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이토록 멋진 교과서

2017.01.11
웹툰에 있어서 ‘가독성’은 ‘재미’라는 개념만큼 넓고 중요한 개념이다. 그리고 네이버 웹툰의 [고수]는 거의 모든 면에서 가독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선과 먹’의 예술이었던 출판만화와 달리 웹툰에서는 ‘면과 색’이 중요해졌다. 그 이유는 근본적인 해상도의 차이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나 모니터는 아무리 해상도가 높아져도 근본적으로 인쇄물에 비해 낮은 해상도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웹툰에서는 복잡한 선들보다 색으로 채워진 면이 더 읽기 편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쉽게 말해서 웹툰에서 고밀도의 선들로 꽉 찬 이미지가 연속되면 독자의 눈은 즐거울 수 있지만 스크롤은 방해를 받아서 물 흐르듯 내려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마치 피자를 빨대로 먹는 것처럼, 한 컷 한 컷으로서의 그림은 아름답지만 이야기로서의 원고는 안 읽히게 된다. 여기에서 탄생한 오해가 ‘웹툰은 그림을 잘 그릴수록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고수]는 이 생각에 대한 가장 적절한 반례이다. 

[고수]는 세 가지 방식의 이미지를 동시에 사용한다. 인물은 최소한의 선화와 면 중심의 채색으로 그리되, 배경은 여전히 출판만화 특유의 밀도 높은 선화로 그린다. 그리고 더 중요한 ‘빈 배경’을 과감하게 사용한다. 우리의 눈은 자연스럽게 말풍선과 인물을 중심으로 흐르기 때문에 인물의 선을 단순화시키고 면 중심의 채색을 하면 가독성이 올라간다. (작가의 출판만화 [용비불패]의 인물 묘사와 비교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나는 차이점이다.) 반면 배경은 실감 날수록 이입을 돕는다. 따라서 가독성을 해치지 않는 한계까지 배경을 묘사하되 액션 장면에서는 과감하게 배경을 지워버린다. 웹툰에서 의도적으로 생략된 배경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작가의 중요한 장치이다. 즉, [고수]는 ‘인물은 단순하게, 배경은 자세하게, 그러나 방해될 때는 아예 빈 배경으로’ 그리는 것이다. 웹툰에서는 잘 그린 그림이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분을 집착적으로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그림이 안 읽히는 것일 뿐이다.

컷의 크기와 액션의 방향도 중요한 요소이다. 출판만화에서는 작가에게 할애된 페이지 수가 중요했다. 정해진 페이지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기 때문에 작가들은 페이지에 컷들을 맞춰서 짜 넣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컷들이 커지는 만큼 덜 중요한 컷들은 작아지는 것이 당연했고 가끔은 생략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웹툰은 페이지의 한계가 없다는 장점과, 해상도의 한계라는 단점이 동시에 작용해서 모든 컷이 동시에 어느 정도 이상 커져야 가독성이 담보된다. [고수]는 이런 특징을 너무나 당연한 듯 적용시켰다. 책 페이지의 컷을 오려 온 것 같은 답답함을 버리고 모든 컷이 시원한 시야로 배치된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의 방향 역시 가로 방향의 액션에 비해 세로 방향, 혹은 대각선 방향으로 시선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연출은 독자의 스크롤 속도를 올리거나, 의도적으로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가독성을 극대화한다.

출판만화 작가들 중 웹툰으로 눈부신 작품을 보여주는 선배 작가들의 작품에는 많은 고민의 흔적과 그로 인한 교훈들이 숨어 있다. 이야기의 호흡, 한 화가 끊어지는 지점, 주인공상의 변화와 에피소드 구성 등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지점을 관찰할 수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가시적인 요소만 뜯어보더라도 하나의 글에 담기에는 넘친다. 출판만화를 보며 공부하고 웹툰작가로 데뷔한 입장에서 출판만화와 웹툰을 동시에 느끼며 공부하다 보니 피할 것과 취할 것들에 대해 새롭게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고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멋진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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