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만의 와일드월드

퇴근 이후에는 업무로 연락하지 맙시다

2017.01.09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업무 시간 이후에 일과 관련된 이메일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프랑스의 최근 소식을 듣고 데자뷰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2014년에 비슷한 뉴스가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영어권 언론은 프랑스에서 오후 6시 퇴근 이후에는 업무용 이메일과 전화를 안 받아도 되는 노동법이 통과됐다고 보도했었다. 실상은 노동법이 아니라, 첨단기술과 컨설팅 분야의 노조와 고용주들이 맺은 협약에 업무 이메일과 관련한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이지만, 당시 그 소식은 짧은 근무 시간과 긴 휴가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이미지와 잘 어울려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미 2000년부터 법정 노동 시간을 주당 35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퇴근 후 업무 연락을 받지 않게 정하다니, 굳이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기자가 아니더라도 기사로 쓰고 싶은 주제였을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기사가 왜 2년 반이나 지난 지금 다시 보도되는 것일까? 간단하다. 이번엔 퇴근 이후 업무 연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실제 노동법으로 법제화됐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프랑스가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피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접속을 끊을 법적 권리를 보장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올해 1월 1일부터 직원이 50명 이상인 사업장에서 스마트폰을 무시할 수 있는 권리를 직원과 협상하고 명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이다. 디지털 기기들은 사용자에게 자율성과 융통성을 주지만, 동시에 항상 일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일과 생활의 경계를 쉽게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처음 법이 계획되던 작년 5월, 브누아 하몽 장관은 BBC에 “직원들의 몸은 사무실을 떠나지만, 그들이 일에서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흡사 개처럼 디지털 목줄에 매여 있죠. 문자, 메시지, 이메일 같은 것들로 말입니다. 그것들은 개인의 삶을 결국엔 좌절할 수밖에 없는 지점까지 식민지화시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프랑스의 한 연구 단체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프랑스 노동자의 1/3 이상은 매일 업무 시간 외에 자신들의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일한다고 한다. [리베라시옹]이 사설을 통해 이 법을 칭찬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리베라시옹]은 “직원들은 종종 회사에 대한 헌신과 언제든지 회사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지의 여부로 평가받”기 때문에 이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 법에도 맹점은 있다. 비록 이 법이, 회사가 직원의 고용과 해고를 쉽게 만든다는 점 때문에 프랑스 노동자들의 거센 저항을 받은 새로운 노동법에서 유일하게 칭찬을 받는 조항이지만, NBC는 이 법을 위반하는 회사에 처벌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50명 이상인 사업장”도 문제가 된다. 유럽 연합의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기업의 상당수가 49명까지만 직원을 고용한다. 프랑스의 노동법이 50명 이상의 사업장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2015년을 기준으로, 실제 직원이 50명 미만인 기업은 전체 프랑스 노동 인구의 48.6%를 고용한다. 바꿔 말해서 프랑스 노동 인구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의 사람들만이 이 법의 혜택을 본다. 흡사 주당 35시간의 법정 노동 시간이 실질적으로 엄밀하게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이 법의 실효성도 비슷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문제가 법제화해야 할 정도의 사안이냐는 질문도 있지만, 개인적인 삶과 일의 경계가 흐릿해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경계를 명확히 만들 필요가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법이 있기 전에도 폭스바겐이나 다임러 같은 커다란 기업체들이 자발적으로 근무 시간 이후의 업무 메시지를 제한하기도 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근무시간 외에는 업무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 즉 프랑스와 같은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87%나 된다. 한국의 노동자들도 프랑스를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접속을 끊을 권리를 쟁취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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