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 순수로 깨어난 영원불멸의 연인

2016.12.28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2016.12.9 ~ 2017.1.15│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작: 윌리엄 셰익스피어│연출·각색: 양정웅│배우: 박정민(로미오), 문근영(줄리엣), 서이숙·배해선(유모), 손병호(로렌스 신부), 양승리(티볼트), 김호영·이현균(머큐시오), 김찬호(패리스), 김성철(벤볼리오) 
줄거리: 베로나의 명문가인 몬테규와 캐플릿 가 사이에는 유서 깊은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미오는 친구들에게 이끌려, 가면으로 변장하고 캐플릿 가의 무도회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몬테규 가의 로미오와 캐플릿 가의 줄리엣은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날 밤 캐플릿 가의 정원으로 숨어 들어간 로미오는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그녀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결혼을 약속한다. 이튿날 두 사람은 로렌스 신부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다. 강렬하고 비극적인 운명 속에서 둘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 순수로 깨어난 영원불멸의 연인
원문은 펼쳐본 적 없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을 사랑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인 2016년의 마지막 달,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연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찾아왔다. 1597년 희곡으로 초판된 이래, 오페라, 발레, 뮤지컬, 영화 등 장르를 막론하고 무수한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어온 작품이다. 아마 인간이 상상 가능한 모든 형태로 한 번쯤은 재창작되었다고 봐도 좋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새롭게 만들기는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다. 

FOCUS: 정반대의 조화
무대는 시간적 배경이 21세기라 해도 좋을 만큼 미니멀하다. 딱 떨어지는 상자 형태에 네모반듯한 네온 조명을 두르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속삭이는 발코니마저 모던한 철제로 되어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하자 등장인물들은 중세시대풍 의상을 입고, 클래식한 선율 속에서 등장한다. 연회 장면 역시 과거에 실제 존재했을 법한 단순하고 고전적인 춤들이 반복된다. 이러한 ‘대비’는 양정웅 연출과 정승호 무대연출이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을 위해 고심한 키워드다. 그간 극 속에서 서양과 동양, 전통과 현대 등 전혀 다른 속성을 적극적으로 조합해왔던 양정웅 연출이기에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전통연희적인 요소로 풀어내어 2005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극찬받은 [한여름 밤의 꿈]이나 굿을 모티프로 가져왔던 [햄릿]과 달리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의 목표는 ‘원작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지만, 셰익스피어를 전통과 연결 지었던 재치만은 은근히 드러난다. 1막, 벤볼리오와 티볼트는 등장하자마자 관객의 흥을 돋우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관객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 상대의 이름을 묻기도 하며 본격적으로 비극이 깊어질 2막과 균형을 맞춘다. 원작의 서정성은 정승호 무대연출의 정교한 무대 메커니즘이 뒷받침한다. 공간을 간소화하는 대신, 무대 뒤의 문을 열고 닫는 것만으로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표현한다. 문이 열리면 분홍빛으로 점철되었던 무대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정에 따라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 되기도, 암울한 보랏빛으로 물들기도 한다.

LINES: 셰익스피어의 대사, 소네트
[로미오와 줄리엣]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벽은 긴 러닝타임이다. 방대한 원작의 가지를 쳐내고, 중심인물을 단 여덟 명으로 간추렸음에도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150분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시간과의 싸움에서 진득하게 버텨 승리한다면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심에 소네트로 쓰인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가능한 한 구현하려는 노력이 있다.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즐겨 사용해 ‘셰익스피어 소네트’라는 이름까지 따로 붙은 서정시로, 14행이 하나의 연을 이룬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형식까지 오롯이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시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오오, 로미오, 로미오! 그대는 왜 로미오인가요(O, Romeo, Romeo! Why are you Romeo)?”로 시작되는 유명한 발코니 장면 줄리엣의 대사나, 마지막 장면 로미오의 대사 “죽음이 당신의 달콤한 숨결을 빼앗아 갔을 망정, 그대의 아름다움은 빼앗아 가지 못했군요(Even though death took away your sweet breath, it could not take away your beauty).”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로미오와 줄리엣 곳곳에 담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강렬하고 운명적인 비극으로 끝을 맺음에도 ‘가장 낭만적인 첫사랑’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것에는 이 소네트도 큰 지분을 차지하니 영리한 선택이다.

FRESH: 소년 로미오와 소녀 줄리엣
당분간 무대에서 만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박정민과 문근영, 두 배우의 출연 사실만으로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티켓은 구하기 힘들다. 박정민의 로미오는 등장부터 기존의 로미오와 확연히 분리된다. 극 중 인물들의 입으로도 회자될 만큼 그간 로미오를 상징하던 ‘전형적인 미남’은 아니지만 소탈하고, 쾌활하며, 약간은 능글맞은 구석도 보인다. 더군다나 산문적이고 다소 현학적이게마저 느껴지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가장 10대 소년답게 체화한다. 반면, 2010년 연극 [클로저] 이후 6년 만에 연극과 만난 문근영의 줄리엣은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애초에 작품의 시대 분위기상, 귀족 아가씨인 줄리엣이 전작의 앨리스처럼 능동적으로 움직이기는 힘들다. 거의 1막 내내 ‘방 안’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묶여 있어야 함에도 문근영의 줄리엣은 관객이 기대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KBS [가을동화]만큼이나 청초하지만, ‘로미오를 잃을 수 있다’는 2막의 상황이 주어지자 처연함과 애절함을 내뱉는다. 물론 두 배우 모두 커리어에 비해 무대에 익숙하지 않아 드러나는 서툶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과 만나자, 다소 설익은 상태조차 싱그러움으로 바뀐다. 처음 본 다음 날 결혼을 결정할 정도의 열정, 서슴없이 죽음을 선택할 정도의 충동과 치기. 아이도 어른도 아닌 소년과 소녀가 아니었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일까? 오히려 지나치게 노련했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지금처럼 순수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 극장전은 이번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끝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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