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만의 와일드월드

틸다 스윈튼과 마가렛 조의 논쟁

2016.12.26
할리우드에서 화이트 워싱의 역사는 유구하다. 백인이 아닌 캐릭터를 백인으로 바꾸는 것을 뜻하는 화이트 워싱은 다양성이 강조되는 최근에도 여전히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알로하]에선 1/4이 중국계, 1/4이 하와이 원주민 혼혈인 앨리슨 잉의 역할을 금발 벽안의 엠마 스톤이 맡았고, 2016년 마블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원작에서 티베트인이었던 에이션트 원을 백인인 틸다 스윈튼이 맡았다. 내년에 개봉하는 영화 [공각기동대]에서는 주인공인 쿠사나기 모토코의 역할을 역시나 백인인 스칼렛 요한슨이 맡았다. [공각기동대]의 경우엔 심지어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스칼렛 요한슨을 좀 더 아시아인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을 테스트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렇게 화이트 워싱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에이션트 원 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과 아시아계 마가렛 조 사이에 오고 간 메일이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마가렛 조는 인종과 젠더 문제를 비판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로 유명한 미국의 코미디언이다. 조는 팟캐스트 [타이거밸리]에서 호스트인 바비 리와 대담을 하며, 틸다 스윈튼과 [닥터 스트레인지]의 화이트 워싱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은 사실을 언급했다. “그녀는 왜 사람들이 [닥터 스트레인지]에 화가 났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얘길 해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왜 아시아계 사람들이 화가 났는지에 관해서 내 얘길 듣고 싶어 했죠.” 조는 스윈튼과의 대화가 마치 “왜 그 배역이 그녀에게 가선 안 됐는지에 대한 싸움 같았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마치 아시안 집안 사람처럼 느껴져서 이상했어요. 꼭 그녀의 하인인 것 같았죠”라고 했다.

[제제벨]은 마가렛 조의 이 발언을 기사화하며 틸다 스윈튼에게 코멘트를 요청했고, 스윈튼의 대변인은 둘 사이에 오고 간 이메일 전문을 [제제벨]에 전했다. 메일은 애초 마가렛 조가 “싸움” 같았다고 언급했던 것과는 달리 매우 정중한 어투였다. 예를 들어 스윈튼은 일전에 마가렛 조와의 친분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어떤 경우라도, 원한다면 꺼지라고(fuck off) 말해도 됩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어지는 메일에서 서로의 “커다란 팬”임을 고백한 둘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화이트 워싱에 대해 얘기했고, 틸다 스윈튼은 그럼에도 [닥터 스트레인지]가 에이션트 원의 성별을 바꾸고 “드래곤 레이디”의 스테레오타입을 피하기 위해 켈트 기원으로 설정을 바꿈으로써 다양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마가렛 조가 팟캐스트에서 암시했던 톤과 이메일의 톤이 사뭇 다르기 때문에, 이 이슈는 조의 톤과 스윈튼의 의도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NPR]은 이를 두고,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사와 구조적 논의가 우울하지만 친숙하고 훨씬 덜 중요한 얘기 때문에 휩쓸려 내려가 버렸다고 평했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에 대한 논의인데, 그 논의가 가려졌다는 것이다. 마가렛 조의 톤과 틸다 스윈튼의 의도는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에 대해 건설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스윈튼의 의도로 대화가 시작됐을 수는 있지만, 동시에 같은 내용도 받아들이는 소수자 입장에서는 무례하게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마가렛 조가 이 대화를 “싸움”이라고 표현한 건 실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대화는 소수자에게 좌절감을 안긴다. 조는 화이트 워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는데, 스윈튼은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개별 사례에 집중한다. 사회학자 트레시 맥밀란은 “백인 독자들은 사면을 원합니다. 그들은 소수인종들은 결코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인종 간 접촉에 따른 모든 위험을 관리하길 원하죠”라고 말했다. 틸다 스윈튼의 이메일은 비록 정중했을지는 몰라도,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 스윈튼은 자신이 봉준호 감독의 [옥자]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들어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으나, 그런 것이 [닥터 스트레인지]에서의 화이트 워싱에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었다. 이메일이 공개된 후, 마가렛 조가 공개한 성명은 이렇게 말한다. “아시아계 배우들이 아시아인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그렇게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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