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아이돌 팬덤│② 아이돌과 기획사가 주의해야 할 아홉 가지

2016.12.13
2016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면서 아이돌 산업 또한 이러한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관성적 혹은 관행적으로 해오던 기획과 아이돌의 행동, 발언까지 무엇 하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서서히 다가온 것이다. 아이돌이 제시하는 가치나 관념이 팬덤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한 이런 문제에 대해 팬덤 내부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더욱 중요하다. 몇 년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장면들도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으로 재평가되는 일이 유난히 많았던 올해, 문제로 제기된 아이돌 산업의 사건들을 아홉 가지로 정리하고 주의해야 할 이유를 덧붙였다. 비단 기사에 포함된 그룹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뜻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성을 보호해 주겠다는데 좋은 거 아닌가?
2012년, 틴탑의 캡은 Mnet [와이드 연예뉴스]에 출연해 서른 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아들이라면 뭐든지 다 해주면서 원하는 게 있다면 다 사주면서 키우고, 여자는 때리면서 집에만 가둬놔야죠. 밖은 위험하니까요”라고 말했다. 딸에게 폭력을 휘두르겠다는 이 발언은 즉각 비판을 받았고, 캡과 소속사는 “인터뷰 도중 재미있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 의도와 다르게 표현돼서 죄송”하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이것은 여성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위험한 세상을 핑계 삼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권을 발휘하겠다는 의미, 즉 여성을 혼자서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남성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존재로 만들겠다는 발상과 맞닿아 있다. 심지어 계속해서 이러한 인식이 퍼지는 한, 여성은 행위나 옷차림과 관계없이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위험에 처했을 때 여성 자신의 행실을 비난받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여성이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그러게 네가 똑바로 하고 다녔어야지”라는 걸 떠올린다면, 여성의 행동을 검열하고 통제하겠다는 발언은 어떤 식으로든 해서는 안 된다.

외국인 따라 하기 개인기는 재미로 하는 거 아닌가?
샤이니의 종현은 최근 개인 콘서트의 VCR에서 인도풍 분장을 하고 코믹한 상황을 연출했다가 인도인을 희화화한 데 대해 “명백한 나의 잘못이다. 해당 영상에서 삭제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설명처럼 자신에게 관심 없는 여성을 유혹하겠다는 스토리가 있기는 했으나 인도풍 분장을 활용해야 할 이유는 없었고, 그것으로 웃음을 일으킬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K-POP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상황에서도 외국인을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는 태도는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 특히 외국 출신 멤버가 속해 있는 아이돌 그룹에서는 해당 멤버의 서툰 한국어를 따라 하는 모습들이 종종 노출된다. EXO의 백현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방영된 MBC 에브리원 [EXO's SHOWTIME]에서 당시 멤버였던 타오의 말투를 따라 하며 ‘타오 복사기’라는 별명까지 얻은 바 있다. 한국에서 이러한 행동은 지금까지 개그 코드의 하나로까지 받아들여졌지만, 한국에서 성장하지 않은 사람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한, 사용해온 언어의 구조에 따라 발음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을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것은 문제다. 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무례한 것일 뿐이다.

