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2016│① 박근혜의 몰락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있을까

2016.11.29
어쩌면 올해의 가장 큰 사건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다. 올해 10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폭로되기 시작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정치적 성향을 가리지 않고 국민적인 공분을 이끌어냈다. 백만 시민은 거리로 나왔고 하야와 탄핵에 대한 요구는 구체적인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의 이름은 국민적 분노의 명확한 대상으로 호명되고 있다. [아이즈]가 올해의 인물로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건 그래서다. 지난 4년 동안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이 치부를 들키고 실질적으로 입지가 무너졌다. 드라마틱한 동시에 말 그대로 국가적인 사건이다. 흥미롭게도 2007년 [경향신문] 역시 ‘올해의 인물’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뽑았다. 이유는 정반대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대의를 존중하는 ‘원칙’과 파괴적 정치언어의 홍수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절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이행해야 할 상식적인 덕목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모습의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단연 돋보이는 것”이라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헛짚은 걸까. 결과론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진보 성향 언론에서조차 높게 평가할 정도로 그는 이미지가 깨끗한 정치인이었고, 이것은 그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의 기대감을 높여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몰락의 현재적인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이 괴리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무너지고 추락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을 세우고 무엇으로 비상하였는지를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 정확히 우리는 대통령 박근혜에게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이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것인가.

하지만 박근혜가 무엇을 실망시켰고 그의 몰락이 어떤 가치, 어떤 시대의 몰락을 드러내느냐는 질문은 처음부터 난항에 빠진다. 근본적으로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박근혜라는 텍스트를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여성학자 정희진은 [한겨레]에서 박근혜가 1993년에 낸 에세이집을 리뷰하며 “무엇보다 읽히지가 않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글쓴이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 나오는 전형적인 글”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발언에서도 계속해서 제기되던 문제다. 실체가 없는 ‘창조 경제’나 ‘국민행복시대’ 같은 슬로건도 그러하고, 2012년 MBC 파업 당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안타깝게 생각한다” 수준의 답변도 그러하다. 주술 호응이 한순간도 맞지 않는 특유의 화법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한 자아의 나름의 관점이나 사고의 체계가 없다. 많은 이들이 확신하듯 박근혜의 미숙한 자아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불가분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불편한 진실은, 그가 미성숙한 인간임에도 대통령이 된 게 아니라 미성숙한 인간이기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을 때부터 많은 시사 전문가들은 그의 압도적 인기와 지지율을 단순히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여론분석가 김헌태는 다른 시사 전문가들과 공저한 [박근혜 현상]에서 “박근혜의 삶 이야기에서는 딱히 지지할 만한 명백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면서 대중이 박근혜라는 이름에 투영하는 욕망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 하나는 착한 공주의 신화다. “잔인하고 포악하며, 때로 이기적인 군주, 즉 아버지와 대립적 위치에서 존재하기도” 하는 착한 공주. 박근혜는 해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투영의 대상에 가까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언어로 말할 줄 모르는 그의 미숙한 자아는 역설적으로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제멋대로 투영하기에 적절했다. 앞서 [경향신문]이 말한 원칙과 절제의 사례는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전략’을 통한 갈등 조정을 너무나 싫어하고 오직 당규와 당헌만을 원칙으로 삼아 판단하며, 그래서 내부적으로도 원칙주의자와 불통주의자로 평가가 갈렸던 것을 떠올리면, 높은 도덕적 고고함보다는 차라리 콜버그의 도덕발달 6단계 중 1단계인 규칙에 대한 일방적 존중 단계에 가깝다. 원칙과 절제의 정치인 박근혜와 권력을 사유화한 권위주의의 화신 대통령 박근혜 사이에는 아무 모순이 없다. 그의 도덕관에선 국민이 대통령의 권위에 복종하는 게 당연하다. 임기 중 그가 2단계로 넘어갔다는 징후는 보인다. 2단계는 자신의 이익계산을 중심에 둔 단계로, 타인의 인격이 지닌 가치와 자신의 물질적 재산의 가치를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사회적 자아라 말하는 건 3, 4단계 즈음이다.

때문에 대중이 든 촛불의 정치적 정당함과 긍정적인 힘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의 몰락은 그 자체만으로는 구시대의 몰락과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역사의 진보를 증명하지 못한다. 뉴스는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에서 그에게 속았다는 민심을 전하지만, 그들이 박근혜에게 투영하고 기대한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상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에게 원했던 것이 박정희의 재림이든 우아한 노블레스였든, 근거 없는 기대가 배신당한 것에 대한 분노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공허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도덕적인 자산이 없던 인간을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데 그칠 것인가, 그런 사람에게 이상적인 대통령의 상을 투영한 메커니즘을 극복할 것인가. 후자는 박근혜가 상징하는 구시대적인 해악을 말 그대로 상징적으로 쫓아내는 것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그에게 투영했던 지도자상의 허구성을 직시하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반성적인 작업이다.

올해의 인물이라는 타이틀을 걸었지만, 사실 숨겨왔던 비리의 퍼즐이 드러나기 전에 밝혀진 것만으로도 우리의 나라와 지도자는 엉망진창이었다. 사라진 7시간의 진실이 무엇이든 그는 세월호 사태 때 부재하는 컨트롤타워였으며, 유족들과의 약속을 저버린 거짓말쟁이며,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로 국민을 실질적으로 살해한 폭압적인 독재자였다. 기업에 대한 국가의 협박을 이제야 밝혀진 것처럼 말하기엔 CGV의 말 같지도 않은 ‘국뽕’ 광고가 자발적인 것이라 믿는 이들은 전에도 없었다. 국민적 분노의 명확한 대상으로 호명된 박근혜는 분명 올해의 인물이자 현상이지만, 또한 이제야 올해의 인물이 되었다는 것 역시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속은 것도, 박근혜가 변한 것도 아니다. 명백한 시그널들이 외면되었고, 우리는 너무나 관대했다. 지금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소급되는 모든 것들은 분명 올해의 가장 뜨거운 현상이지만, 박근혜 이후를 생각하고 설계할 수 없다면 이 모든 것은 일회적인 분노로 끝나고 말 것이다. 반대로 박근혜로 소급되는 동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 이후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박근혜의 몰락은 올해의 사건이 아닌 역사적인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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