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일본 드라마도 변한다

2016.12.02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이하 [코노 에츠코])는 제목만 보고 예상할 수 없는 드라마다. 주인공의 직업인 ‘교열’ 뒤에 굳이 ‘걸’을 붙이는 센스하며, ‘수수하지만 굉장’하다는 의미가 불분명한 감탄하며, 작품의 첫인상으로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 제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외로 [코노 에츠코]는 익숙하지 않은 일을 제대로 해나가는 여성의 이야기이자, 자신을 무시하는 남성들에게 절대 주눅 들거나 져주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코노 에츠코(이시하라 사토미)는 함께 일하는 동료의 모형 집을 부수고 그냥 돌아서려는 남성 편집자에게 “사과하는 게 어때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남의 걸 부수고 사과도 없이 가진 않죠”라고 일갈하는가 하면, 신입이라는 이유로 일을 믿고 맡길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건 당신이 교열본을 그냥 넘기니까 그렇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여자들 머릿속에는 온통 패션과 디저트뿐”이라며 스포츠카 자랑에만 열을 올리는 남성들 앞에서는 알파 로메오에 관한 정보를 막힘없이 늘어놓으며 이렇게 마무리해 기를 죽인다. “패션과 디저트, 진짜 좋아하죠!” (생긋)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여성인 만큼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지만, 작품은 사치를 핑계로 그를 비웃거나 혐오하지 않는다. 의도치 않게 교열부에 입사하게 되어 좌충우돌하지만 결국 끝까지 책임지고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하는 것 역시 코노 에츠코의 몫이다. 일하는 여성과 그들의 성장, 여성들이 부딪히게 되는 남성 중심 사회의 모습을 담아낸 건 [코노 에츠코]의 미덕이며, 이는 2016년 한 해 동안 일본 드라마의 흐름이기도 했다. 2분기에는 뛰어난 피부과 의사인 여성의 결혼 활동을 담은 TBS [저 결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가, 3분기에는 NTV [집을 파는 여자]와 TV 아사히 [여자들의 특수최전선], 유사하게 광고회사의 여성들을 다룬 후지 TV [영업부장 키라 나츠코], 도카이 TV [논마마 백서]가, 이번 분기에는 [코노 에츠코]와 더불어 여성 의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KTV [메디컬팀 레이디 다빈치의 진단], 벌써 4시즌째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 아사히 [닥터 X]가 편성됐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전, 2015년 1월부터 3월까지 후지 TV에서 방송된 [문제 있는 레스토랑]은 드라마로 배우는 페미니즘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젠더 이슈를 전면에 드러낸 작품이었다. 주인공 타나카 타마코(마키 요코)는 자신의 친구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20여 명의 남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옷을 전부 벗는 것으로 사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닛타 유미(나카이도 후미)는 도쿄대를 졸업했음에도 회사에서 짧은 스커트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고 남자 직원들 앞에 서는 역할로 활용되고, 카와나 아이리(타카하타 미츠키)는 헤프게 보인다는 이유로 상대 남성들로부터 일방적인 스토킹이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사람을 화나게 하는 데 자신 있으니까” 그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넘어간다. 이 밖에도 면접 자리에서 “난자는 계속 노화한다니까 당신도 빨리 결혼하지 않으면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돼버릴 거예요”라는 말을 듣거나 회식 자리에서 과한 스킨십을 하고 술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등 일본 사회의 여성혐오가 끊임없이 재현되고, 여성들은 서로 연대함으로써 차별에 대항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말하자면 여성혐오의 양상은 물론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도달점까지, 지금의 한국과 일본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6년 9월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된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의 저출산 문제는 한국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심각한 상황이며 그럼에도 여성이 도맡는 가정 내 노동은 폄하되고 남성들은 가사와 육아를 자신의 일로 인식하지 않는다. 보육시설과 관련 정책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국가 또한 여성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공범이다. [영업부장 키라 나츠코]는 광고 크리에이터로 일하다 출산 및 육아로 3년을 휴직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해체 직전의 영업부 부장으로 발령 난 키라 나츠코(마츠시마 나나코)의 고군분투기를 그린다. 그 과정에서 단 며칠 동안 아이를 보살피고 밥을 해 먹였을 뿐이면서도 “당신 내가 도와주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해?”라며 투정하는 남편, “남자는 좋겠어요. 당연한 걸 하고도 생색낼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키라의 갈등이 다뤄졌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부 여성들은 내일소녀대(明日少女隊)와 밥상뒤집기여자액션(ちゃぶ台返し女子アクション)을 조직해 ‘모에’ 캐릭터의 불편함을 고발하고, 길거리에서 골판지로 만든 밥상을 뒤집는 행위 등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성 평등이 모두의 행복”과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은 마음대로다”라는 것이며,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필자이기도 한 우에노 치즈코는 현재 일본 여성들의 움직임을 “분노는 여자에게 금지된 감정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변화를 느낀다. 시대가 다르더라도 여자의 삶이 힘든 것은 다르지 않다. 페미니즘에 편견이 없는 세대가 신선한 재발견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지난 8월 트위터에서 ‘#남녀가 뒤바뀐 일본 사회(#男女逆転した日本社会)’ 해시태그가 유행했던 것처럼, 기혼과 미혼의 구분을 떠나 페미니즘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관심은 한국만큼이나 꾸준히 끓어오르는 중이다. 심지어 패션지 [보그걸 재팬]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거의 매달 페미니즘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페미니즘을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추천하거나, HBO [걸스]의 연출자이자 배우인 레나 던햄과 페미니즘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페미니즘의 역사와 현재의 의의를 짚어낸 것이다. “이제 복장으로 남녀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여성도 남성 잡지를 참고하고, 남성용 아이템을 잘 활용하는 것도 스타일링의 한 가지 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겉보기에는 여성을 불문하고 ‘자신다움’이 잘 받아들여지는 사회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젠더리스화’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자임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매일 직면하고 있다. ‘여자니까’라는 성별로 분류되거나 생김새 또는 체형으로 판단된다”는 [보그걸 재팬] 편집부의 글은 현재 일본 여성들이 왜 페미니즘에 갈증을 느끼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성차별적인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여성들의 열망은 크고, 덕분에 일본 드라마들이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다만, 오히려 창작자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인식을 따라잡지 못해 벌어지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영업부장 키라 나츠코]는 경력 단절을 겪은 여성이 복직을 시도하며 “당신이 아기 기저귀를 갈고 있던 3년간 많은 것이 변했다”거나 “남자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빈정거림을 듣는 등 ‘워킹맘’의 고된 현실만큼은 제법 섬세하게 반영했지만, 비뚤어진 사회적 시선과 잘못된 시스템의 개선이 아니라 일과 가정 모두를 완벽하게 잡으려는 여성 자신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엉뚱한 훈수로 마무리됐다. [교열걸 코노 에츠코]의 코노 에츠코는 수수한 동료를 “철 팬티”(정조대. 즉 섹스를 전혀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매력 없는 사람)라 비웃는 이들을 향해 “정조대란 건 오히려 상대에게 사랑받고, 구속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여자가 입는 거야”라고 위험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성의 지위가 한국만큼이나 처참하다고 알려져 있는 일본에서도 느릴지언정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으며, 창작자와 수용자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또한 SBS [질투의 화신]처럼 한계는 있되 여성의 일과 연애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드라마가 등장하기도 했다. 적어도 뒷걸음질이 아니라 한 발짝이나마 나아간 것이라면,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드라마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날은 예상보다 조금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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