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라라랜드]의 장면들은 어떻게 탄생했나

2016.12.19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라라랜드]는 보는 즐거움을 한껏 안겨준다. 시작부터 화려한 뮤지컬이 펼쳐지고,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보여주는 다양한 촬영 테크닉은 관객을 사로잡는다. [라라랜드]의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장면들이 완성되기까지, 더 믿기 힘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해봤다.


* [라라랜드]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PRESENTED IN CINEMASCOPE
[라라랜드]는 1.33:1이었던 화면이 갑자기 좌우로 확장된 후 2.55:1, 즉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상영되는 것을 알리는 ‘PRESENTED IN CINEMASCOPE’와 함께 시작된다. 현대 영화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비율은 1.85:1, 2.35:1이며 2.55:1은 과거 할리우드에서 잠시 유행했었다. 이 비율은 1953년 영화 [성의]에서 처음 등장해 [회전목마], [왕과 나] 같은 뮤지컬 영화, [벤허]처럼 볼거리가 중요한 작품에서 활용되며 각광받았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한 55mm 필름이 비싸고 여러 기술상의 문제가 겹치면서 점차 사라졌다. [라라랜드]는 이러한 시네마스코프를 다시 도입, 오프닝의 군무나 파티 장면에서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보여주거나 미아(엠마 스톤)가 LA의 텅 빈 길거리를 걸을 때 인물은 최대한 작게, 배경은 양옆으로 길게 잡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미아가 ‘Audition’을 부를 때는 그를 제외한 부분을 모두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화면을 흡사 1.33:1의 가장 고전적인 비율로 보여주고 있다. 라이너스 산드그렌 촬영 감독은 [무비메이커] 인터뷰에서 “[라라랜드]는 실제를 그대로 담기보다는 종종 마법처럼 보여야 하는 영화였다. 시네마스코프로 찍는 게 자연스런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오프닝의 롱테이크 군무는 세 개의 쇼트로 나뉘어 있다
LA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오프닝의 군무는 실제 고속도로를 막고 촬영됐다. 댄서들이 없는 다른 차선에 자동차가 빼곡하게 늘어선 모습 역시 진짜 상황이다. [라라랜드]는 CG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세트장이나 실재 장소에서 모든 촬영을 진행했던 옛 할리우드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고, 오프닝은 “꽉 막힌 도로만큼 LA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광경이 뭐가 있겠느냐”는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생각에서 탄생했다. LA 시 당국의 촬영 허가를 받는 것이 만만치 않았지만, 고속도로 한복판이 아닌 진입로에서, 주말 이틀 중 해가 떠 있는 시간에만 촬영을 하기로 협의했다. 아무리 많은 리허설을 거쳤어도 한정된 시간 안에 촬영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각종 돌발 상황도 많았다. “노래 제목이 ‘Another Day of Sun’인데 촬영 둘째 날 정오까지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다”거나, “멋지게 트럭 문을 열어야 하는데 촬영 당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도르래 장치를 수동으로 움직였다”([팝매터스])는 사연도 있었다. 결국 하나의 쇼트로 보이는 이 장면은 세 개의 쇼트로 나누어 완성됐다. 카메라를 빠르게 움직이며 화면을 전환하는 타이밍을 찾아보면 어떻게 이런 눈속임이 가능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LA에서 가장 유명한 할리우드 사인은 일부러 등장시키지 않았다
LA의 할리우드에서 세트를 짓고 촬영된 영화는 수없이 많지만, 정작 이 도시는 파리의 에펠탑처럼 아주 특별하게 회자되는 명소는 없는 편이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젊은 예술가들이 가득한 LA에는 로맨티시즘이 있다”([엔터테인먼트 위클리])며, 너무 알려지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몰랐던 도시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를 찾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펄프 픽션], [재키 브라운], [콜래트럴]에서 LA의 풍경을 담은 경험이 있는 데이빗 와스코가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았고, [로스앤젤레스 자화상] 같은 다큐멘터리도 레퍼런스 중 하나였다. 그 결과 [라라랜드]에는 LA에서 가장 유명한 할리우드 사인 대신 그리피스 천문대나 라이트 하우스 카페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엠마 스톤의 의상 중에는 H&M에서 파는 5달러짜리 옷도 있다
[악대차], [사랑은 비를 타고], [댄싱 히어로], [로미오와 줄리엣], [부기 나이트], [캐치 미 이프 유 캔]. [라라랜드]의 의상 디자이너 메리 조프레스가 [라라랜드]에 합류한 후 감독이 보여준 영화 속 의상들이었다. 단지 고전 뮤지컬 영화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서 참고할 부분들을 찾으며 완성한 [라라랜드]의 옷은 고전적이면서 현대에도 입을 법하다. 또한 메리 조프레스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래 친구들과 동거를 하는 미아가 “너무 고급스러운 옷만 입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할리우드 리포터])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이템도 다수 등장한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데이트할 때 입은 분홍 드레스와 함께 걸친 Kyle Chan Design의 목걸이는 55달러고, A-라인 핑크 스커트는 버뱅크의 빈티지 샵 Playclothes에서, 함께 입은 민소매 셔츠는 H&M에서 디자이너가 5달러에 구입한 것이다.
 

