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죽이는 요리책], 모든 책은 연결되어 있다

2016.12.02
To Die For, 죽여준다는 말은 영어건 한국어건 진짜 죽인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의 의미다. [죽이는 요리책]은 이것을 짐짓 이용해서 끝내준다는 본래의 의미에 또 하나의 풍미를 더한다. 길리언 플린([나를 찾아줘]), 제임스 패터슨([우먼스 머더클럽]), 샬레인 해리스(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루이즈 페니(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스콧 터로([무죄추정]), 할런 코벤([미싱 유])…. 그 밖에도 쟁쟁한 미스터리 작가 110명이 하나씩 내놓은 죽이는 요리법들로 책을 엮었다.

최초의 살인은 아마 먹을 것을 두고 벌어졌을 것이다. 인류는 한때 먹기 위해 모든 생명과 살벌하게 경쟁했고, 많은 경우 패배자는 승리자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문명의 시대에는 먹기 위해 직접 피를 볼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식욕은 여전히 강렬한 욕망이고 폭력과 통하는 면이 있다. 미스터리 소설에 먹을 것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많은 탐정들이 특정 음식에 집착한다. 잭 리처와 커피, 네로 울프와 맥주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스 마플은 열두 권의 장편과 스무 편의 단편을 통틀어 143잔의 홍차를 마셨다.

죽이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추천하는 죽여주는 요리는 뭘까? ‘럼주에 적신 누텔라 토스트’나 ‘달걀 세 개짜리 오믈렛’처럼 이름만으로도 군침 떨어지는 게 있는가 하면, ‘닭고기 아티초크 타라곤 수프’나 ‘란초 옵세소 라벤더 비트’처럼 암호에 가까운 게 있고, ‘호호호 럼 한 병’이나 ‘팬, 플랜 그리고 플랜’처럼 요리보다는 미스터리 소설 제목처럼 들리는 것도 있다. 요리책으로서 이 책은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일단 구미가 돋는 요리가 별로 없고, 균형이 안 맞는 재료 배합이나 불명확한 지시 등을 보면 이 작가들 중 요리에 익숙한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재미라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 책은 성공이다. 작가마다 주어진 한 페이지의 반은 요리법이고 나머지 반은 잡담인데, 비록 요리법은 지루할지언정 잡담은 읽는 재미가 충분하다. 장담하건대 작가와 편집자가 노린 것도 이쪽일 것이다. 일종의 쉬어가는 페이지로 가끔 등장하는 꼭지들도 재미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독이 들어 있던 음식과 음료 명단이라든가, 허드슨 부인이 셜록 홈즈에게 제공한 아침식사 메뉴라든가. 미스터리 소설 독자라면 흥미롭지 않을 도리가 없다.

모든 책은 책으로 이어진다. 어떤 책을 보다 보면 필연적으로 다른 책을 읽게 되고, 그 책을 읽으면 또 다른 책이 궁금해진다. 일종의 케빈 베이컨의 법칙인 셈이다. 나는 미스터리 소설의 대단한 팬은 아니고 110명 중 아는 이름보다는 모르는 이름이 훨씬 많다. 그런데 요리와 작품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것을 읽다 보니 그 사람들이 쓴 책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궁금해졌다. 일단 벤 윈터스의 [모두의 엔딩]부터 읽으려고 한다. 지구 최후의 날이 일 년도 안 남은 시점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형사 헨리 팔라스의 이야기다. 그 책은 다시 어떤 책을 데려올까. 어떤 미스터리도 따라오지 못할 두근거림이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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