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님아 그곳을 떠나지 마오

2016.11.28
조금만 질척대겠다. 오바마가 백악관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의 대북 정책이 유독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되어 내가 누리는 평화를 더 공고히 해줄 것 같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금융 및 무역 정책이 우리나라의 경제에도 도움이 되어 당장 내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는 뜻도 아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10%에 육박했던 실업률을 임기 8년 동안 4.9%까지 떨어뜨린 지도자로서 그의 역량이 백악관이 아닌 청와대에서 펼쳐진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그냥 망상일 뿐이다. 그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고 우선해야 하는 미국 대통령이고, 아무리 인격적으로 훌륭하다 한들 바다 건너 작은 반도에 사는 이름 모를 동양인 남성에게까지 쏟을 이타심은 없을 것이다. 사실 최근 문제가 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만 보더라도 일본에 특히 우호적인 오바마의 대아시아 정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게 맞다. 사드 배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그의 퇴진이 아쉽다면, 이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이 진심으로 걱정된다면, 미국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위치에 서 있는 것만으로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을 제공하는 수행적인 힘 때문이다.

트럼프의 당선에서 가장 뼈아픈 것은 공개적으로 인종차별,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이민을 배척하는 말종을 미국의 시민들이 선택했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많은 이가 정치공학적으로 그의 막말이 어떻게 백인 저학력층이 공유하는 엘리트 혐오의 정서와 조우하고, ‘이게 다 이민자 탓이다’라는 주장이 직관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가졌는지 설명하지만, 사실 이 주장의 상당 부분은 이미 논파되었다. 트럼프가 선동적으로 제시하는 팩트는 진보 성향 언론을 통해 다수가 날조라는 것이 들통났으며, 만들고자 하는 국가의 상 역시 위대한 미국 건설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에 비해 상대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그것보다 훨씬 추상적이었다. 트럼프와 힐러리의 TV 토론에서도 더 많은 사람이 힐러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사태에서 가장 심란한 건 이 부분이다. 공론장에서의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선거에서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보다 나은 논증이 그보다 못한 논증에 졌다. 그렇다면, 과연 옳고 그름은 현실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미국의 철학자이자 민주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인 리처드 로티는 논증으로는 히틀러처럼 잘못된 신념을 지닌 이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예를 든 바 있다. 그는 “히틀러의 생각이 의사소통이 왜곡되지 않은 사회의 건설과는 배치되고, 더 나아가 히틀러가 그의 비판자들에게 답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그 자신이 배태되어 있는 의사소통 행위 맥락이 전제하고 있는 것을 반박하는 모순을 야기한다고 하면 히틀러를 굴복시킬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 이것은 트럼프와 트럼프 지지자들처럼 막무가내로 자기 신념의 당위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도 해당하는 문제다. 합리주의자들의 기대처럼 세상은 더 합리적인 것이 승리하는 곳이 아니다. 논리적 이해 능력이 부족하거나 논리를 부정하는 이들을 논리로 이기거나 설득하기란 불가능하다. 로티는 결코 정치적 올바름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지만 실제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동력은 논리가 아닌 정서로 본다. 그는 이를 “구체적인 것에 대한 민감성”이라 말한다.

힐러리에게 그런 능력이 부족했느냐는 것과는 별개로, 분명 오바마는 “구체적인 것에 대한 민감성”으로 새로운 세상의 전망을 제시하고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동성애 커플의 결혼을 직접적으로 지지하고 동성애자의 결혼이 법제화되자 #LoveWins라고 말하며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랑의 힘을 강조했고, 총기 사고로 사망한 흑인 목사를 추도하는 연설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함께 있는 사람들의 슬픔과 교감했다. 과학 교양 다큐멘터리 [코스모스]가 새롭게 만들어지자 축하 연설에서 “우리는 우리가 느꼈던 가능성을 새로운 세대에게 전해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탐험해야 할 새로운 세계가 있고 우리는 이에 열정을 펼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우주에 대한 호기심의 열망을 자극할 줄도 알았다. 만화 [송곳]의 구고신은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정치적 지형에서 분명히 진보적인 리버럴이었으며 정치적 올바름에 천착하는 인물이지만, 또한 그것이 단순히 옳은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라는 것을 자기 삶의 스타일 안에서 증명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상징적인 위치까지 더해 그가 추구하는 올바름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에겐 용기를, 그것을 부정하는 이들에겐 최소한 말을 아끼게 하는 심리적 장벽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지난해 미국의 동성애 결혼 법제화 결정과 함께 서울에서의 퀴어문화축제 역시 긍정적인 기운으로 넘쳤던 것을 떠올려보라.

그래서 오바마의 퇴임은, 그리고 트럼프의 집권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자 경제대국으로서 국제질서에 개입하는 문제를 떠나서도 이 먼 한국 땅에서 중요한 문제다. 물론 미국에서 그러하듯 트럼프가 집권한다고 해서 한국에서도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바로 의기양양하게 양아치 본색을 드러내진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소위 진보 정당 게시판에서도 힐러리가 대선에서 패배하자 바로 멸칭으로 ‘메갈리아’ 운운하며 비꼴 정도로, 잠재된 혐오 정서는 그것이 배척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 너무 쉽게 튀어나온다. 혐오 정서는 언제나 옳은 것보다는 더 강한 것, 더 사랑받는 것, 더 다수인 것 앞에서 웅크린다. 물론 더 질척대는 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을 역임한 오바마는 내가 아닌 미국 국민이 붙들어도 떠나야 하고, 결국 이곳에서의 정치적 올바름이란 저 멀리 미국 대통령의 권위보다는 우리 안에서의 합리적 논쟁과 “구체적인 것에 대한 민감성”을 통해 확보해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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