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여성들│①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

2016.11.25
지난 11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 열린 민중총궐기에는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모임들도 참가했다. 새까만 바탕에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듯한 글자, 험상궂은 표정의 해골 그림을 깃발에 새긴 ‘헬페미’와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고 외치는 ‘페미당당’ 등이었다. 이 중 ‘페미당당’은 ‘불꽃페미액션’, ‘우리는 서로의 용기당’,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 등과 더불어 ‘페미존’을 조직하기도 했다. 2015년 2월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고 쓴 김태훈의 [그라치아] 칼럼에 항의하며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지금으로서는 매우 온건해 보이는 해시태그로부터 출발한 페미니즘이 과격해 보일 수도 있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연대를 만들고, 함께 거리로 나서는 데까지 도달한 것이다. 여성들 사이에서 다시금 널리 호명되기 전까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유별나게 드세거나 특별한 여성들을 수식하는 표현 정도로 여겨졌지만 해시태그 선언 이후,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팟캐스트와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수차례의 여성 비하 발언을 한 개그맨 장동민과 유세윤, 유상무가 거센 비난을 받고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했던 것 또한 그런 변화 덕분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거나 불쾌할 수 있는 성적 농담을 장난처럼 던지는 일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여성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계속해서 이들 개그맨을 기용하는 방송사의 안일한 대응은 그에 대한 방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눈뜬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다시 말해 여성에게는 지극히 부조리하게 짜인 판을 더 이상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고 행동했다.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4’에서 페이스북의 편파적 운영에 대한 소송비용 충당을 위해 제작한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의 텀블벅 후원금이 1억 원 이상 모인 것은 같은 여성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거나,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여성들의 결기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게다가 넥슨의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에 캐스팅됐던 성우 김자연이 이 티셔츠를 SNS에 인증했다는 이유로 ‘메갈이지?’라는 추궁과 함께 계약 해지를 당하자 수많은 여성들은 넥슨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항의하고, ‘#내가메갈이다’라는 해시태그로 연대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설명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진짜 페미니스트’와 ‘메갈’로 설명되는 ‘가짜 페미니스트’를 구별하려는 시도에 넘어가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여성 차별과 혐오에 숨죽이기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것이 틀렸다고 지적한다. 물론,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벌어지고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선언이 ‘여성을 죽이지 말라’라는 절규로 이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만큼 세상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살해와 성폭력. 이 두 가지는 여성들에게는 늘 존재하는 위협이었으며, 여성도 인간이라고 외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온건한 방식으로 사회를 설득하기보다 온힘을 다해 분노하길 택한 이들의 모습은 당연한 변화였다. 몰래카메라가 올라오고 강간모의까지 이뤄지는 회원 수백만 명 규모의 소라넷이 결국 폐쇄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는 여성들의 집요한 폐쇄 청원 운동 때문이었으며, 대학생들의 ‘단톡방’에서 행해지는 성추행이 대자보를 통해 학교 바깥까지 알려질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숨어 있는 피해자로 남길 거부한 여성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수록 드러나는 건 남성 중심의 사회가 안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였다. 서브컬처 쪽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성폭력 사건 공론화는 용기 있는 피해 여성들에 의해 문학계와 미술계, 영화계 등 각종 분야로 이어지며 여성 차별과 혐오의 유구한 역사를 보여주었다. 강의를 하는 남성 시인이 여성 수강생에게, 남성 미술관 큐레이터가 미술 혹은 디자인을 공부하는 여성 학생에게, 남성 영화평론가가 여성 평론가 지망생에게, 유명한 남성 소설가가 출판사 여성 직원들에게 성폭력과 추행을 일삼았다는 고발 속에서 공통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실제로 남성이 가진 권력과 여성이 가진 권력의 차이가 너무도 크며 그것이 두 성별의 위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그 차이는 여성을 좀처럼 사다리 위로 올려 보내지 않는 남성 중심의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2015년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2.8%에 그쳤다거나(통계청), 지난해 매출 기준 100대 기업의 임원 중 여성은 전체의 2.3%에 불과하다거나(여성가족부), 전국 광역‧기초자치단체 5급 이상 관리자급 공무원 중 여성은 전체의 11.6%(행정자치부)에 그쳤다는 통계는 한국 사회 전반의 실상을 대변한다. 2015년 초의 페미니스트 선언으로부터 약 1년 반이 흐르는 동안, 여성들은 ‘남자가 다 하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지금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배웠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페미니즘이 여성과 여성의 연대, 혹은 여성이 여성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같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모인 민중총궐기 자리에서도 젊은 여성은 남성들의 성폭력 또는 ‘어린 여자가 정치에 관심이 있다니 기특하다’는 식의 후려치기에 시달려야 하듯, 남성의 호의나 사회의 선의에 기대는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여성이 다른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거나 업적에 주목하고, 뛰어난 여성의 이름을 크게 불러주며 서로 손을 잡아끌어 올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최근 힐러리 클린턴이 45대 미국 대선에서의 패배를 인정하며 했던 연설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는 큰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직 그 가장 높고 가장 튼튼한 유리천장을 깨부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 깰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상하는 것보다 더 빨랐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이것을 보고 있는 모든 어린 여성들. 절대로 의심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가치 있고, 힘 있고, 여러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모든 가능성과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 이곳의 여성들은 도망치거나 울지 않고 여기 남아서 새로운 시대를 열 준비가 됐다. 여성 단체에 후원을 하고, 페미니즘 굿즈에 돈을 쓰고, 여성 관련 책을 읽고, 여성혐오에 맞서 항의하는 시위를 열고, 훌륭한 여성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목록

SPECIAL

image 아버지가 이상해

MAGAZINE

  • imageVol.170
  • imageVol.169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