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① [썰전], 정치를 영업하다

2017.01.03
지난해 12월 29일, JTBC [썰전]의 2016년 마지막 방송에는 ‘청문회 스릴러’의 주역들이 등장했다. 국조특위(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MC 성태’라는 별명을 얻은 김성태 개혁보수신당 의원에게는 힙합 스타일 CG가 입혀졌고, 사투리 섞인 말투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심문해 ‘쓰까 요정’이라 불린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의 발언은 영화 [신세계] OST와 함께 느와르풍으로 재구성됐다. 이들은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구치소 청문회 비하인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놓으며 ‘베스트 증인’과 ‘워스트 증인’을 뽑았고, “내가 왜 박명수하고 닮았습니까!”(김성태), “저 유호정 씨 팬입니다”(김경진) 등의 어록도 남겼다. KBS [해피투게더3], SBS [자기야 – 백년손님] 등 동시간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을 가볍게 제친 것은 물론이다. 

예능이 아닌 것 같지만 요즘 가장 뜨거운 예능, [썰전]은 2016년 12월 한국 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2위에 올랐다. 부동의 1위를 지켜온 MBC [무한도전]과 0.2% 차이. 2015년 12월 같은 조사에서 [썰전]은 17위였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하 유시민)과 전원책 변호사(이하 전원책)가 패널로 합류한 뒤 10위권 내에 안착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11월부터 선호도와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 프로그램에는 도약의 기회가 된 것이다. MBC [황금어장], [나 혼자 산다] 등을 만든 [썰전]의 정다운 작가는 이 프로그램이 “뉴스를 써머리(summary)하는 방송”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플랫폼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올수록 정치 고관심층뿐 아니라 보다 많은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선별과 요약, 무엇보다 재미가 필수다.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과 자칭 ‘골수보수’ 전원책은 각각 진보와 보수의 시각을 대변하는 동시에 정치인, 행정가로서의 경험과 법률 전문가로서의 식견을 바탕으로 이슈에 접근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이 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서 중요한 쟁점인지, 직권주의와 변론주의의 차이는 무엇인지, 조류인플루엔자(AI) 대처에 있어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시사 현안은 그래픽과 자막을 통해 족집게 강의처럼 구성된다. 다른 어느 예능에서보다 말을 적게 하지만 논점을 빠르게 파악하고 일반 대중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적소에 던지는 MC 김구라 역시 시사 예능의 진행자로는 적격이다. 물론 모든 주제가 제대로, 의미 있는 결론을 낼 수 있을 만큼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5월 말,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에 대한 방송에서 전원책은 한국 사회에 팽배한 여성혐오 정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범인의 정신질환에만 초점을 맞췄고, 유시민은 끝내 그를 이해시키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정치적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다가도 금세 사이좋게 만담을 나누는 유시민과 전원책의 ‘톰과 제리’적 관계와 캐릭터는 토크쇼로서 [썰전]이 주는 재미의 핵심이며, 시청자가 쉽게 지치지 않고 이슈를 따라갈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다.

정치에 철저히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접근하되 패널을 소수정예화 한 [썰전]의 방식은 종합편성채널에 범람해온 ‘시사 토크쇼’들과 차별점을 가지며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12월 말, 채널 A에서는 다분히 [썰전]과 유사한 포맷의 [외부자들]을 런칭해 3.7%(닐슨 코리아 기준)라는 제법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3주 동안 [썰전]의 화제성에 불을 붙인 것이 ‘청문회 스타’ 의원들을 연이어 초대한 ‘뉴스의 당사자와 함께’ 코너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청문회장에서 멱살잡이라도 할 듯 언성을 높이던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과 당시 새누리당(현 개혁보수신당) 장제원 의원이 함께하는 ‘절친노트’만큼 궁금한 조합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본심이야 어떻든, 대중 앞에서 웃으며 덕담을 나누고 정견을 주고받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는 경험은 ‘다 똑같이 썩은 놈들’이라는 정치혐오로부터 떨어져 정치인 각자와 사안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방송 한 편이 보여줄 수 있는 정치의 세계에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이자 시청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알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 수 있다. 모두가 정치 고관심층이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어느 정도 시민의 의무이기도 하다. [썰전]의 김은정 PD가 “동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보고, 함께 알아가는 마음으로 한다”고 말한 것처럼, [썰전]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문턱이 낮은 정치의 ‘입구’다. 이 문을 통해 얼마나 더 깊이 들어가느냐는 각자에게 달려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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