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거룩한 밤, 케이크에 묻힌 밤

2016.12.16
일 년 중 제과점이 제일 붐비는 날이 다가온다. 케이크를 안 먹던 사람도 먹고, 케이크를 자주 먹던 사람은 또 먹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는 가난한 사람들까지 설탕을 먹을 흔치 않은 기회였고, 나라마다 특별한 케이크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영국의 플럼 푸딩,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던디, 오스트리아의 레프쿠헨, 리투아니아의 쿠추카이, 루마니아의 코조나크, 스페인의 투론…. 이름만으로도 현기증 나는 마법 같은 디저트들 중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한다.

파네토네(Panettone, 이탈리아)
‘커다란 빵’이라는 이름 그대로 달걀, 버터, 말린 과일을 듬뿍 넣고 부풀린 보드랍고 달콤한 빵. 원조는 밀라노인데, 아직도 연말이 다가오면 밀라노 시민들은 어느 제과점이 최고인지를 두고 마치 AC밀란과 인터밀란의 팬들처럼 신경전을 벌인다고 한다. 실온에서도 오래 보존되는 덕에 이탈리아에는 크리스마스의 파네토네를 잘 두었다가 성 블라시우스 축일(2월 3일)에 목감기를 피하기 위한 기원의 표시로 한 조각 잘라먹는 관습도 있다. 버터 향이 풍부하고 비교적 가벼운 느낌이라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무난히 즐길 수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밀라노의 제과점들은 수많은 파네토네를 이탈리아는 물론 세계 곳곳으로 발송한다. 한국에서도 코스트코와 온라인에서 이탈리아 업체 키오스트로의 파네토네를 구입할 수 있고, 우드 앤 브릭, 리치몬드 과자점 등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곳들도 있다. (사진 속의 파네토네는 우드 앤 브릭 제품.)

슈톨렌(Stollen, 독일)
견과류, 말린 과일, 향신료를 듬뿍 넣고 구운 빵에 녹인 버터를 골고루 바르고 슈거파우더를 넉넉히 뿌린다. 한가운데에 아몬드 페이스트인 마르지판을 박아 넣어서 달콤함과 고소함을 더 하기도 한다. 설탕을 뿌렸다기보다는 들이부은 외양에 겁먹을 수 있지만 커피나 차를 곁들이면 묵직한 맛이 일품이다. 실온에서 2주 이상 보관 가능한데 숙성시키면 더 맛있어진다. 앉은 자리에서 몽땅 해치우기보다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한두 조각씩 야금야금 먹기 좋아서 1인 가구라도 문제없다. 다만 끄트머리부터 자르면 영원히 말라빠진 단면을 먹어야 하니, 가운데에서 잘라내고 남은 토막끼리 맞붙여서 꽁꽁 싸두면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오월의 종, 르빵 등 여러 빵집에서 팔고 있으며 프릳츠 커피 컴퍼니 등에서 택배로 받는 것도 가능하다. (사진 속의 슈톨렌은 오월의 종 제품.)

부쉬 드 노엘(Buche de Noel, 프랑스)
유럽에서는 예부터 크리스마스에 벽난로에서 커다란 나무둥치를 태우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을 크리스마스 통나무, 즉 부쉬 드 노엘(혹은 율 로그)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중앙난방의 시대를 맞아 벽난로가 사라졌고, 진짜 통나무 대신 통나무 모양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부쉬 드 노엘은 기본적으로 롤케이크다. 여기에 초콜릿 버터크림을 입히고 포크로 긁어 나무껍질 모양을 내는가 하면, 슈거파우더를 눈처럼 뿌리고 머랭으로 만든 버섯을 곁들이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데에는 부쉬 드 노엘만 한 케이크가 없다. 요즘은 고전적인 형태보다는 콘셉트만 유지하며 새롭게 해석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호텔 베이커리부터 뚜레쥬르까지 여러 곳에서 다양한 가격대로 선보이고 있다. (사진 속의 부쉬 드 노엘은 서호파이 제품.)

딸기 쇼트케이크(Strawberry Shortcake, 일본)
딸기 쇼트케이크는 16세기부터 기록에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디저트다. 스콘처럼 부슬부슬한 식감의 케이크를 반으로 갈라 딸기와 거품 낸 크림을 끼우고 윗면에도 크림과 딸기를 올린 것으로, 전통적으로 여름의 도래를 축하하며 6월 초에 먹었다. 가볍고 폭신한 일본식 딸기 쇼트케이크를 처음 선보인 것은 페코짱으로 유명한 일본 제과 업체 후지야의 창립자 후지이 린에몬이다. 1922년 미국에서 제과 수업을 마치고 귀국한 후지이가 스펀지 케이크를 응용해서 만든 부드러운 케이크는 서구에 대한 동경 속에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즈음 서구에서 들여온 명절인 크리스마스에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는 관습이 정착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로 꼽힌다. 사르르 녹는 딸기 쇼트케이크는 한국인의 입에도 잘 맞는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라는 이름으로 피오니, Yam2 등 여러 제과점에서 크리스마스뿐 아니라 딸기 철 내내 판매한다. (사진 속의 딸기 쇼트케이크는 피오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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