그리피스 공원의 댄스 장면은 ‘매직 아워’에 맞춰 단 다섯 테이크만에 촬영됐다
해 질 녘 그리피스 공원에서 6분여간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미아와 세바스찬의 댄스 장면에는 어떤 CG도 없다. 그들의 뒤로 펼쳐지는 푸르스름하고 신비로운 하늘색은 철저한 계산을 거쳐 얻어낸 결과물이다. 이런 풍경은 작년 9월 LA의 어느 특정 날짜, 특정 시간대에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단 다섯 테이크 만에 촬영을 마쳐야”([뉴욕 타임즈]) 했고, 이 장면을 위해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은 3개월 동안 리허설을 했다.

[쉘부르의 우산], [탑 햇]과 같은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원래 뮤지컬 영화를 싫어했다.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흐름을 깨고 노래를 부르는 게 너무 이상했다.”([보그]) 다미엔 차젤레 감독이 처음부터 뮤지컬 영화에 매료됐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30·40년대 고전을 접하다 만난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커플의 뮤지컬 영화, 60년대 프랑스의 자크 드미 감독 작품들은 그의 장르에 대한 편견을 바꿔놓았다. 그들의 영화를 볼 때는 갑자기 대화 중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피스 공원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이 춤을 추는 장면은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탑 햇] 등의 작품에서 보여준 커플 댄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로에게 마음의 벽이 남아 있거나 오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춤을 추다가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의 감정선은 [라라랜드]의 안무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쉘부르의 우산]은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대학 시절 논문 주제이자 그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영화라고. [쉘부르의 우산] 특유의 쨍하고 화려한 색감은 [라라랜드]의 파티 장면을 비롯해 작품 곳곳에 구현돼 있지만, 결국 연인의 헤어짐으로 끝맺는 특유의 우울한 정서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W]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진 켈리의 [사랑은 비를 타고]는 그의 최고작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언제나 맑음]이다. 그 영화의 우울함이 좋다,”

재즈는 감독 개인의 오랜 취향이기도 하다
[라라랜드]뿐만 아니라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데뷔작 [공원벤치의 가이와 매들라인]과 [위플래쉬]의 주인공 역시 재즈를 한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재즈 음악을 접했고, 재즈 드럼에 푹 빠진 10대 시절을 보냈다. [위플래쉬]의 플렛처(J.K 시몬스)는 고등학교 시절 그를 못살게 굴었던 지휘자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또한 하버드 대학교 재학 시절 만나 함께 밴드 활동을 한 저스틴 허위츠는 이후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하게 될 친구가 됐다. 극 중 세바스찬이 재즈의 쇠락을 안타까워하고, 대중성이 떨어지는 음악으로 어떻게 먹고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모습은 “너무 사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영화제에서 공개하기 전에 긴장도 했다”([버지])고 말한 감독의 고백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


엠마 스톤의 ‘Audition’은 실제 라이브였다
[라라랜드]의 OST를 만든 저스틴 허위츠는 많은 곡을 참고했다고 말한다. 오프닝의 ‘Another Day of Sun’은 자크 드미 감독의 [로슈포르의 연인들]에서, 그리피스 공원의 롱테이크 댄스 장면의 ‘A Lovely Night’은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함께한 작품들에게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후반부 미아가 부르는 ‘Audition’은 일부러 그 어떤 곡도 들어보지 않고 피아노만 이용해 작곡했다. 여배우의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캐릭터를 만드는 진행형 프로젝트의 오디션을 권유받는 미아는 배우가 되길 원했던 이모의 이야기를 노래로 풀었고, 이것은 곧 배우로 성공하고자 하는 미아의 욕망과 예술이 일치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미리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던 다른 곡들과 달리, 엠마 스톤은 ‘Audition’만큼은 모두 현장에서 라이브로 불러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이건 독백이다. 립싱크를 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반드시 라이브여야만 했다.”([데드라인])

예술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고전 뮤지컬 영화여야만 했다
[라라랜드]는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 시절의 방식으로 제작됐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는 젊은 예술가들의 꿈과 현실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엔터테인먼트 위클리])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많은 고전 뮤지컬 속 주인공들은 배우, 댄서, 혹은 화가였고, 스튜디오 영화의 발전은 그들의 꿈을 스크린에 더욱 근사하게 담아내는 법을 완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라라랜드]에서 배우지망생과 재즈 피아니스트가 분투하는 모습은 예전 그 방식으로 스크린에 담겼고,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만 달라진 것은 해피엔딩의 의미다. 진 켈리의 [파리의 미국인]은 화가로도 성공하고 친구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사랑하는 연인도 얻는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주인공들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에 살아남는 배우가 되고 연인도 얻는다. 그러나 [라라랜드]의 주인공들은 사랑을 이루는 모습이 아니라 상대를 만나 어떻게 예술가이자 한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 점에서 [라라랜드]는 고전 뮤지컬의 영향 안에서 그 작품들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면서, 고전 뮤지컬 영화들이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고전이 필요한 이유이자 고전을 흡수하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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