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그늘│① JTBC의 정유라 보도, 찬성과 반대를 넘어

2017.01.17
“JTBC 뉴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지난 2016년 7월 25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는 중국 작가 위화의 산문집에 있던 “루쉰이 그렇게 말했어(그러니까 맞아)”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언젠가 사람들이 JTBC 뉴스가 말한 건 믿을 수 있다는 반응을 얻을 만큼 신뢰와 권위를 얻는 언론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장 손석희 본인이 거의 매년 언론인 신뢰도 조사 1위를 기록한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한 JTBC 뉴스의 활약과 그에 대한 공중(公衆)의 환호와 신뢰는 정말 ‘JTBC 뉴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믿는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최근 국정농단 사건의 당사자인 정유라의 덴마크 거처를 파악하고 현지 경찰의 도움으로 그의 신변을 확보하는 과정을 담아낸 단독 보도에 이르러 ‘경찰보다 JTBC가 낫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영웅적인 언론의 등장 혹은 귀환. 하지만 정작 기자 사회에선 해당 보도의 윤리적 결함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해당 사안에서 JTBC가 신고를 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발생시킨 사건을 통해 단독 특종을 얻는 이해당사자로서 그 과정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었다. 정확히는 언론인은 아닌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논쟁은 여러 현역 언론인들의 갑론을박으로 이어졌다.

최근 독보적인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JTBC에 대한 지엽적인 딴죽걸기로 보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덴마크 현지에서 JTBC 이가혁 기자가 선택한 ‘선 신고 후 보도’는 진실에 대한 추적과 결과적인 정의의 실행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켰다. JTBC가 정유라에게 누명을 씌운 것도 아니고 해당 신고를 본인들이 했다는 것을 밝혔다는 점에서 사실을 왜곡시켰다고 보기도 어렵다. 중립적인 관찰자라는 언론의 기본자세를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미디어 연구가 김낙호가 지적하듯 그것은 “사실 왜곡을 피하기 위한 기법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기자가 사건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취재윤리가 정언명령은 아니”라는 CBS 변상욱 대기자의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안에 맞게 유연하게 운용될 수 없는 규칙은 자칫 허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적절한 규칙으로 제한되지 않는 정의감은 언제든 엇나갈 수 있다. 이미 JTBC는 공익이라는 대의를 앞세워 [경향신문]의 성완종 인터뷰 녹음파일을 가로채 방영한 바 있다. 명백한 반칙이었다. 해당 방송이 성완종 사태에 대한 일말의 진실을 전달하며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해냈다 해도, 각 언론사가 취재든 의제 형성이든 정당한 노력을 통해 경쟁하고 그에 합당한 성과를 얻는 공론장의 선순환 구조를 깨뜨리는 데 일조한 건 사실이다. 이것은 이번 건에서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JTBC 정유라 보도에 대해 가장 성실하게 비판한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는 “언론사가 판을 짜고 수사당국 등 권력기관과 팀을 이뤄” 벌인 사례가 “JTBC 건만 빼면 다 나쁜 사례”라고 지적했다. 물론 유사한 다른 사례들의 결과가 나빴다는 것이 JTBC 보도의 비윤리성을 확정적으로 논증해주진 못한다. 다른 모든 사례가 나빴지만 JTBC 건은 괜찮았다면 그것은 운이 좋았거나 이번 건에 예외가 될 만한 요소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전자라면 이 확률 낮은 도박을 그만두는 게 맞지만 후자라면 그 예외성을 섬세하게 걸러내 보도윤리의 원칙에 세부적인 보론으로 세울 수 있다. 박은하 기자의 말대로 “논쟁을 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당장 JTBC 스스로 해당 사안의 절차적 문제를 겸허히 인정하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보충 설명하기보다는 단독이라는 타이틀로 이슈를 선점한 뒤 진실과 정의의 파수꾼으로 추앙받는 상황에서 비판적인 검토와 논쟁이 벌어지기란 쉽지 않다. JTBC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공론장을 구성하는 언론 시장의 경쟁자들에게 좋은 결과로 과정의 문제를 지워버릴 수 있다는 왜곡된 메시지를 준 셈이다.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정당성 중 무엇이 더 중요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관념적 대립은 오히려 문제를 왜곡시킨다. 오랜 시간을 거쳐 현대 사회에서 합의된 대부분의 직업윤리가 그러하듯, 기자 사회가 공유하는 절차적 규칙은 언론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상당히 검증된 방법론이다. 정언명령이나 금과옥조는 아닐지언정 다양한 부작용을 예방해준다.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왜곡되지 않은 정보를 담아낼 수 있고, 공권력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언론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을 어겨도 된다면, 기존 원칙이 오류를 드러내는 예외적 상황이 발생했고 그에 따른 예외적 규칙이 적용되어야 할 때뿐이다. JTBC의 정유라 보도가 그런 사례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외 조항은 논쟁을 통해 기자의 직업윤리 안에서 다시금 재배치되고 재구성되어야지, 정의롭고 뛰어난 언론 혹은 언론인에게만 허용되는 영웅적 결단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영웅적 결단은 언론이 추구해야 할 정의를 자의적인 개념으로 만들어버린다.

한 방송사의 그것도 거의 대부분의 사안에서 모범을 보이는 방송사의 어쩌면 지엽적인 보도윤리 문제가 정말로 지엽적인 일로 끝날 수 없는 건 그래서다. 그 어느 때보다 영웅적인 활약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절대적 신뢰와 선망의 대상이 된 손석희와 JTBC 뉴스에게 제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잘하고 있는 이들에게 왜 엄혹한 기준을 들이대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언론이 짊어져야 할 책임윤리는 그 언론의 영향력과 신뢰도에 비례한다. 종교적 신념이 아닌 이상 신뢰란 건강한 긴장을 동반할 때 비로소 더 단단해진다. 오류 가능성을 탐색하고 보완하는 불신의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더욱 신뢰할 수 있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이번 정유라 보도 사례를 기회로 공론장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대전제 위에서 각 가치의 순차적인 위계를 정해 매체의 객관성과 사회적 정의 사이의 충돌을 막는 좀 더 합리적인 모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열린 건 ‘판도라의 상자’(박상현)가 아닌 좀 더 나은 길로 향하는 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저 멀리 앞선 선도 그룹이 해줄 수 있는 일 아닐까. ‘JTBC 뉴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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