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김연아가 ‘찍히는’ 나라

2016.11.23
KBS [뉴스9]에 따르면 김연아는 “문체부에 찍혔”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측근 차은택이 주도해 만든 늘품체조 관련 행사 참석을 거부한 뒤,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김연아는 찍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김연아의 신상에 큰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2015년 대한체육회의 스포츠영웅 선정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규정 외의 이유로 탈락하기는 했지만, 늘품체조 행사와의 관련성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명백한 피해를 입은 곳도 있다. 코리아 개발원은 2년 동안 정부가 지정하는 국민체조를 목표로 코리아체조를 개발했지만,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늘품체조에 자리를 빼았겼다.

늘품체조의 개발 및 홍보에 들어간 돈은 약 3억 5천만 원이다. 차은택이 대부분을 착복했다 해도 늘품체조로 그가 가질 수 있는 돈은 그 이하다. 또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조사한 검찰에 따르면, 최순실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한 기업가에게 현대자동차 납품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을 만나 이를 부탁했다. 이 기업가가 납품을 통해 얻은 매출은 10억 원이 조금 넘고, 그가 청탁 대가로 최순실에게 준 돈은 5천여만 원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권력을 생각하면 너무나 사사로운 비리에까지 대통령이 일일이 나섰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분노는 물론 비웃음의 대상이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사사롭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대통령이 자신들에게 잘해주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주고, 반대로 코리아 개발원처럼 2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멍청하고 천박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온갖 전횡을 저지르면서도 지지율만큼은 신경 썼다.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이를 반전시킬 카드를 내놓았고, 대선 당시에는 부임 후 파기할 온갖 공약들을 내놓기도 했다. 그가 멍청했다 해도 지지율과 상관없이 자신의 권력을 휘두를 만큼은 아니었다. 그 점에서 김연아가 겪은 일은 상징적이다. 대통령 측근의 조카가 정부부처의 이름을 빌려 김연아 같은 국민적 영웅에 대해 “찍혔다”고 말할 정도로 국가 권력이 사소한 데 쓰였다. 다만 대중에게 이슈가 될 만큼 공개적인 위해는 없었다. 그러나 박태환은 최근 대통령 측으로부터 리우 올림픽에 나가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동성도 권력에 대한 협조를 거절한 뒤 빙상계에 발붙이지 못했다. 국민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일을 벌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미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놓고 유명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 외에든 것이 가능하다. 그만큼 국가 권력이 사유화됐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가 보여준 바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총탄에 맞아 죽은 날에도 술자리에 연예인을 동원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국에는 형식적인 민주주의마저 없었다. 비약일 수도 있다. 정확히는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기간 내내 권력을 더 사유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예술과 체육 분야에서 일어난 일들은 그 지표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사의 관계자는 이미 정권 초에 소속 연예인을 청와대의 행사에 보내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정권 3년 차가 지난 2015년 이후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대통령과 그 측근에게 “찍혔”던 사람들을 관리 중이었다. 그사이 CJ와 같은 대기업도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았다. 그나마 대기업은 압박에도 어떻게든 버텼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회사나 개인 단위의 영역이 많고, 정권 홍보에 용이한 예술·체육 분야는 대부분 권력의 압박에 취약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난 후 문화계에 유독 사소한 비리가 많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국가 권력이 사유화될수록 문화의 자유와 권리는 사라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의 자유가 사라진다. 예술 또는 체육 종사자들의 비명은 그 경고음이었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김연아마저 건드리려 했을 만큼, 대통령의 권력은 독재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김연아 정도의 스타가 아닌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슨 일을 당했을지 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조사에 대통령에게 보장된 권한을 이용해 수사를 받지 않았고, 검찰이 그를 피의자로 지정하자 검찰의 중립성을 믿지 못하겠다며 수사 결과 자체를 부정했다. 이런 사람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기 전까지 30%대 언저리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나라를 독재 국가 직전까지 만들어놓았다. 지금 한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되돌리는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을 온갖 곳에 사사롭게 썼던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 이상으로 지치지 않는 집요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아니라 독재 자체가 목표나 다름없던 대통령이 헤집은 나라를 정상으로 만드는 일이 한 번에 될 리 없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다만 민주주의가 시작이라도 하려면 한가지만큼은 분명하다. 독재자는 끌어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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