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라디오스타]의 삿대질

2016.12.14
지난 7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이하 [라디오스타])에서 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아이돌에게 KBS [뮤직뱅크]를 함께했던 박보검과의 교제설을 물으면 “아니다”밖에 할 말은 없고, 딱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없다면 지어내기도 어렵다. [라디오스타] 같은 토크쇼는 방영 전 출연자와 사전 인터뷰를 한다. 소재는 충분히 협의할 수도 있고, 개인기를 준비시킬 수도 있다. 정 안 되면 출연분을 최대한 편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라디오스타]의 선택은 김구라가 아이린에게 “개인기 없어요?”, “이런 데 나오면 내가 한마디라도 더 해야겠다 이런 생각 안 해봤어요?”라며 윽박지르고, 아이린의 방송태도를 놀리는 MC들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방송 후 아이린에게는 ‘방송태도 논란’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 후폭풍을 생각 못 한 거예요.” 김대희는 몇 년 전 [라디오스타]에서 홍인규가 자신에 대해 했던 말로 이미지가 나빠졌다. 그의 기사에는 아직도 당시 일에 대한 악플이 달리곤 한다. 그는 몇 년 만인 지난 10월 5일 [라디오스타]에서야 해명의 기회를 얻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라디오스타]에서 했던 특정 연예인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들은 그렇게 ‘후폭풍’을 불러왔다. 배우 류승룡은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다른 배우가 했던 발언으로 뜬 뒤 변했다는 수군거림을 들었다. 그룹 카라의 강지영이 애교를 요구하는 MC들의 멘트에 눈물을 흘린 것이 그대로 방송돼 논란이 된 것은 아직도 회자된다. 하지만 얼마 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이국주는 함께 출연한 박재범의 레이블 AOMG 소속 뮤지션 로꼬가 자신에게 잘못한 일을 말했다. 그 뒤에는 어떤 보충 설명도 없었고, 박재범은 방송 중 자신이 출연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당황했다. [라디오스타]는 거론되는 모든 연예인들을 씹고 뜯는다. ‘후폭풍’에 대한 배려나 고민은 없다.

[라디오스타]는 아이린이 출연한 날도 최근 심야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나쁘지 않은 8.1%(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문제도 많지만 박나래와 차오루처럼 [라디오스타]를 통해 인기가 급상승하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당연히 폐지될 가능성은 없다. 빅뱅 같은 그룹도 컴백 토크쇼로 [라디오스타]를 선택할 만큼 [라디오스타]에 출연할 스타들도 많다. 출연하지 않는 연예인도 출연자의 입을 통해 소재로 올려 에피소드를 털면 그만이다. 그 점에서 [라디오스타]가 아이린을 대한 태도는 그들의 의도와 별개로 ‘갑’이 누구인지 보여준다. 출연한 연예인이 논란에 시달려도, 프로그램의 인기에는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화제성이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니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을 그리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연예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라디오스타]에 최대한 협조하는 것뿐이다.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가 끝난 뒤 단 5분간만 방송하던 때도 있던 토크쇼가, 500회를 지나는 사이 하나의 권력이 됐다.

이날 아이린과 함께 출연한 서유리는 토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많은 방송 분량을 확보했다. 제작진이든 시청자든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눈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서유리의 노력과 별개로, 이날 그가 많은 분량을 차지한 것은 제작진이 게스트에 대한 준비를 그다지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날 방송에서 제작진은 그룹 H.O.T. 멤버였던 토니안과 문희준에게 H.O.T. 시절 일화와 재결합 등에 대한 질문 외에는 출연자들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인터넷에 도는 출연자들의 이른바 ‘흑역사’ 사진을 계속 꺼내고, 출연자들에게 돌아가며 개인기를 요구했다. 출연자들의 민망한 사진이 자꾸 나오는 만큼 출연자들의 리액션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고, 개인기 역시 출연자들이 어떻게든 나가서 웃겨야 하는 것이다. 서지혜처럼 이렇다 할 개인기가 없는 게스트도 다른 출연자들 앞에서 어색한 춤을 춰야 했다. 아이린이 소극적이었다면, [라디오스타]는 나태했다.

과거처럼 출연자에 대한 꼼꼼한 조사는 없다. 하지만 시청률은 그럭저럭 나오고, 그사이 많은 토크쇼가 사라졌다. 그 결과 나태한 권력은 거리낌 없이 누구든 물어뜯을 수 있다. 성실하고 짜임새 있는 토크보다 연예인을 비난할 거리를 주는 것이 관심을 모으기에는 더 쉬울 수도 있다. 시청자는 연예인의 사생활과 실제 인성에 관심을 갖고, 종종 터지는 논란들은 오히려 프로그램의 존재감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 새롭게 주목받는 예능 프로그램은 좀처럼 없고, 오히려 뉴스가 가장 재미있는 시절에 살아남은 토크쇼는 그렇게 연예인들을 연료 삼아 꾸역꾸역 살아간다. 500회를 넘긴 이 토크쇼가 살아남은 것이 반드시 미덕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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