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마이클을 다시 듣다

2016.12.29

2016년 음악계는 데이빗 보위와 프린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을 잃었다. 그렇다고 크리스마스 아침에 조지 마이클의 사망 소식이 덜 놀라운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건강 문제를 겪은 적은 있지만, 심장 문제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은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사고에 가깝다. 그는 보위나 프린스처럼 어떤 장르나 흐름 일체를 대변하여 특정 시기에 얽매이지 않는 전설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80년대를 바라보고 기억하는 방식에 관한 아이콘이다.

80년대는 때때로 희화된다. 영화 ‘주랜더’가 세차 장면에서 ‘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썼을 때, 또는 ‘데드풀’의 엔딩이 ‘Careless Whisper’를 삽입했을 때, 이들은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이용하여 즉각적인 웃음을 만들어낸다. 한 편에서는 80년대 패션의 다채로운 색상과 ‘누구도 공식화 하지 않았던’ 동성애 코드를 슬쩍 차용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일종의 ‘느끼함’을 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손쉬운 도구로 사용한다. 두 노래는 모두 84년 앨범 [Make It Big]의 히트곡이고, 조지 마이클과 앤드루 리즐리의 듀오 ‘왬’에게는 경력의 절정이었다. 왜 하필 ‘왬’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Careless Whisper’의 상징적인 색소폰이 그렇듯이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대부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뿐이었다면, 우리는 조지 마이클을 팝 아이돌 듀오의 일원 정도로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지 마이클은 88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프림즈나 비틀즈를 들을 때, 당신은 팝이 예술의 형태로 인정받던 시기의 음악을 듣는 겁니다. 좋은 팝 음악은 예술의 일원입니다. 언젠가부터 팝은 존중 받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예술로서의 팝에 매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이 허세나 변명이 아니다. 당시 그는 솔로로 데뷔하여 [Faith]를 내놓고 기록적인 히트를 누리는 중이었다. [Faith]는 7개의 싱글을 내고, 그 중 4곡이 싱글차트 1위를 기록했다. 앨범차트 1위에는 12주간 머물렀고, 전세계적으로 2천 5백만장 이상 팔렸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을 수상했고, 80년대 앨범 순위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다.

한 시대를 상징할 정도의 대중적 성공과 그에 대한 음악적 평가가 하나의 쌍처럼 떨어지지 않고, ‘Last Christmas’가 그런 것처럼 영원한 추억의 대상이면서 인지도가 높은 만큼 유머 코드로 작동하기도 한다. 80년대 이후의 마돈나가 자신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면서 인기와 영향력을 유지했다면, 조지 마이클은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가치에 머물렀다. 90년대의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나 [Older]에서 보다 진지한 접근을 선보였고 대중적으로도 성공했지만, 판매량과 평가 측면에서 [Faith] 이전과는 다르게 기억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3장의 앨범은 모두 논쟁적인 비주얼 작업과 대형 R&B 발라드의 결합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때때로 알 켈리의 그것을 선도적으로 제시한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말하자면 보는 사람에 따라 조지 마이클은 80년대의 팝 이이돌과 작가 어딘가에 있다. 그 사이에는 훌륭한 작곡가이자 빼어난 백인 R&B 보컬이 자리한다. 그는 자신의 노래만이 아니라 아레사 프랭클린의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 엘튼 존의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또는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에서의 ‘Somebody to Love’ 만으로도 목소리의 가치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Freedom! ‘90’와 ‘Jesus to a Child’ 같은 노래를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 그의 앨범을 다시 꺼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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