피부색이 짙은 것으로 농담 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2016년 11월, 빅스의 라비는 인스타그램에 검은색 계란 모형 사진을 올리며 “계란 먹으려 했는데 왜 엔 여섯 알이 왔지”라는 글을 게재했다 삭제했다. 엔은 빅스 내에서 피부톤이 가장 어둡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놀림당하여 왔고, 별명 또한 이를 반영한 ‘차흙연’, ‘흑요니’ 등이며 라비와 켄은 자신의 휴대폰에 엔을 ‘빅스 흑요니’, ‘흑요니횽’이라고 저장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EXO의 카이 역시 엔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피부톤 때문에 거기만 조명이 안 들어온 줄 알았다거나 디오의 그림에서 홀로 새까만 색으로 표현되는 등 농담의 소재가 되어왔으며, 스스로 “난 까매서 밤이면 안 보인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피부색이 남보다 짙은 것을 우습다고 여겨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은 외국인의 ‘나와 다른’ 말투를 따라 하는 것만큼이나 인종차별적인 태도다. 그 자리의 혹은 그 사회에서 다수가 비슷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 해서 그것이 ‘정상’이나 ‘기본’이 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면 좋은 거 아닌가?
블락비의 ‘HER’는 “Jesus 무슨 말이 필요해 모두 널 작품이라 불러”라며 “아찔하게 뻗은 곡선” 때문에 “난 바로 기절”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우신 그녀의 자태 보통 여잔 명함도 못 내밀고 끼리끼리 뭉쳐 네 험담을 나누겠지”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여성을 ‘작품’이라 숭배하는 동시에, 그렇지 않은 여성들이 이 ‘작품’ 같은 여성을 헐뜯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구도를 만든다.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며 아름다우면 숭배하고, 그렇지 않은 여성에 대해서 ‘험담’하는 것은 여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 것으로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담고 있다. 또한 빅뱅은 ‘BAE BAE’에서 “넌 시들지 마 이기적인 날 위해”, “영원히 넌 스물다섯이야 내게”라고 했는데, 여성이 나이 먹는 일을 시든다고 표현하거나 여성을 작품이라고 칭하는 시도는 젊은 나이든 볼륨감 있는 몸매든, 남성의 입장에서 보기 좋다는 기준으로 여성의 특성을 고정시켜버린다. 당연하게도 여성은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먹고, 반드시 누군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아름다울 필요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다.

조신한 여자를 좋다는 건 자기 마음 아닌가?
이상형은 분명 취향의 영역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는가는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는 문제일 수 있다. EXO의 카이는 중국판 [바자] 2014년 2월호에서 “건강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도 건강할 테니”라고, 세훈은 “저랑 제 부모님께 잘해줬으면 좋겠고, 집안일도 잘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상형을 밝혔다. 여성을 자동으로 ‘엄마’의 자리에 놓는 것, 수많은 요인이 있음에도 아이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절대적인 조건으로 엄마의 건강을 꼽는 것, 시부모를 잘 대하거나 집안일 잘하는 것을 여성의 미덕으로 여기는 발상 모두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O뿐 아니라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남성 아이돌이 이상형을 묻는 말에 아침밥을 잘 챙겨주는 여성 또는 조신한 여성이라 답하는 등 남성인 나에게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 그 이상을 상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세븐틴은 MBC MUSIC [어느 멋진 날]에서 ‘순댓국 좋아하는 여자 VS 파스타 좋아하는 여자’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대부분 ‘순댓국 좋아하는 여자’를 택해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애초에 여성의 식성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소탈한 여자’와 ‘까다로운 여자’의 프레임을 짜놓은 제작진의 잘못된 접근 역시 지적돼야 할 부분이다. 인터뷰, 리얼리티쇼, 쇼케이스를 막론하고 던져지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가수와 팬 사이에서 과격한 농담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방탄소년단의 슈가는 2013년 5월 트위터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의 사진과 함께 “내님들 내가 다 지켜보고 이씀 한눈팔다 걸리면 이 카메라로 찍어 버림^^ 모서리로^^ 정수리를^^”이라는 글을 게재했고, 2016년 이에 대한 지적이 등장하자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데뷔하기 전부터 SNS로 친근하게 소통하던 팬들과 가수 사이에서 별문제가 되지 않는 합의된 농담이라 생각했겠지만, 친분을 떠나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발언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가수와 팬, 특히 남성 가수와 여성이 많은 팬덤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주의했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최근 이재진은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팬들이 자신을 아저씨라 부르면 기분이 나쁠 것 같다며 앞에 놓여 있던 생수병을 들고 팬들에게 물을 뿌리는 듯한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팬은 늘 가수를 애정하고 지지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팬들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이 그룹의 여장은 다들 웃기려고 하는 거 아닌가?
콘서트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장을 선보인 보이 그룹의 사례는 일일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빅뱅과 틴탑, GOT7, 몬스터엑스, 블락비, B1A4, iKON 등 데뷔한 해를 막론하고 모두가 한 번쯤은 팬 서비스의 일환으로 여장을 했으며, BTOB는 올해 설 특집 예능 프로그램 SBS [사장님이 보고 있다]에서 레드벨벳처럼 분장을 하고 ‘Dumb Dumb’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물론 남성이 여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그러나 보통 걸 그룹의 남장이나 보이 그룹 커버 댄스는 ‘카리스마’, ‘걸 크러쉬’ 등의 표현과 함께 진지한 퍼포먼스로 받아들여지는 한편, 보이 그룹의 여장이나 걸 그룹 커버 댄스는 체격이 큰 남성의 외양과 여성 의상 사이의 간극을 과장해서 보여주며 흔한 개그 코드로 이용된다. 그리고 이때, 대부분의 남성 아이돌들은 지나치게 하이톤의 목소리를 내거나 수줍은 몸짓을 하며 상황을 더욱 코믹하게 하려 한다. 사회적 편견 안에서 고정된 ‘여성성’을 정의하는 동시에, 성 정체성에 지정 성별 여성과 지정 성별 남성만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발상은 게으르고 편협하다. 보이 그룹의 여장은 왜 웃긴가, 정말로 웃어도 되는가.

