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김은숙 드라마│① 김은숙이 다다른 판타지의 막다른 골목

2016.12.27
드라마에 대한 연말 통합 시상식이 있다면 올해의 대상은 단연 김은숙 작가일 것이다. 지난 2월부터 방영했던 KBS [태양의 후예]는 그의 역대 최고 히트작이라 할 수 있을 SBS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을 상회하는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현재 방영 중인 tvN [도깨비] 역시 시청률 12%(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고 그 이상의 화제를 모으며 최근 부침에 빠졌던 tvN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는 언제나 시청률을 보장하는 가장 대중적인 작가였지만, 한 해 동안 두 편의 드라마로 상반기와 하반기를 지배한 건 건 그의 이력 안에서도 드라마 시장 전체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2016년 현재, 김은숙이 제공하는 판타지는 여전히 힘이 세다.

[파리의 연인]으로 시작되어 [시크릿 가든]을 거쳐 SBS [상속자들]까지 이어진 신데렐라 판타지는 비슷한 트렌디 드라마의 범람 안에서도 언제나 김은숙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남자가 지닌 돈과 권력에 욕심이 없는 여자, 너 같은 여자는 처음이라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강하면서도 순정파인 남자. 하지만 올해 나온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는 여전히 여자를 지켜주는 강한 남자의 서사를 반복하되 이들 남주인공에게 세습된 부 대신 신성을 부여한다.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송중기)은 기존의 왕자님보다는 죽다가도 살아나는 불사의 히어로에 가까우며, [도깨비]의 김신(공유)은 이름처럼 일종의 신이다. 차가운 도시 남자지만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한 [파리의 연인]의 한기주(박신양),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과 달리 이들 새로운 남자주인공들은 자신의 연인을 지키되 또한 더 많은 것을 지켜낸다. 시진은 평화유지군 신분으로 타국 우르크의 사람들을 지진과 테러로부터 지켜내고, 신 역시 인간사에 웬만하면 끼어들지 않겠다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양아버지에게 가정 학대를 당하는 소년의 가출을 막고, 뺑소니를 당한 지연희(박희본)를 살려낸다. 그들은 부당함을 바로잡는 존재다. 이사장의 성적인 요구를 거부했다가 위험한 우르크로 파견 오게 된 강모연(송혜교),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이모에게 학대받으며 자란 십 대 지은탁(김고은)에게 이들 남주인공들이 도움을 주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닌 당위의 문제가 된다.

