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2016│② I.O.I부터 라이언까지, 올해의 인물

2016.11.29
분위기는 뒤숭숭하고, 해결되지 않은 일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크게 이름을 부르고 박수를 보내야 할 사람들이 있다. 혼란스러운 2016년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빛났던, 올해의 인물 열 명을 꼽았다.

I.O.I, 이것이 시대정신이다
어린 소녀들과 걸 그룹, 서바이벌쇼. 2016년 새해와 함께 시작된 Mnet [프로듀스 101]은 시대정신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101명의 소녀들이 생긋생긋 웃으며 ‘나를 뽑아달라’고 외치는 ‘PICK ME’는 여성에게 수동적이고 무해하며 사랑스러울 것을 요구하는 사회의 거울상이자, 외모와 재능으로 여성들을 낱낱이 평가하고 줄 세우는 또 다른 ‘미스코리아 대회’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방송은 출연료도 제공하지 않은 채 단지 그들을 전시하기에 바빴고, 매니지먼트는 그들에게 어울리는 콘셉트와 곡을 입혀주지도 못했으며, 온갖 예능 프로그램은 아재의 이름으로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을 불러댔다. 마지막 타이틀곡 ‘너무너무너무’는 9개월에 걸친 그들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서사를 부여하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버전의 애교를 강요하는 곡이었다. 그럼에도 I.O.I의 11명은 각자 다른 얼굴과 생기를 잃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해체하는 순간까지 단단한 호흡과 서로를 향한 애정을 보여주며 팀의 가치를 증명했다. I.O.I가 폭넓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프로그램의 성공과 별개로, 결국 멤버 하나하나의 빛바래지 않는 매력 덕분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이돌 역사에서 유례없이 짧게, 그리고 뜨겁게 사랑받았던 걸 그룹의 퇴장과 함께 2016년이 저물었다. 

김연경, 세계 최고의 위엄
리우 올림픽의 여자 배구 경기는 놀라웠다. 경기 결과를 떠나 큰 키의 여자 선수들이 하늘을 나는 듯 서브와 블로킹을 하고, 몸이 부서져라 리시브를 받으며, 거칠게 욕을 하며 승부에 집중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중 한국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이자 세계 최고의 공격수 김연경은 코트 안과 밖에서 최고의 자리에 어울리는 당당함으로 모두를 사로잡았다. KBS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했을 당시 강호동이 한 “여자 배구의 꽃”이라는 말에 “꽃?”이라며 코웃음을 치거나, 올림픽 예선 기자회견에서 여성 선수로서 지카 바이러스가 걱정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임신할 생각이 없다”라는 답변은 김연경이기에 가능했다. 방송 해설과 언론이 여성 선수들에게 ‘태극낭자’나 ‘요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거나 “미인 대회에 출전한 것 같은”과 같은 발언을 할 때, 그는 스포츠 선수로서의 위엄을 보여줬다.

나홍진, 문제적 감독
데뷔작이었던 영화 [추격자]부터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항상 난폭했고, 특히 인간을 거의 고깃덩어리에 가깝게 다뤘던 [황해]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6년 만에 [곡성]으로 돌아온 나홍진 감독은 2016년에 가장 대중적인 반응을 얻은 창작자 중 한 명이 됐다. 여전히 잔혹한 정서를 품고 있으면서도, 어느 쪽으로도 해석 가능한 ‘미끼’를 던지는 방식은 관객들이 ‘완벽해설’ 리뷰를 찾아 나설 만큼 능동적인 해석을 하도록 만들었고, “뭣이 중헌디”는 올해의 유행어 중 하나가 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에는 급기야 [곡성]이 지금 시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예측한 작품이었다는 재평가마저 나왔다. 천만 영화가 1년에도 여러 편 나올 만큼 TV를 보듯 영화를 소비하는 시대에, 나홍진 감독은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로 극장을 나선 이후까지 뜨거운 반응을 견인하는 논쟁적인 창작자가 됐다.

라이언, 귀여움으로 물들이다
이모티콘으로 활용되는 카카오 프렌즈의 새 캐릭터 라이언이 제작사 내에서 ‘라 상무님’이라고 불린다는 소문이 있다. 캐릭터 매출액이 워낙 높아서다. 동그란 얼굴, 단추 같은 눈, 그리고 두꺼운 일자 눈썹의 라이언은 무표정한 얼굴로 온몸을 흔들며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홀렸다. 만화적인 표정을 지으며 이모티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라이언의 무표정은 귀여울 뿐만 아니라 인형이나 키링 등의 각종 굿즈로 제작되기 이상적이었다. 사람들이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강남대로의 플레그쉽 스토어에서 라이언을 사기 위해 1시간 넘게 기다릴 만큼 라이언을 사랑했다. 대단한 귀여움이다.

박보검, 새로운 남성 스타의 얼굴 
박보검은 “눈아(누나)”라고 부르면서 여성 고객들에게 어필하는 렌즈 광고를 찍기도 하지만, “내일 뭐 입지?”라고 묻는 남성 슈트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에 대한 선호도는 폭넓다. tvN [응답하라 1988]의 최택과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세자 이영은 천재바둑 기사이거나 지략가이지만,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완벽하다기보다는 조금 엉성하다.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면서도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은 친근함. 여기에 각종 방송과 기사를 통해 알려진 작품 밖에서의 미담을 통해 ‘바른 생활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세상에 존재할까 의문이 들 만큼 순수하다는 판타지를 만들었다. 박보검은 청년이지만 순수하고 선량한, 동시에 공격성이 배제된 소년의 얼굴로 사랑을 받는다.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새로운 유형의 스타 탄생이다. 