성소수자가 아니라서 아니라고 한 게 왜 문제인가?
“성향은 존중하지만 전 아니에요.” 샤이니의 종현은 솔로 콘서트에서 한 남성팬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했고, 결국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뜻으로 ‘그쪽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지 게이, 동성애자 혹은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5~6년 전 성소수자들을 ‘그런 취미’라는 말로 표현하고 팬덤 내에서 널리 사용되게 만든 데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종현의 말대로 성적 지향은 취미가 아니라 정체성이며, 젠더권력관계에서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정상성’을 획득하고 있는 이성애자가 성소수자에 대해 언급하며 ‘나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발언은 단지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밝히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성소수자를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배우 맷 데이먼은 과거 “나는 내가 게이라는 그런 소문을 절대 부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단 그 질문에 내가 화가 났고, 내 게이 친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했다. 또한 방탄소년단의 뷔는 2015년 팬사인회에서 정국에게 애교를 부리는 지민을 향해 성소수자에 관련된 농담을 하며 맥락상 성소수자를 비정상으로 보는 듯한 농담을 던져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성소수자는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도,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아닌, 말 그대로 사회적으로 소수인 젠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여자들 이렇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2014년 방송된 SBS MTV [멋진남자 BTOB]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센스남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며 ‘남자가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의 행동 베스트 3’라는 토크 주제가 제시됐다. ‘화장실에 갈 때 여러 명이 함께 간다’는 내용이 나오자 BTOB 멤버들은 “이건 정말 이해가 안 간다”고 앞다투어 목소리를 높였으며, ‘쇼핑할 때 옷을 10벌 넘게 입어보고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가 등장하자 일훈은 “남자친구랑 있을 때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여성이 남성에게 사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화장실에 누군가와 같이 가서 화장을 하건 옷을 입어보고 사지 않건 실제로 누군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해도 개인의 자유지만, 여성은 유난히 이해할 수 없는 허영을 부리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존재로 비하된다. 이 과정에서 BTOB 멤버들은 화장실에 타인과 꼭 함께 간다는 서은광에게 “여성스럽다”는 말을 했고, 서은광은 “여성스럽지는 않다”고 화를 냈으며, 그 모습을 본 육성재는 다시 “소심한 것도 여성스럽다”고 마무리 지었다. ‘여성스럽다’는 표현이 얼마나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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