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던전밥], 이게 다 먹고살자는 만화

2016.12.09
요리는 주방의 연금술이다. 언제나 그랬다. 마녀는 커다란 솥에 온갖 재료를 모아 비약을 끓였으며 신선들은 약초를 기르고 영물을 잡아 환으로 만들었다. 학문의 구체적인 분과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 요리는 의술과 마법 그리고 과학과 결코 나눌 수 없게 뭉뚱그려진 무엇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기초적인 단계의 생물학과 화학 그리고 물리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고도의 지적 행위이다. 그런 만큼 요리는 SF에서 아주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쿠이 료코의 만화 [던전밥]처럼 말이다.

[던전밥]은 제목 그대로의 작품이다. 배경은 던전이고 소재는 밥이다. 내용도 명쾌하다. 저주로 만들어진 미궁을 탐험하던 모험가들이 공복 탓에 몬스터와 싸우다 전멸할 위기에 처했으나 마법사가 마지막으로 외운 주문 덕분에 다들 무사히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마법사만은 미궁에 갇히고 그를 구하기 위해 다시 미궁으로 돌아가기엔 물자나 식량이 모자란 상황. 모험가 그룹의 리더이자 마법사의 오빠인 주인공은 동생을 찾기 위해 미궁 속 괴물을 잡아먹으며 전진하기로 결심한다. 이야기의 구조 역시 단순하다. 모험가 일행은 던전을 수색하며 마물을 사냥하고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는다. 주인공이 동생을 찾는다는 최우선의 목표를 빼면 각각의 에피소드는 비슷한 템포로 반복된다. 그리고 이 심플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에 흥미를 끌어모으는 힘은 작가 쿠이 료코가 환타지 세계를 탐독하는 그 시선에 있다.

쿠이 료코는 인터넷에 연재하던 쇼트쇼트스토리 만화로 유명세를 얻어 데뷔한 작가다. 단편보다는 짧고 콩트보다는 기승전결을 갖춘, 독특한 발상에서 시작해 허를 찌르는 결말의 쇼트쇼트스토리는 일본 SF에서도 가장 중요한 뿌리 중 하나이다. 쿠이 료코 역시 그 맥을 잇는 작가이며 [던전밥] 또한 쇼트쇼트스토리로 연마된 쿠이 료코의 재능과 도살장의 점원마냥 삶과 죽음을 담백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지적 호기심과 유머를 더한 훌륭한 SF다.

SF는 미래기술에 대한 상상력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논리적인 사고실험의 일환으로 가상의 생물에 대한 학술서를 쓴다면 그 역시 훌륭한 SF다. 고전 RPG 게임인 위저드리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에는 엘프나 드워프를 비롯해 만드라고라에서 켈피까지 다양한 전설과 신화 속의 종족과 괴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의 특성을 식재료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는 작가의 해석은 실존하는 요리책의 레시피를 보는 것처럼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슬라임은 젤리 같은 부정형의 생명체가 아니라 ‘인간으로 치면 위장이 뒤집어지고 소화액으로 내장과 머리를 감싼’ 기생생물이고, 움직이는 갑옷은 저주나 마법이 아닌 ‘조개와 달팽이를 뒤섞은 이매패강과 복족강 사이에 위치한 군집연체동물’이라는 식의 신선한 사고실험은 어느 SF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더욱이 생물학적 가설에 머물지 않고 보다 실용적인 채집 방법이나 요리 과정에 대한 고찰마저 더해졌으니, 각각의 에피소드는 이계의 백과사전을 읽는 것마냥 흥겹다.

먹는다는 행위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먹잇감을 찾아서 사냥하고 채집해 집으로 돌아와 음식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은 지금 시대에 와서는 의미심장한 사치다. 요 근래 요리만화와 쿡방이 대세가 된 이유에는 이 원초적인 삶의 형태를 복원하고 싶은 열망 덕분도 있을 것이다. 쿠이 료코의 [던전밥]은 이러한 소박한 바람에 미지를 향한 기개와 끝없는 탐구의 기쁨을 더했다. 모험은 그렇게 더욱 맛있고 즐거워진다.

dcdc
영화배우 김꽃비의 팬. SF작가. 장편 [무안만용 가르바니온], 단편집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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