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헤이즈의 등장

2016.12.21
헤이즈는 딘과 함께한 ‘And July’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남자사람 친구’에게 미묘한 연애 감정을 느끼는 심리를 노래했다. 최근 여러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한 ‘저 별’에서는 엇나간 인연, 또는 어딘가에 있을 인연을 별에 비유했다. 소유와 정기고의 ‘썸’처럼 일상의 연애 심리를 묘사할 수도, 백아연의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처럼 연애에 상처받은 여자의 혼잣말도 가능하다. 헤이즈가 ‘And July’로 음원차트를 역주행하고, ‘저 별’로 음원차트 1위를 한 것은 지금 헤이즈의 위치를 보여준다. 그는 뮤직비디오에서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 남자와 권투를 하다, 몇 개월 후 큰 리본이 달린 원피스를 입고 처연한 표정을 짓는다.

헤이즈가 랩과 노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입체적인 캐릭터를 이해시키는 유용한 수단이다. 그는 랩을 할 때는 떠났다 돌아온 남자에게 “그동안 고생했다 이젠 누나 품에 안겨 쉬자”(‘품 스윗 품’)라며 쿨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노래할 때는 “혹시 저 별도 나를 보고 있을까 아니 날 보고 있지 않을까”(‘저 별’)라며 서정적인 감성을 전달한다. ‘저 별’은 도입부의 훅에서 다른 소리를 최대한 절제하며 헤이즈의 보컬을 부각시키고, 1절이 시작될 때 편곡의 구성을 바꾸며 다시 헤이즈의 목소리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그사이 헤이즈가 직접 쓴 가사가 곡의 감성을 납득시키고, 센 캐릭터로 여겨진 래퍼는 어느새 그리움을 차분하게 노래하는 보컬리스트로 변한다. 여성 듀오 다비치는 떠난 남자를 잊지 못하는 여자의 모습을 울 것 같은 감정으로 소화했다. 백아연은 그것을 나직한 독백으로 불렀다. 그리고 헤이즈는 랩과 보컬 사이를 오가며 여자 뮤지션이 “벗어나고 싶어 사랑 아님 이별 왜 모든 건 이분법인지”(‘Shut Up & Groove’)라고 노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헤이즈는 ‘Shut Up & Groove’에서 “밤 12시에 집을 가든 안 가든 떡볶이로 세 끼를 채우건 말건”이라며 남자에게 자신의 사생활에 신경 끄라면서도 다른 여자에게 “여기저기 다리 벌려 헤픈 넌”(‘Me, Myself & I’)이라며 사생활을 비난의 근거로 삼는다. ‘Me, Myself & I’가 Mnet [언프리티 랩스타 2]에서 발표됐다는 점은 더욱 모순적이다. 여성 래퍼들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정체성인 프로그램에서 여성 래퍼가 여성혐오적인 가사를 쓰고, 그것이 일부 여성들에게도 환호를 받는다. 그는 ‘내 남자친구가 고맙대’에서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를 공격하면서, 자신이 남자친구에게 더 잘해주는 여자라는 것을 어필한다. 헤이즈는 여성이 예쁜 외모와 자작곡을 쓸 수 있는 실력을, 욕설을 하는 래퍼와 처연한 R&B 보컬리스트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다른 여자와 구별한다. 그는 보통의 여자들은 헤프거나 약하거나 남자들에게 잘 못 하고, 자신만이 그렇지 않다고 외친다.


Mnet [쇼 미 더 머니]는 남성이 힙합을 통해 성공하는 서사를 보여줬다. 그들은 상대를 향해 디스를 퍼부으면서도 가족, 특히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 감정을 담아 감성적인 곡을 발표했다. 헤이즈는 이것이 여자 래퍼, 또는 여자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한 서사라는 것을 입증했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음악을 했고, 그럼에도 성공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싶어 했다. 힘든 감정을 욕설 섞인 랩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한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올라프를 보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랑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는 일하고 사랑하며 상처받거나 행복하기도 한 여자이자 가족을 부양하려는 딸이라는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것이 그가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모든 여자가 아닌 자신만의 특징으로 여긴다. 자신은 대부분의 여자와 다르고, 그래서 성공했다고 믿는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보다 현실에 가까운 여성의 모습들이 등장했지만, 그 주인공조차 그것을 특별한 일로 여긴다. 

당연하게도, 여자 역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헤이즈는 이것을 보여주면서 상업적으로 주목받았지만, 동시에 다른 여자는 자신 같지 않다는 모순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분명히 과거와 다른 여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중 누군가는 다른 여자에게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많은 가능성과 그만큼의 한계, 그리고 그 속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지기도 하는 현실. 이것이 지금 엔터테인먼트 속에서, 더 나아가 현실의 여성들이 지금 놓여 있는 좌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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