서복현, 기자의 정의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220일이라는 시간 동안 유가족들보다 더 늦게까지 팽목항에 머물렀던 JTBC 기자들 중 한 명은 서복현이었다. 포근한 바람이 불어오던 계절은 한여름으로 바뀌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문턱에 이르는 동안 그 역시 점점 수척해져가는 얼굴로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현장의 상황과 유가족들의 심정에 대해 꾸준히 리포팅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4일, 서복현 기자는 최순실의 사무실에 남은 짐 더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및 국정 관련 각종 자료가 담긴 태블릿 PC를 입수해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혀내고 결국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게다가 그 이후, 매일 단독으로 차움과 최순실, 차움과 김기춘 비서실장, 차움과 박근혜 대통령의 연결고리를 꼼꼼히 짚어나가며 세월호 참사 당시 의문으로 남아 있던 대통령의 7시간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4년 동안 되돌릴 수 없이 망가진 정부와 한국의 실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 현장 두 곳에 모두 서복현 기자가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과 언론사라는 타이틀이 어떠한 신뢰도 주지 못한 지 오래인 지금, 아니, 무엇 하나 믿을 수 없는 시절, 서복현은 오로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함으로써 적어도 세상이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다고 믿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송중기, 동시대 가장 인기 있는 남자의 조건
이미 송중기는 영화 [늑대소년]과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한국갤럽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 1위까지 오른 스타였다. 그러나 제대 후 주연을 맡은 KBS [태양의 후예]가 최고 시청률 38.8%(AGB 닐슨 전국 기준)를 기록하면서 그보다 더 올라갈 곳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입대 전보다 더 많은 숫자의 광고를 찍었고, 9시 뉴스에서도 그를 직접 초대했다. 무엇보다 그는 매력적인 남자 캐릭터의 기준을 재정립했다. 그간 대중문화 영역에서 군인은 전형적인 마초성 안에 묘사되곤 했지만, 송중기가 연기한 유시진은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소년스러움을 잃지 않는 다층적인 매력을 갖고 있었다. 이른바 ‘나쁜 남자’나 ‘츤데레’라는 명목하에 여자에게 위협적으로 구는 캐릭터와 정반대에 있었던 그의 캐릭터는 지금 드라마 속 남성 캐릭터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보여줬다.

우리 동네 음악대장, 걸어 다니는 주크박스
첫 출연은 겨울이었고, 그때 입은 의상과 가면이 덥게 느껴지는 여름이 올 때까지 ‘우리 동네 음악대장’(이하 음악대장) 하현우는 MBC [일밤] ‘복면가왕’의 가왕이었다. 총 9번, 즉 18주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시청자들은 그의 장기 집권에 지겨워하기보다는 이번엔 어떤 새로운 노래가 그의 목소리를 타고 재탄생할지 기다리는 마음으로 ‘복면가왕’을 시청했다. ‘Lazenca, Save Us’, ‘하여가’ 등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곡을 섭렵하며 매번 폭발적인 고음을 내지를 수 있는 음악대장은 아주 완성도 높은 주크박스였다. 폭넓은 음역대가 난이도가 되고, 가장 높은 난이도의 노래를 부르는 자가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현우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최강자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게 음악대장은 지금도 홍수처럼 쏟아지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 사이에서 ‘복면가왕’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그의 바람대로 국카스텐 역시 더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얻었다.

이세돌, 스타가 된 바둑천재
이세돌은 원래부터 천재라 불리던 바둑기사였다. 그러나 바둑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는 오래였고, 때문에 이세돌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것은 바둑세계 안의 일이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이 모든 상황을 바꾸어놓았다. 이세돌은 인공지능과의 대결 앞에서 단 한순간도 가볍게 여기거나 흔들리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고, 알파고에게 이겼을 때는 “예상하지 못했을 때 대처능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짚어내고 즐거워했으며, 끝내 패배했을 때조차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위엄을 지켰다. 더불어 온갖 고난을 겪어왔음에도 짙은 눈썹까지 똑 떨어지게 가지런히 자른 앞머리, 소년처럼 천진한 미소 등 서른 중반에 이른 남성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세상에 찌들지 않은 듯한 특유의 분위기는 이세돌을 존경하는 동시에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인공지능과 바둑으로 맞붙은 인간이 써내려간 드라마, 그리고 그의 독보적인 캐릭터 덕분에 3월의 일주일간은 다른 모든 것이 시시했다. 이제 어떤 스타보다 익숙한 이름이 된 그는 라면과 비타민, 공익 광고 등 곳곳에 등장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거나 다보스포럼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세돌’, 이름처럼 바둑으로 세상을 지배했다. 

이화여대 학생들, 강한 여성들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교 측이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사업을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행한 것에 반발해 시위에 들어갔다. 농성 3일째, 그들을 막기 위해 무려 1,600명의 경찰이 투입돼 진압을 시도했다. 이해하기 힘들 만큼 과도한 대처였고, 시위가 계속되는 동안 이화여대 총장, 최순실의 비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부조리의 단서가 세상에 드러났다. 86일에 걸친 이화여대생들의 끈질긴 시위는 2016년 한국을 뒤집어놓는 사건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고, 그들이 경찰 1,600명과 대치할 당시 부른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여성들의 연대와 희망을 전달하는 노래로 재해석됐다. 그리고 학내 시위가 끝난 후에도 이대생들의 목소리는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 시위에서 여성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깃발로, 이곳에서도 울려 퍼지는 ‘다시 만난 세계’로 이어지며 기존의 시위 문화에 변화를 일으켰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강인한 여성들이 해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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