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에게 일을 시키고 싶다면

2016.11.24
MBC [우주의 별이]에 주연인 보이 그룹 EXO의 수호의 팬 200여 명이 드라마 촬영을 위한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이들은 촬영 당일 오후 5시부터 대기 시간을 포함해 총 17시간 동안 촬영에 참여했지만,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했다. 반면 같은 공간에 있던 다른 보조 출연자들은 팬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10만 원의 일당을 받았다. [우주의 별이] 촬영에 자원한 A씨에 따르면 이들은 “응원카드 등의 소품을 만들고 물건을 나르는 일도 현장에서 일부 담당”했지만, 무보수로 일했다. 이런 일들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고, 현장에 참여한 팬들과 일부 스태프들이 갈등을 빚으면서 결국 [우주의 별이]의 김지현 감독이 인스타그램에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노동법에 따르면 상호 합의가 이루어지면 무보수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하지만 팬들이 무보수를 감수하고도 촬영에 임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스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주의 별이] 보조출연은 팬들에게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보조출연에 참여한 B씨는 촬영장에 모인 팬들이 모두 성인이었는데도 일부러 교복을 준비하는 수고를 들였다고 말했다. “교복을 입으면 앞쪽에서 수호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B씨는 “연기학원에서 온 보조출연자들을 앞쪽에 세우고, 우리에게는 계속 뒤쪽으로 물러나라는” 말을 들었다. 화면에 잡힐 빈도가 높은 엑스트라는 연기훈련을 어느 정도 받은 사람들을 쓰는 편이 제작진 입장에서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 서기 위해 교복을 직접 준비해 입은 팬들에게는 이것이 무보수를 감수하고 엑스트라로 참여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상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EXO의 백현이 출연했던 SBS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 드라마의 서포터즈에 참여한 C씨 역시 “무보수였지만 백현을 볼 수 있는 각종 행사를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행사에 응모했다. 당시 [달의 연인] 측에서는 ‘활동혜택’으로 관련 행사 및 이벤트 초대, 우수 홍보단 선정 시 소정의 상품 제공을 약속했다. 드라마 서포터즈로 참여한 또 다른 D씨는 “담당자 분이 잘하면 앞으로 많은 모임과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마침 3등까지는 상을 준다기에 열심히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이 일주일에 1회 이상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SNS 홍보 활동을 병행하는 등 기존의 드라마 홍보 업무를 대신하며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한 이유다. 그러나 C씨에 따르면 “제작발표회 외에는 아이돌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또한 “사실 이런 행사 초대를 원해서 신청한 사람이 대부분일 텐데, 처음에는 제작발표회마저 참석이 불가능하다기에 서포터즈들이 반발해서 얻어낸 결과”였다고 한다. 실제 제작발표회에서는 서포터즈라는 명찰을 달고 스타들과 좀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그들에게 말을 걸거나 사진을 찍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우수 홍보단에게 주어진 선물은 백화점 상품권과 출연자 1명의 랜덤 사인이었다. 동기부여가 될 만한 말은 두루뭉술하게 혹은 공식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임하는 팬들은 기대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팬과 제작진 사이에 이런 기울어진 관계는 이른바 ‘팬심’에 의해 성립된다. ‘스타가 잘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보수는 물론, 팬과 제작진 사이에서 불거진 온갖 잡음까지 많은 것을 감수하게 한다. [우주의 별이]의 한 스태프는 팬들과 감정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다 “수호 얼굴에 먹칠 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소개글을 수정했다. D씨는 “시청률이 안 나오면 우리 탓이라는 듯 말하는 것도 서운했고, 너희가 잘 해줘야 드라마도 잘 되지 않느냐고 부추겼다”고도 말했다. 팬은 제작진이 약속을 어겨도 좋아하는 스타에게 해가 될까봐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 B씨는 “수호는 이날 촬영에 팬들이 온다는 것도 몰랐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타는 팬들의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고, 그 사이 팬들은 스타가 피해를 입을까봐 불이익을 감수한다. 반면 제작사측은 팬들을 활용해 다양한 이득을 본다. 최근 몇 년 새 문제시됐던 ‘열정페이’가 청년들의 열정을 볼모 삼았다면, 팬들을 드라마 제작 및 홍보에 활용하는 관행은 팬심을 동력 삼아 이어져 왔다. 이들은 무보수를 각오하고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 하나만을 바라보며 일을 한다. 그러나 보수를 바라지 않을 만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약속된 것까지 지키지 말라거나, 그에 대한 불만조차 털어놓지 못하게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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