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여배우’│② ‘여배우’를 둘러싼 말들

2016.12.20
꽃이거나 여신이거나 해피 바이러스거나, 그러나 때로는 ‘배우’도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지난 1년여 동안 여성 배우를 향했던 누군가의 발언, 혹은 한국 사회의 시선들.

여배우의 덕목은 애교인가 
지난해 11월 영화 [도리화가] 쇼케이스에서 류승룡은 함께 출연한 수지에 대해 “수지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현장에서 여배우가 가져야 할 덕목, 기다림, 애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감을 주는 수지의 존재감, 꼼꼼함, 이런 것들이 우리 영화 끝날 때까지 많은 해피 바이러스를 줬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고경표는 자신의 SNS에 류승룡을 비난하는 게시물에 대해 언급하며 “여자는 이해 가는 거야? 저 반응이? 진짜 수지가 기쁨조라고 느껴져? 승룡 선배님이 변태처럼 보이는 발언이었어?”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 배우가 ‘촬영장의 꽃’을 비롯해 현장의 분위기를 띄우는 존재처럼 여겨지는 것은 결코 훈훈하게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배우의 일은 현장에서 자신의 연기를 하는 것이지, 다른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거나 기분 좋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많은 여성 배우, 특히 신인들은 ‘예쁘고 상냥한 여배우’로서의 감정노동을 암묵적으로 요구받는다. 이를 기꺼이 수행하면 칭찬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 ‘까칠하고 거만한 여배우’라는 또 다른 스테레오타입에 갇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배우’를 그냥 배우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동료들은 ‘여배우’를 자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가. 

여배우는 예쁘게 말해야 하는가
지난 7월, 하연수는 인스타그램에 좋아하는 사진작가의 작품을 올리며 그의 계정을 태그했고, 작품이 뭔지 알고 싶은데 방법이 없냐는 댓글에 “제가 태그를 해놓았는데 방법은 당연히 도록을 구매하시거나 구글링인데. 구글링 하실 용의가 없어 보여서 답변드린다”며 작품명을 적었다. 앞서 6월에는 공연에 다녀온 하연수가 ‘하프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자 “대중화를 하기에는 가격의 압박이 너무…”라는 댓글이 달렸고, 하연수는 ‘하프의 가격대 폭은 매우 넓으며 잘 모르시면 센스 있게 검색을 해보신 후 덧글을 써달라’고 답변했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알 수 있는 정보에 대해 묻거나, 진지하게 한 이야기에 대해 뜬금없이 어깃장을 놓는 듯한 반응을 보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명인들은 불특정다수의 대중에게 늘 친절할 것을 기대받고, 젊은 여성 연예인들은 가장 다각도에서 엄격하게 ‘인성’을 평가받으며, 비난이 커지자 결국 하연수는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같은 내용이라도 이모티콘 섞인 애교 있는 말투로 ‘둥글게’ 썼다면 좋았을 거라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과거에도 하연수는 결혼해달라는 댓글을 반복적으로 다는 남성에게 “불쾌하다. 이런 농담을 정말 싫어한다. 말을 뱉기 전에 상대방 기분도 생각해달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 뉴스 댓글란부터 SNS까지, 여성 배우들에게는 상시적으로 무례한 말들과 루머와 인신공격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예쁘게’ 말할 것을 요구받는다. 극한 직업이다. 

여배우는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가
지난 11월, 청룡영화상 사회자 김혜수는 턱시도 차림으로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페미니즘이 사회 전반의 의제로 떠오르고, 극도로 남성 중심적인 환경에서도 몇몇 여성 영화인들이 의미 있는 결과물과 함께 살아남아온 한 해를 상징하는 듯한 패션이었다. 그러나 한 연예 매체는 그의 사진에 “김혜수, ‘모두를 실망시킨 노출 없는 패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1993년부터 영화제 진행을 맡아 후보작을 모두 챙겨 볼 만큼 프로페셔널하고, 참석자들을 품위 있게 예우하며, 순발력과 노련함을 두루 갖춘 사회자이자 톱스타인 김혜수조차 이처럼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여성 배우는 흔히 ‘눈요깃거리를 제공해야 마땅한 대상’으로 취급되곤 한다. 최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홍보를 위해 네이버 브이앱 생방송에 출연한 김윤석은 방송이 좋은 반응을 얻은 데 대한 공약으로 “(함께 출연한 여배우들의) 무릎 담요를 내리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이십 대 초반의 신인 배우들인 채서진과 박혜수를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이었지만, 정작 방송이 끝날 무렵 시청자들에게 사과한 것은 김윤석이 아닌 김상호였다. 비판이 일자 김윤석은 며칠 뒤 기자간담회에서 “깊이 반성하겠다. 죄송하다”며 고개 숙였다.

‘여배우’라는 말은 왜 여성혐오적인가 
지난 10월, 배우 이주영은 트위터에 “‘여배우’는 여성혐오적 단어가 맞습니다. 이 간단한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공부를 더 하세요”라고 썼다. 그러자 그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는 “여대도 여성혐오인가요”, “여우주연상도 여성혐오냐”를 비롯해 “너 메갈이냐”, “남자같이 생겨서 왜 남혐하냐” 등 수많은 조롱과 비난 댓글이 달렸고, 이주영은 잠시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기도 했다. 올해 박찬욱 감독이나 배우 이미연이 ‘여배우’라는 표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와 달리, 유독 신인 여성 배우를 겨냥한 사이버불링(온라인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이 일어났다는 것은 SNS에서 여성 유명인들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 인신공격과 함께, 같은 발언이어도 약자일수록 격렬한 공격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중앙일보]에서는 이주영의 발언에 대해 “모든 성차별이 여성혐오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지만, 앞서 이주영은 충분히 설명한 바 있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공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하는 것, 여성에 대한 부정과 폭력, 성적 대상화 모두가 여성혐오입니다. 그러므로 ‘여배우’는 여성혐오 단어가 맞습니다.” 여성혐오자들이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렇다.

여배우는 ‘진짜 배우’가 아닌가
‘여배우가 배우로 되는 순간’이라는 제목의 6월 30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여배우’가 여성혐오적 단어라는 이주영의 발언을 미리 증명한 것처럼 보인다. 과거 손예진의 필모그래피에 대해 “캐릭터에 몰입하기보단 예쁜 척하느라 바쁘다”, “절박한 베드신에서도 리얼하고 과감한 노출을 감행하는 일이 없었”다고 비판해왔다는 기자는 [비밀은 없다]에서 그의 연기에 대해 “내숭 떨지 않고 예쁜 척하지 않는 데다 울부짖으면서 얼굴이 못생겨지기까지 하는 그를 우리는 처음으로 선물받게 되었다. 오! 이것은 그녀의 배우 선언인 것이다”는 찬사를 보낸다. ‘여배우’는 ‘진정한’ 배우에 미처 이르지 못한 존재이며 벗어던져야 할 굴레라는 관점은, 같은 기사에서 김민희가 [화차] 출연을 계기로 “아마도 여배우가 아닌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많은 여배우가 몸 사리고 노출을 꺼리면서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를 찾고 이미지 관리하며 CF 따먹고 다닐 때” [아가씨]의 김민희는 “영화 속으로 자신을 냅다 던져”버림으로써 ‘배우’가 되었다는 주장은 김민희와 손예진, 그리고 모든 여성 배우에 대한 모독이다. 과거에도 배우였고 지금도 배우일 뿐인 이들을 ‘여배우’라는 단어에 가두어 폄하하고 한계 지어온 것은 정작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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