김은숙의 기존 여주인공들과 비교해 [태양의 후예]의 모연과 [도깨비]의 은탁이 훨씬 노골적으로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부분이다.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김정은) 등은 신분상승에 무관심한 태도를 통해 비로소 남자의 사랑과 도움을 받을 자격을 증명한다. 여성을 위한 판타지를 만든다면서 정작 여성의 욕망은 제거하는 역설. 하지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부당하다는 것이 증명된 상황에서, 모연과 은탁은 도움을 달라고 날 여기서 끌어올려달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남주인공에겐 여기에 응할 어느 정도의 의무가 존재한다. 올해 김은숙의 드라마들은 기술적인 의미에서 좀 더 교묘해졌다. 부당함을 호소하는 여자, 부당함을 바로잡을 의무가 있는 남자. 여자가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구원의 서사는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여자가 의존적이거나 속물인 게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여기서 김은숙의 판타지는 신분상승의 서사에서 구원의 서사로 뚜렷하게 전환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데렐라의 신분상승이라는 고전적 작법으로 여자의 구원을 모색하던 그가 새로운 판타지스타 남주인공을 도입해 구원의 테마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에 가깝다. 둘 사이에 공유되는 것이 있다면, 여주인공이 처한 현실은 혼자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이다. 이 힘겨운 현실이 여성의 것인지, 인간 보편의 것인지, 김은숙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당장 성적인 요구를 받았던 모연의 경우에도 젠더 간 권력 문제보단, 모연과 무능한 ‘금수저’ 김은지(박아인)와의 갈등이 더 부각된다. 그 스스로 젊은 시절 은탁처럼 끔찍한 가난을 경험하고 자수성가한 여성인 김은숙은 이 문제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개인의 ‘노오력’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의 장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장벽을 무너뜨리기보단 그 위에 올라서길 바란다. 저 위에서 손을 내밀어주는 존재가 필수적인 건 그래서다. 물론 과거의 재벌 2세 남주인공들도 그러했지만 그들도 최소한 남녀 간 계급 갈등이라는 벽 앞에 부딪히긴 했다. 남녀 간 힘의 차이를 설정하되 계급 갈등은 지운 최근의 드라마에선 그조차 없다. 김은숙은 여주인공의 주체성을 고난에 대한 저항의 태도가 아닌 위에서 내민 손을 붙잡을 자격의 유무로 그려낸다. [도깨비]에서 소년 시절 신에게 도움을 받은 뒤 변호사로 성장해 이웃을 돕다 죽은 이에게 신은 말한다. “나는 수천의 사람들에게 샌드위치를 건넸다. 허나 그대처럼 나아가는 이는 드물다.” 그리고 덧붙인다. “보통의 사람은 그 기적의 순간에 멈춰서서 한 번 더 도와달라고 하지. 기적을 맡겨놓은 것처럼.” 구원의 필요를 말하되 또한 구원의 자격을 묻는 이러한 이중성 앞에서 여주인공은 모연처럼 참된 의사로 거듭나거나 은탁처럼 아예 처음부터 하늘이 점지한 남자의 신부로 태어나야 한다. 여성이여, 당당하게 요구하라. 단 자격이 있는 사람만.

여성을 위한 판타지를 그리며 기술적으론 더 교묘해지던 김은숙의 세계가 [태양의 후예]라는 변곡점을 지나 [도깨비]에 이르러 결과적으로 남성을 위한 판타지로 소급하는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나에게 이런 여자 처음’인 건 재벌 2세에게나 흥미로울 이야기다. 과거의 남주인공들이 자신에게 무관심한 여성에게 호기심을 느껴 접근했다면, 이제 은탁은 처음부터 신의 재력을 보고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도깨비 신부의 자격으로 그의 집에 들어와선 당신이 원하는 모든 스타일을 다 해줄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은탁이 도움이 절실한 십 대이며 도깨비는 이를 도와줘야 한다는 당위성은 900살 도깨비와 십 대 소녀의 연애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기주와 주원이 형식적으로나마 여자의 꿈을 이뤄주는 존재라면 신은 남자들의 꿈을 대신 누리는 존재다. 영생과 부를 누리고 마세라티 자동차를 몰며 자신에게 들이대는 십 대와 죄책감 없이 연애하고 동거해도 되는 남자. 힘든 현실에 치이는 여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더 완벽한 구원자를 찾던 작가는 필연적으로 여자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남자에 도달하며 역설적으로 남자들의 판타지를 이뤄줬다.

적어도 [태양의 후예]까진 그냥 감수하고 보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던 김은숙의 판타지가 [도깨비]에 이르러선 인기만큼이나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여전히 김은숙의 판타지는 높은 시청률과 관심을 견인한다. 매혹적인 요소도 명백하다. 하지만 현실의 고단함을 묘사하되 그 구조적 부조리를 읽어내지 못하거나 외면할 때, 구원의 판타지는 그 부조리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공조한다. 이것은 나아가고 나아가다 그 한계를 뚜렷하게 만난 김은숙의 문제이자, 그를 통해 더 확실해진 한국 드라마 판타지의 막다른 골목처럼 보인다. 여기서 김은숙은, 한국 드라마는 우회하거나 극복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한 번의 성공에 취해 막다른 길에서 한 발 더 나아갈까.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중요한 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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