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올해의 앨범│이랑 [신의 놀이]와 이민휘 [빌린 입]

2016.12.28

이랑의 ‘신의 놀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뭐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을 정확히 짐작해주는 것은 다음 문장이다. “때로는 사막에 내던져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시나요.” 이랑은 [신의 놀이]의 시작부터 이 앨범이 한국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배제하고는 설명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에서 “나는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로 이어지는 끝맺음을 통해 지금부터 자신이 들려주려는 노래가 좋은 이야기에 가닿기 위해 힘껏 써내려간 결과물임을 드러낸다.

물론 이랑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교훈을 담는 쪽도,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희망이나 용기를 불어넣는 쪽도 아닌 것 같다. 앨범 수록곡의 가사와 각각의 곡을 쓰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는 책의 첫머리는 이렇다. “올해는 계속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다. ‘즐겁게 살자.’ 언제 어떻게 개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랑은 인터뷰에서 여성혐오 반대 집회에 참가했던 경험에 대해 언급하며 “‘사실 저는 여성혐오에 대해 할 말이 정말 많고, 꺼내다 보면 여기서 울고불고 할 것 같으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노래만 부르겠습니다’ 하고 바로 공연을 시작”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니까 좋은 이야기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 한국에 사는, 여성, 이랑은, 울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 위해 음악의 형태를 빌려 [신의 놀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앨범이 펼쳐내는 건 부끄러워서, 혹은 하나하나 늘어놓자면 너무나 서글퍼지는 바람에 모른 척 한구석으로 밀쳐뒀던 쭈그러진 마음들이다. ‘가족을 찾아서’에서 이랑은 “나는 언젠가 후회하게 될까”라며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과 평생 아빠를 용서하지 않은 것, 키우는 고양일 세게 때렸던 일을 곱씹는다. 그것은 굳이 따지자면 사소한 일일지 모르나 “거울을 보다가 갑자기 문득 슬퍼질 때가” 있거나 “일기장 속에는 자신에 대한 질문”이 가득 차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괴로움이다. ‘이야기 속으로’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결국 근원적인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이며, ‘나는 왜 알아요’는 알고 싶지 않은 것은 다 알게 되고 알고 싶은 것은 다 알 수 없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겪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럴수록 이랑은 더 멀리, 더 많은 사람에게 닿으라는 듯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개인의 이야기가 음악을 통해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탐구한 뮤지션은 이랑뿐만이 아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세상 모든 것에 화가 나 있는 것만 같았던 무키무키만만수 시절을 지나, 최근 첫 정규 솔로 앨범 [빌린 입]에서 이민휘는 “어떤 사람이 닫힌 입을 열게 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개인의 경험과 감상에서 출발한 이 앨범은 [신의 놀이]만큼 구체적인 상황과 감정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음악이 제시하는 풍경은, 말해야 하는 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들어야 하는 것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시간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모두의 이야기로도 확장된다. 앨범은 ‘돌팔매’에서 시작해 지금껏 온전히 말하고 듣지 못했음을 인식하는 ‘빌린 입’과 스스로를 성찰하는 듯한 ‘깨진 거울’ 등을 거쳐 누군가의 도움으로 도둑맞은 혀를 되찾게 되는 ‘받아쓰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자신의 괴로움을 음악으로 다듬어낸 이민휘, [빌린 입]을 들으며 각자의 괴로움과도 비로소 마주하게 된 이들은 서로에게 도둑맞은 혀를 찾아주는 존재인 셈이다.

올 한 해 이랑과 이민휘의 음악이 유난히 위로가 되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살아가는 일은 늘 고단하고,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건 더더욱 고단한 일이다. 울고 싶어지는 순간들, 제대로 듣고 제대로 말해야만 할 것들은 점점 늘어나지만 고통과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다. [신의 놀이]와 [빌린 입]은 그 마음을 소리 내어 말해도 좋다는 걸, 혹은 소리 내어 말해야만 한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페드로 코스타가 ‘제게 영화는 이제 평생 친구가 될 사람들의 집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방법이 됐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읽고 이게 맞구나, 이뿐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음악도 사람들의 집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청자가 제 앨범에서 각자의 삶을 발견하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유대감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이민휘) 이런 시절에도 음악이 필요한 이유를,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2016년 이랑과 이민휘가 말했다. 그것이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좋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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