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옷 정리를 책으로 배웠습니다

2017.01.11
먹고 자고 일하는 것 말고는 방치하다시피 했던 생활을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무래도 새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일상은 변함없지만 그나마 변화를 시도해볼 타이밍은 지금뿐이 아닐까. 방문을 여닫을 때마다 거치적거렸던, 몇 달, 아니 실은 1년 이상 수북이 쌓아둔 옷더미 어딘가에서 곰팡이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늘 찜찜했기에 큰맘 먹고 불필요한 옷부터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평생 정리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으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다. 전문가의 조언을 찾아보는 수밖에.

온라인 서점의 도서 목록을 훑어보면, 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꿈을, 어제를, 집착을, 장난감을, 재테크를, 대한민국을, 가짜 회의를, 마케팅 이론을, 영어문법을, 탐욕의 복음을, 기승전결을, 평가 제도를, 마음을, 진심을, 내 자아를, 쓸데없는 생각을, 그리고 네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라. 심지어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라는 책도 있다. 이 중 내가 고른 것은 ‘곤마리 정리법’으로 유명한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다. “일생에 한 번뿐인 ‘정리축제’, 끝까지 할 각오가 되어 있나요?”라는 시작이 좀 부담스럽지만, ‘이상적인 침실’을 위해 “시트와 베개 커버를 매일 새것으로 갈아준다”는 대목에서 역시 우리는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못 본 척 의류 정리 파트로 넘어가기로 했다.

집 안의 모든 수납가구에 있는 옷을 꺼내어 한 곳에 쌓은 뒤, 옷을 손에 들고 ‘설레는’ 것만 고르라는 곤도 마리에의 기준은 알 듯하면서도 모를 듯하다. 설레지는 않지만 편하고 따뜻한 후드 티셔츠, 설레지는 않지만 적당히 늘어나 배를 조이지 않는 기모 바지 같은 건 어떻게 하지? 옷걸이에 옷을 걸 때는 긴 옷에서 짧고 가벼운 옷으로, 아랫단이 오른쪽으로 상승하듯 정리하라는데 긴 코트와 원피스만으로도 옷걸이가 꽉 차버리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여러 해 동안 입지 않은 옷은 평생 안 입게 된다”거나, “이미 버린 옷의 벨트나 어떤 코트의 털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뭔가에 재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남겨두는 것은 위험하다”처럼 구체적인 조언들은 내 옷장의 카오스와 게으른 마음을 들킨 듯 가슴에 와 닿는다. 덕분에 10kg 감량하고 코스프레라도 해야 입을 수 있을 치파오 원피스와 좀비 떼가 쳐들어와 중무장하고 도망칠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은 긴 터틀넥 니트 스웨터, 정체불명의 앙고라 소품 따위를 버릴 수 있었다. 

입지 않는 옷을 버리는 것을 넘어, 옷 정리와 구매의 패턴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지비키 이쿠코의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도 참고하기로 했다. 패션지 스타일리스트로 30년 이상 일해온 그는 “서른이 넘은 여성이라면 필요 없는 옷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유행은 돌고 도는데, 언젠가 다시 입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유행은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당신 나이는 과연 몇일까?”라는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단지 다양한 코디를 위해 저렴한 가격에 마음에 안 드는 옷을 여러 벌 사는 이”라니, 이것은 유니클로에서 색깔만 다른 티셔츠나 바지를 두어 벌씩 사서 늘어날 때까지 돌려 입던 나를 향한 저격이 아닐까. “젊을 때 버리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옷더미 속에서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에 이은 그의 조언은 다음과 같다. 항상 일정한 수의 옷걸이만 가지고 있다가 더 이상 옷걸이에 걸 수 없는 옷이 생기면 무언가를 처분한다. 아침에 거울 앞에서 벗어버린 옷, 잘 입지 않는 옷,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옷은 버려야 한다.

이 중 ‘어울리지 않는’이라는 말은 모호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나이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옷을 계속 입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해가 다르게 안색이나 분위기, 체형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옷들이 늘어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외면해온 현실과 마주한 덕분에 결국 옅은 하늘색 미니 원피스, 목과 어깨 주변에 프릴 달린 블라우스 두 벌, 록밴드 멤버에게나 어울릴 듯한 검정 민소매 티셔츠를 포기하기로 했다. 고민 끝에 결국 버리지 못한 옷도 있다. 시베리아 배경 영화의 주인공들이 입을 것처럼 두껍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인조 가죽 코트, 푸켓에서 충동 구매해 등과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블랙 드레스는 언젠가 지구에 닥쳐올지 모르는 빙하기를 대비해, 또 혹시 언젠가 가게 될지도 모르는 몰디브 여행을 대비해 옷장에 좀 더 모셔두기로 했다. “설레서 버리지 못했는데 밖에 입고 나갈 수 없는” 이벤트 의류는 실내복으로나 활용하라고 하신 곤도 마리에 선생님이나, “자신의 나이를 직시하고 현실 감각을 유지하라”던 지비키 이쿠코 선생님께서는 탐탁지 않아 하시겠지만.

이처럼 불필요한 것은 사들이지 말고, 이미 샀더라도 과감히 버리라는 입장보다 조금 더 다정한 관점의 책도 있다. 항공 화물 적재 설계사 출신의 수납 디자이너 스기타 아키코와 농학박사 사토 고시가 쓴 [정리의 신: 정리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야!]는 청소년을 위한 책이지만, 정리 능력이 없다는 면에서는 어린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어른에게도 도움이 된다. 일단 버리기 전에 물건을 분류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집 전체가 아니라 서랍이나 선반 하나처럼 작은 목표 하나를 정해 실천해보라고 제안하며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납득하고 골라서 산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나에게 상냥한 삶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마음에 들었지만 맞는 사이즈가 없어 타이트하게 입으면 되려니 하고 샀지만 그냥 작아서 입지 못한 티셔츠, 빈티지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헌옷을 주워 입은 듯했던 티셔츠, 세일이라 무작정 집어 들었는데 등 뒤의 지퍼 때문에 까슬까슬해 입을 수 없던 티셔츠, 20대에 마르고 닳도록 입다 변색된 체 게바라 티셔츠도 모두 버리기로 했다. 대충 고르고 대충 다루다 대충 처박아두었던 많은 옷을 꺼내어 하나씩 떠나보내다 보니, 옷 정리는 한 해의 시작으로 꽤나 적절한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살 더 먹은 만큼 늘어난 고민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전부 다 손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옷장만이 아니라 머릿속도 조금은 개운해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했고, 달리 손 쓸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주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부디 자포자기하지 말고 정리를 시작해보세요.” 자포자기하지 말고, 나의 일상을 함부로 방치하지 않을 것. 올해의 목표로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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