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켄즈], ‘우리’를 노래하는 주말

2017.01.04
한 영화에 대한 글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막막하다. 특히 [위켄즈]처럼 개인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영화일수록 더욱 그렇다. 고민하다 거꾸로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오프닝처럼 영화가 끝난 후의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한다. 영화가 끝나고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한 관객이 성소수자들의 활동은 기록이 되지 않아 늘 안타까웠는데 “저희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이렇게 기록을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꺼냈다. 자신 또한 한 풍물패에 소속되어 있다고 밝힌 관객이 전한 그 감사의 말이, 기꺼이 크리스마스이브라는 특별한 날 이 영화를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국내 첫 게이 코러스팀 ‘G-Voice’(이하 지보이스)가 시작된 지도 벌써 햇수로 13년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부문에 초청되어 관객상을 받으며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다큐멘터리 [위켄즈]의 주인공은 바로 13년째 게이의 삶을 노래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동하 감독은 지보이스의 출발과 현재까지의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연도별로 충실히 따르기보단, 2013년에 열렸던 지보이스 10주년 기념 공연과 그 기점의 시간을 떼어내 더 중점적으로 바라본다. 이 2년 남짓의 시간 속엔 지난 한국 사회의 투쟁과 연대의 역사가, 그 속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역사가, 또 그 안에 있는 지보이스 팀 자체의 역사가 있으며, 이 모든 저변엔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개개인의 역사가 있다. 결국,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은 안팎으로 밀려오는 억압들과 끊임없이 싸워가는 것이다.

이는 거대한 외로움을 동반한다. 더군다나 그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지워지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은 사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것 같은, 일종의 부유감마저 일상적으로 느끼는 실정이다. 최근 만남 어플의 등장으로 인권 단체나 대형 온라인 게이 커뮤니티가 상당히 와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소모임의 수는 급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커뮤니티가 파편화되면 될수록 그만큼 성소수자들의 소속감의 부재는 더욱 커지는 것이다. 주로 취미와 공통의 관심사로 뭉친 이러한 소모임들은 인권 운동 같은 정치적 움직임과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이 모임들에서 얻어가는 소속감이 강력한 연대로 발현되는 순간이 찾아오는 때가 있다.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의 작은 소모임으로 시작했던 지보이스의 시작도 그렇다. 거창한 목적의식 없이 단지 노래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뭉친 그들의 노래는 어느 순간부터 인권 투쟁의 주요 현장들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영화가 다루는 2013년과 2015년 사이의 시점들은 나에게도 각별한 해이다. 게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각은 어릴 적부터 확고했지만, 2013년 당시 나는 이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흔히 말하는 ‘벽장’ 게이였다. 당연히 인권 운동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리라 믿었다. 이러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 속에도 등장하는, 이듬해인 2014년 신촌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면서였다. 그날 나는 나 자신이 다수에 속해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의 한 번도 본 적 없던 거대한 수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보았고, 동시에 그동안 실제로는 경험한 적 없었던 나에게 쏟아지는 거대한 혐오를 처음으로 목격했다.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며 행진을 방해하는 혐오의 실체를 향해 나도 모르게 즉각적으로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고 큰소리로 외친 그 순간은 인권 운동이 분명한 나의 일이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보이스 단장이었던 ‘샌더’ 역시 극 중에서 인권 운동 같은 걸 생전 해본 적 없던 자신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단장을 맡게 되었다는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이 다큐멘터리 스스로 혐오 현장의 목격을 통해 각성하는 듯한 구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때문에 흥미롭다. 유머러스하고 다소 말랑말랑한 뮤지컬처럼 꾸며진 전반부를 지나 김조광수와 김승환 커플의 결혼식에서 벌어졌던 혐오세력의 ‘인분 투척’ 사건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순간, 극의 분위기가 반전된다. 쌍용차 고공 농성 현장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한 팽목항 문화제에서의 공연을 지나 서울시청 무지개 농성과 지보이스 활동을 한 동료이자 친구인 스파게티나(영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관한 이야기까지 도달하면 영화는 한없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혐오는 우릴 나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혐오의 모습이 내게 각성의 계기가 되었듯, 혐오는 우릴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 흰 와이셔츠에 똥물을 뒤집어쓰고도 그들은 그나마 똥물이라 다행이라고 너스레를 떨어가며, 웃음을 잃지 않고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합창은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하모니’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톤과 음을 맞추는 것에서 시작한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역시 합창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지보이스의 노래를 이루는 것은 각 구성원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겪는 일들과 순간순간의 감정들이다. 친한 게이 형과의 연애 상담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애틋한 고백(“자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손잡고 싶은 사람은 너뿐이야”)과 백화점 빵집에서 일하며 명품 가방을 장바구니처럼 사용하는 손님의 모습에서 느낀 상대적 박탈감과 푸념은 노래가 된다. 하지만 이런 각자의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공연에서 전달되는 순간, 그들의 노랫말은 그 어떤 정치적인 구호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페트라 켈리가 68혁명 당시 연설에서 말했듯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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