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만의 와일드월드

인종차별주의자의 책이 출판될 때

2017.01.16
“페미니즘은 암”이라고 말하고, “과학으로 보는 여성의 생물학적 열등함”에 대해 대담을 하며, 자신의 생일을 “세계 가부장제의 날”로 선포한 남자가 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의 주인공, 레슬리 존스에게 인종차별적인 혐오 트윗을 계속 보내다가 결국엔 트위터에서 영구적으로 계정 사용이 금지된 밀로 이아노풀로스의 얘기다. 그는 인종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대안 우파의 인물로 프로 트롤, 온라인 혐오 집단의 리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의 당선을 도운 대안 우파의 허위 뉴스 사이트, [브레이트바트]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그가 최근 미국의 5대 출판사 중 하나인 사이먼&슈스터의 임프린트, 쓰레스홀드 에디션과 25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책을 내기로 했다. 이에 대한 진보 진영의 반발은 즉각적이었다.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는 2017년에 사이먼&슈스터의 책을 단 한 권도 리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웨슬리 로우리도 사이먼&슈스터의 책을 사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이먼&슈스터는 책에 나오는 작가의 주장과 출판사의 주장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지만, 이아노풀로스에게 직접 공격을 받았던 레슬리 존스는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혐오를 더 많은 사람에게 퍼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라며 출판사를 꼬집었다.

밀로 이아노풀로스가 문제 많은 인물이라는 것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의 책을 출판하기로 한 사이먼&슈스터에 대한 일방적인 보이콧은 그렇지 않다. 크게 두 가지 면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직접 책을 계약한 것이 사이먼&슈스터가 아니라, 산하에 속해 있는 임프린트라는 점이다. 임프린트는 거대한 출판사 내부의 개별적인 브랜드 같은 것으로, 사이먼&슈스터만 해도 이번에 논란이 된 쓰레스홀드 에디션을 비롯해 여러 개의 임프린트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임프린트는 모회사의 인쇄 시설이나 유통망 같은 인프라를 공유할 수는 있지만, 대개 편집권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대형 출판사들은 다양한 독자층을 타깃으로 삼는 임프린트들을 가지고 있고, 이들은 다른 하나가 부진한 매출을 올린다 하더라도, 이를 상쇄하는 다른 임프린트 덕에 모기업의 안정성을 확보하게끔 해준다. 이아노풀로스와 계약한 임프린트는 이미 딕 체니, 글렌 벡, 도널드 트럼프 같은 우파 인물들의 책을 낸 곳으로, 미국의 5대 출판사에 속한 다른 곳들도 이와 비슷한 성향의 임프린트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보면 사이먼&슈스터에 대한 보이콧이 출판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계약의 주체가 임프린트라는 점은 또 하나의 문제를 낳는다. 사이먼&슈스터의 책을 불매하는 것이 이아노풀로스와는 상관없는 다른 이들의 책 매출에까지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사이먼&슈스터 안에는 보이콧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진보 인사들도 있고, 살람 리드같이 무슬림을 테마로 한 아동 서적을 취급하는 임프린트도 있다. 게다가 보이콧을 위해선 거대 출판사에 속한 임프린트를 소비자가 속속들이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임프린트 모델이 내재하는 안정성 때문에 보이콧을 한다 할지라도 이아노풀로스의 책을 사는 이들로 인해 그 손해가 상쇄될 거라는 점도 보이콧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이다. 설사 특정 임프린트에서 나온 책에 대해서만 불매를 한다고 해도 그렇다. 불매하는 소비자들이 애당초 임프린트의 타깃 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 사안에 의의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번 사안은 밀로 이아노풀로스 같은 저급한 인물이 주류에 편입될 정도로 사회가 우경화됐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아노풀로스의 책 [데인저러스]는 예약 판매 직후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쓰레스홀드 에디션의 선택이 정치적으로 옳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비즈니스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음을 증명했다. 트럼프의 시대에 이아노풀로스 같은 인물의 주장이 인기를 끄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일임은 분명하다. 인종 차별, 여성 혐오 등의 소수자 차별과 혐오 발언을 일삼는 대안 우파가 공론장에서 설득력 있는 하나의 목소리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비정상적인 생각들이 보통으로 간주되는 사회의 미래가 밝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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