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아이돌 팬덤│① ‘꽃길만 걷자’는 무엇을 배제하는가

2016.12.13
12월 3일, 샤이니의 팬 L씨는 샤이니 멤버 종현의 솔로 콘서트를 관람한 뒤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종현이 한 남성 관객을 향해 던진 “존중은 하지만, 전 아니에요”라는 농담이 성소수자 혐오적이었다는 것과, 인도풍 분장을 한 종현이 코믹한 춤을 추는 모습이 담긴 VCR은 타 문화권을 희화화한 것처럼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인도 팬을 포함한 많은 팬이 후자에 대해 항의하는 글을 올렸고, 전자의 경우 비교적 초반에 문제를 제기한 L씨의 트윗이 널리 리트윗(공유)되면서 알려졌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알게 된 종현은 이날 밤 트위터에 특정 문화를 유희화 할 의도는 없었지만 후회하고 반성하며, 해당 장면은 삭제하고 다른 장면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성소수자에 대한 표현과 관련해서도 콘서트에서의 발언을 포함해 과거 자신의 무지함 때문에 실수가 있었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종현이 ‘실수를 바로잡고 더욱 신중하겠다’고 말한 뒤에도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다. 이 날 밤 트위터와 몇몇 온라인 팬 커뮤니티에서는 L씨에 대한 비난을 비롯해 그의 다른 SNS 계정 등 신상을 알 수 있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튿날에도 공연장을 찾은 L씨는 자신을 알아본 두 명의 팬으로부터 “무슨 낯짝으로 여길 왔냐?” 등의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트위터에 썼다. 그러자 L씨에게 콘서트 티켓을 인증하는 등 피해 사실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팬들이 나타났다. L씨가 거절하자 ‘자리 찾기’, ‘막콘 티켓 인증’ 계정이 만들어졌다. 팬들이 자신의 티켓을 사진 찍어 올리며 ‘내 좌석 근처에서는 L씨가 주장하는 그런 일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함으로써 구역을 소거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티켓만이 아니라 CCTV 영상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등장했고, 세월호 참사 문제에 비유한 극단적 조롱 등 L씨를 향한 사이버불링(온라인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은 점점 집요해졌다. “인증 없이 후기를 남긴 것이 샤이니 월드(샤이니의 공식 팬클럽 명이자 샤이니 팬덤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대한 폭력”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독립된 자아를 지닌 팬‘들’의 집합인 팬덤이 하나로 통합된 ‘월드’를 지향한다. 그것이 팬덤 주류의 정서를 형성하고, 이를 거스르는 목소리를 억누른다. 이는 비단 샤이니 팬덤만의 문제가 아니라 2016년 아이돌, 특히 보이 그룹 팬덤 전반의 현주소다. 많은 팬덤이 SNS상에서 ‘부정적인 내용은 서치 방지(아이돌이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걸리지 않도록 이름을 틀리게 표기하기)’, ‘아이돌에게 직접 멘션을 보내 비판적인 피드백 하지 않기’ 등 암묵적인 룰을 정해놓고,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한다. 앨범 등 콘텐츠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밝히는 것도, 스트리밍 인증을 하지 않거나 두 팀 이상의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드러내는 것도 불특정다수로부터 빈축을 살 수 있는 행동이다. 반면 지난해 옹달샘 사태를 시작으로 대중문화 영역에서의 여성혐오 비판을 비롯해 인종이나 성소수자 이슈 등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구는 점점 섬세해져 왔다. 그리고 팬덤 일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도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지난 1년여의 흐름은 이러한 기존의 룰과 끊임없이 충돌해왔다. 지난 5월, 트위터의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은 랩몬스터가 2015년 발표한 믹스테잎 수록곡의 가사와 2013년 슈가의 폭력적인 농담이 담긴 트윗 등을 비판하며 피드백을 요구했다.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팬덤 내에서는 ‘공론화’를 주도한 소수의 팬에 대한 격한 반발이 일었다.

L씨의 사례는 이런 팬덤의 폐쇄적인 룰이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사회적 이슈와 부딪혔을 때 벌어진 극단적인 사건이다. 종현이 그러했듯, 아이돌의 잘못은 당사자와 소속사가 인지하고 반성할 경우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것을 인지하도록 만든 이에게는 팬 인증, 자필 사과문, 주변인들을 포함한 사상검증에까지 이르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지난 11월 방탄소년단의 뷔가 사인회에서 여성 팬의 긴 머리카락을 쥐고 흔드는 영상으로 비판받자, 이를 트위터에 퍼왔던 다른 아이돌의 팬이 맹렬한 비난을 받은 끝에 “제가 속한 팬덤과 관련이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팬덤 싸움을 일으킬 수 있는 경솔한 발언과 글을 올렸다”며 장문의 사과문을 올린 것과 같은 전개는 드물지 않다. L씨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론화한 뒤 만들어진 ‘#팬덤내_사이버불링_아웃’ 해시태그는 이러한 아이돌 팬덤 전반의 폐단을 알리고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담고 있지만, L씨를 공격하는 측에서는 L씨의 피해 사실과 무관한 과거 트윗이나 L씨를 지지하는 유저 일부의 발언을 수집해 이들을 샤이니에 대한 ‘성범죄자’로 지목하는 해시태그로 대응함으로써 논점을 흐렸다. 그러나 팬픽이나 ‘빙의글’을 포함해 실제 인물에게 성적인 망상을 투영하는 RPS(Real person slash)는 팬덤의 오랜, 그리고 주된 문화 중 하나다. 아이돌에 대한 성적 대상화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사이버불링 문제와는 별도 팬덤 전반에서 이루어져야 할 만큼 방대한 주제인 것이다.

