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엄정화

2017.01.04
엄정화는 지난 26일 SBS [가요대전]으로 컴백했다. 미리 알려졌던 바와 같이 ‘Watch Me Move’와 ‘Dreamer’를 무대에서 최초로 공개하고, 탑과 함께 ‘D.I.S.C.O’ 무대를 선보였다. 그 직후 네이버 V앱 생중계를 통하여 앨범 발표행사를 하고, 자정에는 ‘Oh Yeah’와 ‘버들숲’을 포함하여 4곡의 음원을 발표했다. 새 앨범 [The Cloud Dream of the Nine]은 [Prestige] 이후로 따진다면 무려 10년 만이다. ‘D.I.S.C.O’도 벌써 8년 전이다. ‘구운몽’이라는 주제처럼 아직 5곡이 남아있다.

앨범의 나머지 절반이 나오기 전이지만, 그녀의 성과를 말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Prestige]와 ‘D.I.S.C.O’의 엄정화가 그랬듯이, 신보의 음악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그것들을 장르와 스타일로 헤쳐 말로 표현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스스로 원하는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하여 좋은 창작자를 한 자리에 모으고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풀어 놓을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놓는 프로듀서이자 퍼포머로서 엄정화는 지금 현재 가장 눈에 띈다.

예컨대, ‘Oh Yeah’에서 어반 R&B가 중요한가? 그 스타일 안에서 이민수와 종현을 모아놓는 선택이 중요한가? ‘Dreamer’에서 윤상 혹은 원피스가 만드는 디스코 댄스곡이 중요한가? 아니면 펑키한 리듬파트와 빈틈없이 꽉 짜인 베이스에 아이돌 작업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중간 템포의 어두운 분위기로 90~2000년대 여성 솔로 댄스넘버의 업데이트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한가? ‘버들숲’이 하우스 리듬을 주조로 삼지만, 사소한 아이디어 몇 가지로 1990년대의 카디건스와 2000년대 인디팝을 소환할 때쯤이면 확실해진다. [Prestige]를 조원선 대신 엄정화가 들어간 롤러코스터 앨범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된 몰이해인지.


물론 사소한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Dreamer’의 가사 일부는 음악 전체가 풍기는 현대적인 갱신을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그땐 누구보다 널 사랑했던 나잖아”로 정점에 이르는 후렴은 카리스마와 우아함이 넘치는 무대조차 그 올드함을 감출 사이 없이 귀에 와서 선명하게 박힌다. ‘Watch Me Move’의 코러스 가사는 나태하다고 해도 좋은 정도지만, 청각적으로는 그 정도로 아쉽지 않다. 하지만 이조차도 전체적인 성과에 비하면 말 그대로 사소하다. 더군다나 이른바 ‘1세대 아이돌의 복귀 붐’이 과거의 재현에 그치거나, 새로운 음악을 낸다 해도 콘셉트의 재활용에 불과한 상황에서 엄정화의 ‘신보’는 차별적인 존재다. 그는 엄연히 개인적인 어려움 탓에 한동안 노래를 할 수 없었던 ‘현역 아티스트’다. 2년 전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에서조차 엄정화의 무대가 특별했던 이유다. 그리고 ‘현역’이기에, 여전히 훌륭한 음악을 하기에, 음악 외에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달 9일, 마돈나는 빌보드가 수여한 ‘올해의 여성 음악인 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 소감은 여성 음악인에 대한 무수한 논의가 있었던 최근 몇 년을 통틀어서도 가장 화제가 된 순간이었다. 그는 “노골적인 성차별과 끊임없는 괴롭힘, 학대에 맞서 34년간 활동해온 능력을 인정해주어 고맙다”고 연설을 시작했다. 데이빗 보위를 보며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이중잣대로 고통 받은 기억을 말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것은 ‘나이’에 대한 것이다. “나이 들지 마세요. 나이 드는 건 죄입니다. 오직 나이를 이유로 평가받고 비난당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노래가 절대 라디오에 나오지 않게 됩니다.” 이 발언은 당연히 작년의 BBC 라디오 사건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엄정화를 향한 일각의 시선이나 배배 꼬인 표현들이 그녀를 정확히 ‘한국의 마돈나’로 만들고 있다. 현재의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10년 전의 마돈나가 미처 겪어보지 못했던 ‘에이지즘’을 엄정화가 맞닥뜨린 셈이다. ‘D.I.S.C.O’ 시절에도 특유의 콘셉트와 연관하여 가벼운담은 있었지만, [The Cloud Dream of the Nine]의 음악적 성과와 아이돌이 미처 시도할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 앞에서조차 ‘나이’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은 더 커졌다. 사실 엄정화까지 갈 것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S.E.S가 있고, 이효리의 컴백에 대해서는 또 어떨까? 그래서 과거와 다른 이유로 묻게 된다. 한국의 마돈나를 몇 명이나 만들어낼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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