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에 대한 4가지 쟁점

2016.12.07
모두가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구도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한한령(限韓令, 한류금지령) 이야기다. 지난 11월 18일 중국 연예 전문 웨이보 계정인 ‘웨이스관차성’은 강소위성을 비롯해 강소성 내 지상파 채널에서 한국 연예인이 등장하는 어떤 광고도 방영하지 말라는 내용의 스크릿샷을 공개했다. 소위 한한령이라 불리는 움직임이 중국 내 연예 매체들을 통해 보도되었고, 한국에서도 위기감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중국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SM 엔터테인먼트나 CJ E&M 등의 주식은 눈에 띄는 비율로 떨어졌고, 이영애의 복귀로 화제가 된 SBS [사임당, 빛의 일기]는 한중 동시 방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방영을 미루다 결국 내년 1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는 꾸준히 예상되었던 만큼 설득력은 있지만 중국 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소문만 무성한 한한령에 대한 질문은 간단히 압축된다. 그래서, 한한령은 실재하는가? 하지만 대답은 그리 간단치 않다.

정말 한한령은 있나
공식적인 대답은 ‘아니오’다. 한류 연구를 담당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윤재식 박사는 “중국의 방송을 총괄하는 광전총국에서 한한령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는 근거가 없다. 무엇보다 온라인에서의 한국 콘텐츠 방영에는 문제가 없다. 중국 업체의 경우 어떤 분위기가 감지되면 우선 조심하는 경향이 있어서 한국 업체와 계약을 파기할 때 한한령을 이유로 들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는 다르다. 지상파 드라마 관계자 A는 “뉴스가 터지기 한 달여 전부터 이미 방송가에서는 돌던 이야기다. 당장 중국의 지상파에서 한국 연예인이 안 보인 지는 오래다. 그나마 텐센트나 망고 같은 온라인 플랫폼 방영으로 버텨왔던 건데 이젠 그마저도 막히고 있는 걸 현장의 사람들이 느끼는 게 한 달 정도 됐다. 중국 측과 기획 단계에서 논의하던 모든 드라마 프로젝트가 홀드 상태가 됐다”고 말한다. 이것은 최근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한류제한령을 통보했다는 JTBC 보도로 조금 더 확증되었다. 예능 쪽에서도 한한령을 느낀다. 중국 제작사와 예능 기획 및 포맷을 함께 작업하는 기획자 B는 “한국 예능을 포맷으로 한 모 예능 프로그램 녹화장에 갔는데 그쪽 스태프가 ‘앞으로 한국 연예인들 어떡해요?’라고 말하더라. 그 이후 실제로 우리도 중국 제작사와의 회의 하나가 취소됐는데 한한령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가장 피부로 와 닿는 일은 예능 한류의 선봉이라 할 수 있는 김영희 PD가 제작한 [래파설주취주]가 촬영을 다 끝내놓고 편집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이 연기된 것이다. 적어도 중국 내에서의 공동제작에 있어서만큼은 아직 별다른 제제가 없었던 만큼 이 건에 대한 위기의식은 남다르다. 요약하자면 공식적인 지령으로서의 한한령은 확인된 바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한류의 배제가 이뤄지고 있다. A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과의 일은 항상 그렇다. 공식적으로 확인해주는 일이 없다. 언제나 No Confirm No Deny다.”

정말 사드 때문인가
현재 한한령에 대한 소문 중 가장 정설처럼 도는 것은 한국에서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한한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한령 자체의 공식적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만큼, 사드 보복설 역시 실체는 없다. 사드가 문제시된 것은 지난 8월 중국의 방송·영화·광고 등을 관할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하 광전총국) 관리인 옌웨이가 웨이보를 통해 한국 연예인 진출 제한에 대해 올린 멘션 때문이다. 그는 한국 연예인 제재에 관해 “첫째, 민족문화산업을 보호하고 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며, 둘째, 중국 연예인의 국민적 영향력과 호소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고, 셋째, 남성이 지나치게 부드럽게 표현되는 비정상적인 현상을 줄이기 위한 것이며, 넷째, 화류(華流)가 한류(韓流)를 대체해 중화문화권을 주도하기 위한 것이고, 다섯째, 분별없는 행위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여기서 사드를 암시하는 것은 다섯 번째 항목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앞의 네 가지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드 이전부터 당장 한중 FTA에서부터 한국을 비롯한 해외 드라마는 프라임타임에 편성할 수 없고, 동시 방영도 안 되며, 위성TV당 해외 포맷 수입도 연간 1회밖에 안 되는 등 한류를 비롯한 해외 콘텐츠에 대한 배제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이전부터 해당 산업을 지켜본 A는 “사드가 근본적 원인인지 트리거인지는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자국 콘텐츠를 장려하는 수순에 우리나라에서 빌미를 주니 이참에 잘됐다 싶어서 하는 것일 수 있는데 이쪽이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이 문화산업에 있어 외국 콘텐츠를 그냥 수입하지 않고 사업하려면 자기네에 들어와서 하라는 방식이니까”라고 예상한다. 윤재식 박사 역시 “우리 언론이 사드 보복설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그렇게 미끼를 덥석덥석 물면 저쪽에서도 이 카드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 경우엔 무대응으로서의 대응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류에 대한 배제를 물밑에서 진행하던 중에 한국 정부가 자진해서 굉장히 좋은 명분을 제공해줬다고.