이처럼 팬덤 안의 문제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고, 팬들은 종종 정치적 쟁점을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내 아이돌’이 비판받을 때는 문제를 제기한 이들을 적대시하지만, 자신이 싫어하는 아이돌이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면 비판에 적극 동참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음악평론가 이민희가 [팬덤이거나 빠순이거나]에서 “팬덤은 나의 가수를 사랑하는 한편 남들의 가수를 미워해 본 경험이 있기에 정치를 안다. 여론을 혹은 세상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어떻게 배척해야 하는지를 안다. 분란을 예측하고 만드는 방법을 안다. 그래서 ‘팬질은 곧 정치질’이라는 평판도 따른다”고 분석한 것처럼, 팬덤은 내 아이돌에 대한 ‘인성 영업’과, 내 아이돌의 라이벌이 ‘여혐가수’임을 널리 퍼뜨리는 행위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돌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악의를 띤 ‘정치질’로 오도당하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는 논란이 될 만한 일이 아님에도 특정 팬덤을 견제하는 데 악용하기도 한다. 각자의 목적들이 팬덤 간의 알력과 엉키면서, 팬덤 내에서는 젠더, 인종,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정당한 목소리조차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마저 만들어진다.

1세대 아이돌의 등장 이후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아이돌 팬덤 문화는 연령 구성비, 소비 행태, 활동 방식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변화를 겪었으나 그 중심 정서에는 언제나 아이돌에 대한 헌신적 지지와 무조건에 가까운 애정이 있었다. 아이돌과 그 팬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지금보다 훨씬 부정적이었던 시기의 팬덤은 외부의 비난이나 조롱으로부터 아이돌을 분리해 보호하기를 택했고, ‘까도 내가 깐다’로 요약되는 이 태도를 통해 자신들도 덜 상처받을 수 있는 방식을 체화했다. 지난 7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가 딸 강지원과 함께 발표한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에서 소통 공동체이자 연대체로서의 팬덤에 주목하며 이 책이 “적극적인 ‘빠순이 옹호론’”이라고 한 것은 이런 팬덤의 역사로부터 성립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1년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팬덤, 특히 ‘코어팬’으로 불리는 열성적인 층은 취향의 느슨한 연대가 아니라 공동의 목적을 위해 돌진하는 결사체에 가까워졌다. 최근 몇 년 사이 흔히 볼 수 있게 된 ‘우리 OOO, 꽃길만 걷자’는 캐치프레이즈는 이러한 아이돌 팬덤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내 아이돌에게는 좋은 것만 보고 듣게 해 주겠다’, 즉 아이돌의 활동에 있어 ‘나쁜’ 외부 요인을 모두 제거하겠다는 팬덤의 의지는 아이돌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강화된다. 팬덤이 차트 순위와 앨범 판매량, 수상 실적 등에 신경을 곤두세울수록 ‘내 아이돌’의 흠결을 언급함으로써 꽃길을 가로막는 이는 적으로 간주된다. 아이돌 팬들이 자신들을 자조적으로 칭하는 말인 ‘새우젓’ 정서는, 이때 ‘아이돌 앞에선 다 같은 새우젓일 뿐인데 왜 너만 잘난 척하냐’는 공기를 형성하며 소수의 목소리를 누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아이돌 팬덤이 그동안 겪어온 미디어에 의한 왜곡, 인권 침해, 노동력 착취는 분명 현존하며 개선해 나가야 할 지점이지만,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은 팬덤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폭력의 양상이다. 사안의 개선보다 조용한 무마를 원하는, 혹은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팬덤 내의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점점 더 많은 팬은 아이돌에 대한 애정과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것이 공존하기 힘들다는 딜레마에 부딪힌다. 팬덤의 일원으로 아이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룰을 벗어난 이들에 대한 사이버불링을 겪거나 지켜보며 위축되고 대부분 점차 순응하게 된다. L씨는 “원래 사용하던 계정으로는 말을 걸지 못하는 대신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해시태그 선언에 동참하거나 ‘지금 속한 팬덤 분위기상 연대하지 못하지만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준 사람들도 많았다. ‘폭력에 반대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의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계정으로 솔직하게 의견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팬덤 내 룰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내부의 규율이 도덕적 규범의 상위에 놓이고, 구성원은 민주사회의 자율적인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진정한 팬’에게 강요되는 역할 사이에서 극심한 모순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로 ‘탈덕’, 즉 팬 활동을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내부의 결속력이 높아질수록 개인의 생각을 드러내기 어려워지는 집단의 폐쇄성은 심각해지고 확장성은 떨어진다. 최소한 누군가를 좋아하기 위해 개별 사안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지우고 싶지 않다면, 2016년 팬덤의 현재가 부딪힌 문제는 이제 그 구성원들 각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지난 1년여 동안, 아이돌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점점 더 거센 반동에 부딪혔고, 팬덤 내 자정의 노력 또한 거의 좌절되었다. 그러나 아이돌 팀별로, 혹은 여성혐오나 인종비하 등 특정 주제에 대한 ‘공론화’를 위한 SNS 계정은 지금도 늘어나는 중이고, 최근에는 ‘팬덤 내 사이버불링 피해자 연대’ 또한 생겨났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특정 팬덤에서만 발생하는 악습이 아니고, ‘특정한 무리’와 ‘올바른 팬’ 간의 싸움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여성혐오에 대한 것일 수도, 또 어떤 경우에는 인종비하의 문제일 수도,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팬이나 안티가 아닌 이들도 자유롭게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사회 보편의 주제다. 그럼에도 이 모든 목소리를 지우고 완벽히 한마음 한뜻으로 아이돌에게 ‘꽃길’만 걷게 하고 싶다면, 그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만약 가능하다 해도, 그 좁고 폐쇄적이고 끊임없이 서로를 통제하는 세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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