을 놓치는 위험성도 안는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남성이 여성에게 강압적으로 키스를 하고, 이에 바로 흔들리는 여성을 묘사하는 위험한 그림을 만들었다. 또한 빠른 템포로 사건을 진행시키면서 김사부의 능력이 분야를 가리지 않거나, 속도가 엄청 빠르다는 것은 매우 단편적으로만 묘사된다. SBS [용팔이]의 경우 빠른 전개로 초반 시청률을 잡았지만 6회 이후의 흡인력을 잃었다. 최근 초반만 재미있고 뒤는 늘어지는 이른바 ‘용두사미’ 드라마가 많은 것을 단지 작가의 역량 문제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외 판권과 광고 수익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드라마 업계에서 단기전에 최적화된 스타일이 각광받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2차 시장이 발달한 미국이나 일본에서 다양한 장르와 작법의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수익구조가 보장된다면 지금보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극적인 에피소드들을 초반에 몰아붙이지도 않았고 전반적으로 잔잔한 전개를 보여준 JTBC [청춘시대]가 방영 중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북미 넷플릭스에 JTBC 최고가로 판매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의 수익구조에 기댄 드라마만을 제작하기보다는, 다른 루트의 수익 모델을 모색하며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것이 드라마 시장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더 이상 시청자들이 뒷심 딸리는 드라마에 실망할 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목록

SPECIAL

image 아버지가 이상해

MAGAZINE

  • imageVol.170
  • imageVol.169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