한한령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우선 한중 동시 방영을 예상했던 [사임당, 빛의 일기]가 몇 개월째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더는 미룰 수 없어 우선 국내 방영 날짜부터 확정한 상태다. KBS [태양의 후예]에 출연했던 송중기는 최근 중국 스마트폰 비보의 광고 모델에서 하차했으며, 역시 [태양의 후예]로 한류 스타가 된 김지원을 모델로 발탁한 한국의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중국 홈쇼핑 진출 계획을 보류한 상태다. 하지만 당장의 심의 통과나 모델 및 연기자 교체처럼 가시적인 것보다는 비가시적인 것, 즉 아예 출발 자체가 안 되는 프로젝트가 많다는 것이 한한령의 피해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가령 한국의 지상파나 유력 케이블 채널에서의 드라마는 당장 한류 스타를 캐스팅하지 못하면 제작비 자체를 투자받기 어렵다. 반대로 중국에 선판매 되어 제작비를 투자받지 못하면 한류 스타를 캐스팅할 수도 없다. 즉 드라마 제작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가 끊기는 셈이다. A는 “사실 방송국이 입는 피해는 어마어마한 수준은 아니다. 제작사가 문제”라고 진단한다. 소위 엎어지는 기획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능도 마찬가지다. B는 “당장 한국 예능의 포맷을 구매하겠다는 이들이 없어지는 것도 큰 손해지만, 그걸 핑계로 한국 예능 포맷을 베꼈을 때 우리의 미래 시장까지 뺏긴다”고 본다. 예를 들어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세트가 마음에 들어서 그걸 베낀 뒤에 프로그램 내용은 다른 걸로 채웠을 때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기 애매해진다. 그나마 한국 스태프들이 함께 제작한다면 어느 정도 주의를 줄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일이 돌아가면 그럴 수 없다. 그러다 몇 년 뒤엔 그걸 자기네 오리지널 포맷이라 주장할 수 있고, 그러면 한국과 중국 간의 문제를 떠나 해외 포맷 시장에서 우리 걸 뺏기고 정작 중국이 포맷 판매를 하는 게 가능”하다. 근거 없는 피해 사례들이 도는 것도 사실이지만, 몇몇 언론들이 주장하듯 눈에 보이는 몇 개의 사례만으로 한한령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집계하는 것 역시 안일한 인식이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가능한가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우선 정말 한한령의 근본 이유가 사드 배치 하나 때문만이라면 외교적으로 풀어나갈 해법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사드가 좋은 핑계일 뿐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한류 콘텐츠 및 인력에 대한 배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재 중국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해도 방송 분야에 있어서는 시장의 요구보다는 광전총국의 영향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윤재식 박사는 “방송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민주주의 국가와는 많이 다르다. 국민에 대한 교화와 민족문화를 지킨다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방송에 대한 제재가 심하다. 당 정책에 시장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지난 6월 19일 광전총국이 내놓은 ‘TV 라디오 프로그램 자주적 혁신업무 추진에 관한 통지’에 따르면 각 위성방송국은 오후 7시 30분에서 10시 30분, 소위 프라임타임엔 중국풍, 중국 특색이 담긴 프로그램을 우선 편성해야 하며 시청률이 가장 높은 21시 20분 시간대엔 자국에서 제작한 공익성 높은 프로그램을 방영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콘텐츠의 비교우위로 시장에서 선택받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실 시장경제 차원에서 제지할 방안도 없다. 한중 FTA에서 방송 엔터테인먼트 시장 개방은 중국과의 합작 및 합자 형태로만 가능한 불완전 개방이기 때문에 중국 당국의 규제 조치에 대해 협정 위반을 주장하기 어렵다. 그나마 민간 영역에서 콘텐츠 노하우의 비교우위로 중국 파트너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도 법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중립지대가 아닌 북경이나 상해의 법정에서 해결한다고 계약서에 명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한령 이전에도 한중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은 명백한 을이었다. 물론 희망적인 관측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윤재식 박사는 “미국 주도의 TPP(Trans-Pacific Partnershi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미국의 탈퇴 가능성(트럼프 당선자의 주장)이 생기면서 현재 한국이 가입한 중국 주도의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지역 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에 다른 나라들이 들어올 확률이 높아졌다. 이 상황에서 중국이 특정 국가에 보복 조치를 취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건 RCEP의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키는 중국이 쥐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한한령 이슈에서 한한령이 실재하느냐 안 하느냐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한한령이 정말로 발의되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 정부에게 중국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압박하거나 협상할 만한 숨겨진 카드가 있을까. 현재 시국을 보면 한한령보다도 훨씬 실체 없는 희망일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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