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남성들│① 지금, 남성이 가져야할 상식

2017.01.10
MBC [나 혼자 산다]의 다니엘 헤니에게 쏟아지는 관심에는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특출하게 뛰어난 외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단언하기엔, 그는 2005년 MBC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할 때도 이미 넘칠 정도로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때와 달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배우가 되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두 차례의 방송에 걸쳐 혼자 사는 남성으로서 다니엘 헤니가 보여준 것은 자신의 손으로 실생활의 일들을 해결해나가면서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삶을 더욱 충실하게 가꿀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그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정원사와 가사 도우미를 고용할지언정, 집안일을 핑계 삼아 결혼을 갈망하거나 여성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활 전반에 필요한 일들은 스스로 한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대부분의 남성들은 무언가를 스스로 차려 먹는 일이나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표준처럼 묘사되었으며, 깔끔하게 살아가는 장우혁의 경우가 오히려 특이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심지어 최근 출연한 코미디언 김준호는 보일러 켜는 법을 몰라 후배 정명훈을 집으로 불렀으며, 유민상에게는 즉석밥을 사 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그를 자신의 생활을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아내의 손길에 도움받을 수 없는 ‘짠내’ 나는 ‘기러기 아빠’로 포장했다. 동시간대 방영 중인 SBS [미운 우리 새끼]는 중년에 접어들도록 혼자 생활을 꾸리는 데 익숙하지 못한 아들과 결혼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어머니의 갈등을 아예 방송의 중심으로 삼는다. 미디어와 사회 이곳저곳에서 공공연히 집안일을 여성의 몫으로 남겨둘 때, ‘남성 역시 자신의 힘으로 집안일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다니엘 헤니의 등장은 각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관련 표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니엘 헤니가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에릭 남의 인기와도 맞닿아 있다. 좀처럼 과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을 배려하고, 덕분에 꾸준히 여성들의 지지를 받아온 에릭 남은 지난해 잡지 [GQ 코리아]가 뽑은 ‘올해의 남자’가 되었으며 해당 인터뷰에서 성 차별에 대해 밝힌 이야기까지 화제에 올랐다. “전 그냥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거 가지고 사람들이 좋은 말을 하니까, 이상해요. 당연한 건데. (중략) 여성 비하나 외모 지적이나, 그냥 하지 마요. 안 하면 되는 걸 왜 굳이 입에서 꺼내냐고요.” 에릭 남의 발언처럼, 두 남성이 함께 각광받는 지금의 현상은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담론과 검증이 예전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령 지난해 10월 강동원은 영화 [가려진 시간] 제작발표회에서 나이 차가 큰 동료 여성 배우 신은수에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발언한 이후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동안 여성 팬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왔던 강동원조차 더는 쉽게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 올바름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중요한 리트머스가 되었다.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남성 연예인들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보이는 일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이들은 여성혐오 혹은 소수자 차별 등의 이슈를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실생활에서 어떤 식으로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지, 차별하고 혐오하지 않는 방식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널리 보여줄 수 있다. 굳이 여성의 손에 의지하지 않고도 정돈된 삶을 영위하는 다니엘 헤니, ‘오빠’라는 말에 집착하는 헨리를 따끔하게 지적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여성에게 선뜻 손을 건네는 에릭 남의 모습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고, 더 나아가 무엇이 멋있는 것인가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제시한다. 이들은 말로는 촘촘하게 설명하기 어려울뿐더러, 당위인데도 설득시키는 데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개념들을 자신의 삶에서 실행하며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나 혼자 산다]에서 다니엘 헤니에게 보인 이시언과 기안84의 반응처럼, 일부에서는 두 사람의 태도가 가식적이며 미디어에서 연출한 단면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그들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가식으로 비춰질 만큼 올바르면서도 매력적이었다는 의미다. ‘아재’로 대표되는 중년 남성들이 어린 여성들에게 막말을 던지고, 남성이 자신의 손으로 청소하거나 요리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인종차별 발언과 개그를 서슴지 않는 이곳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지금, 다니엘 헤니나 에릭 남 같은 남성들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페미니즘에 관한 똑같은 논쟁을 반복하거나 어떤 남성들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페미니즘의 개념을 외치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남성들이 늘어날 때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의 역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여성을 주부의 자리에 놓는 일이 당연하지 않다는 합의, 자신보다 어린 여성 앞에서 권위를 내세우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합의가 곧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오기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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