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힙합으로 무한도전

2016.11.23
‘힙합이 대세’라는 말도 이제 지겨워졌다. 힙합이 대세라는 말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이제 대세다. 래퍼의 연봉이 하나둘 몇억 원을 돌파했을 때, 래퍼가 은행 CF에 나왔을 때, 또는 래퍼의 사생활이 관심에 오를 때. 그래서 모두가 힙합에 대해 말하고, 힙합을 활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2016년은 다시 한 번 ‘정점’을 갱신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어쩌면 MBC [무한도전]이 있다. 물론 이미 ‘무한도전 가요제’에는 래퍼들이 나온다. 그러나 [무한도전]에서 힙합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과 올해 들어 더 두드러진다. [무한도전]은 정준하의 Met [쇼 미 더 머니] 도전을 위해 일리네어레코드의 세 래퍼를 등장시켰고, 올해에는 지코와의 커넥션(?)을 몇 번이나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흐름의 절정에 ‘역사 X 힙합 프로젝트’가 있다.

‘역사 X 힙합 프로젝트’는 [무한도전]이 힙합을 다루었던 에피소드들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정준하에게 빈지노가 랩을 가르쳐주던 에피소드가 힙합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역사 X 힙합 프로젝트’는 힙합의 일부분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중요한 역사를, 랩이라는 형식에 담아,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래퍼들이 말한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거야. 예전의 [무한도전]은 ‘힙합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이제는 ‘힙합을 활용하겠다’고 선언한다.

[무한도전]의 선택은 탁월하다. ‘말을 하는 것’과 ‘랩을 하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있겠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랩의 필수요소인 ‘리듬’과 ‘라임’은 말을 늘 익숙하게 쓰이던 맥락에서 일탈시키고, 일상의 화법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말과 말 사이의 청각적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대체로 ‘암기’와 ‘이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래퍼들이 저 많은 가사를 어떻게 다 외우는지 신기하게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랩 가사의 기본인 박자의 규칙적인 강약과 분절(리듬), 또 비슷하거나 같게 반복되는 발음(라임)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우탱 클랜의 멤버 즈자가 ‘사이언스 지니어스’를 설립해 과학 이론과 공식을 랩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그 효과가 통계로 입증돼 화제가 됐다. 또한 힙합을 심리치료에 활용하는 ‘힙합 테라피’도 있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힙합을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있으며, 랩 앨범은 대학에서 문학 강의의 교재로도 쓰인다. 한국뿐만 아니라 힙합은 전 세계적으로 외연을 넓혀가는 중이다.


그 점에서 시즌2를 맞이한 JTBC [힙합의 민족]은 힙합에 관한 새로운 논점을 던져준다. 일단 시즌1은 예상 밖의 지점에서 긍정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할미넴’의 이미지를 이미 학습했기 때문일까, 우스꽝스러울 줄 알았던 할머니들의 랩에서 힙합이 늘 외치던 ‘Keep It Real’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 할머니들의 무대에서 느껴지는 삶의 진한 향기는, 그동안 훌륭한 래퍼들에게서 전해 받았던 ‘진실함의 쾌감’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시즌2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이 등장해 (적어도 지금까지는) ‘카피 랩’을 한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면 박수를 받고 인정을 얻는다. 이센스의 곡을 두 달 만에 습득했다는 배우 박준면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상징적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랩인가 ‘랩 액팅’인가. [힙합의 민족 2]가 몇 회에 걸쳐 선사한 광경은 마치 어떤 거대한 선언 같다. 야, 이제 ‘오리지널리티’의 시대는 끝났어. 언제까지 너희들은 ‘래퍼는 자기가 직접 자기 가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할래? 언제까지 ‘Keep It Real’ 운운할 거야? 이제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생각 좀 해 제발.

누구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퇴행’이라고 단정 지을 필요도 없다. 다만 이 변화를 목도하며 과거와 현재를 다시금 분주하게 오가 보자. 전에는 진리 같았는데 지금은 신경도 안 쓰는 것이 뭐가 있지. 전에는 힙합 바지라면 허리둘레 40이 ‘간지’였는데 지금은 그런 바지를 구할 수도 없고 구해서 입는다 해도 욕만 먹겠지.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고 해도 끝끝내 지켜내야 할 것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힙합 안에서 지켜야 할 것은 뭘까. [무한도전]과 [힙합의 민족]은 그들의 의도와 별개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힙합이 대세가 되면서 그 활용 방식은 다양해졌고, 그 과정에서 혼란이 따르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중에는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것’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변화와 발전은 시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예능에서 왜 랩을 저따위로 활용해. 배우가 왜 남의 가사로 랩을 해. 이렇게 말하면 속은 시원하다. 하지만 어떤 것을 가리켜 섣불리 ‘가짜’라고 낙인찍는 것은 그것의 발전 가능성까지 가로막는다. 한국의 힙합은 흥미로운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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