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효민 PD, 윤신혜 작가 “[말하는대로]는 재미의 의미를 다르게 써 볼 수 있는 프로그램”

2017.01.19
지금 가장 논쟁적인 주제를 말할 수 있는 프로그램. JTBC [말하는대로]는 ‘말로 하는 버스킹’을 콘셉트로 대로에 선 버스커들이 각자의 주제를 갖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이나 인권, 인종, 정치 등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면서도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내용들이 등장한다. 전달하는 주제에 따라 프로그램이 예능이 아닌 교양으로 분류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 [말하는대로]를 만드는 정효민 PD와 윤신혜 작가에게 ‘말로 만드는 예능’의 의미를 물었다.

윤신혜 작가, 정효민 PD(왼쪽부터)

요즘 SNS에서 [말하는대로] 클립 영상이 인기가 많다.
정효민 PD
: [말하는대로] 기획안을 쓸 때부터 SNS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나부터가 TV 콘텐츠보다 SNS의 클립들을 많이 본다.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이슈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토크쇼들은 한 명의 게스트가 나와서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SNS에서 유통되기에는 고(高)맥락이다. SNS의 영상들은 2~5분 정도 길이가 돼야 유통이 가능하다. [말하는대로]는 버스커의 이야기가 한 명당 10~15분 정도로 방송에 노출되기 때문에 2~3개의 클립으로 분절해 SNS에서 볼 수 있도록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SNS의 클립 영상을 오히려 TV에 맞게 가공한 형식이다.

[말하는대로]는 어떻게 기획을 하게 됐나.
정효민 PD
: 프로그램을 시작하긴 해야 하는데 내가 슬럼프였는지 어느 날부터 예능 프로그램이 다 재미없게 느껴졌다. 그때 가벼운 예능 혹은 현실과 관계없는 예능들이 주류가 되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TV 밖에서는 한창 강연이나 토크 콘서트가 붐이었다. 사람들이 다시 현실과 관계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는 타이밍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말하는대로]가 새로운 포맷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으면 좀 신선하고 재미있는 예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 방송에서 MC 유희열이 기획서를 보고 “재미있을까?” 이렇게 반응했는데,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정효민 PD
: “의미는 있을 거 같다. 그런데 재미가 있을까?” 회사나 제작진이나 똑같은 반응이었다. 예능에는 재미와 웃음이 있어야 하는데, 재미와 웃음은 서로 다른 차원의 의미다. 재미가 있으면 큰 틀에서 볼 때 예능이고, 꼭 웃음이 없어도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새로운 여지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윤신혜 작가: 정효민 PD와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고, 허투루 기획할 분은 아닌데 기획안을 읽어보면서 ‘이게 재미있나? 나 이번에 되게 재미있는 거 하고 싶은데’ 이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웃음) 하지만 재미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아가는 것, 배우는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재미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써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프로그램을 같이 하게 됐다. 지금은 프로그램을 하면서 말도 곱씹고 들으면 재미있다는 것을 인터뷰, 현장, 방송을 통해 느끼고 있다.

회사도 같은 방식으로 설득했나.
정효민 PD
: 회사에서는 “일단 해봐”라고 했다. JTBC는 파일럿을 1~2회로 안 가고, 7~8회 정도로 길게 보는 느낌이다. 이 포맷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전혀 감이 안 와서 첫 녹화 전에 시뮬레이션 촬영을 해보기도 했다. 작년 8월 가장 더웠던 날 연남동 공원에서 스피치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과 길거리 버스킹을 해봤다. 처음에는 다섯 명이 모였고, 카페꼼마에서 했던 두 번째는 두 명이 모였다. 망했구나, 이건 할 수 없는 형식이구나 싶었다. (웃음) 그런데 편집을 하면서 회의를 해보니, 많은 사람이 듣지 않아도 TV 화면을 통해서는 강연, 토크 프로그램보다 오히려 더 집중력이 있을 수 있겠구나 판단했다. 첫 촬영보다는 시뮬레이션 촬영이 기억에 더 남는다.

스피치를 하고 있어도 사람들이 안 듣고 그냥 지나가나.
윤신혜 작가
: 그냥 지나간다. 초반에 기획회의 할 때 강연 콘셉트를 잘 몰라서 강연을 100회 이상 하신 전문 스피치 선생님들에게 자문을 구했었다. 그분들에게 시뮬레이션 버스킹도 부탁했었는데, 그분들에게도 무한도전이었고 며칠 동안 악몽을 꿨다고 했다. 자기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니까. 그런데 적은 사람이지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 자리를 못 뜨고 계속 들어주시는 분이 있긴 있었다. 현장에서 어떤 분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라며 이야기를 듣고 우셨다. 처음에는 그걸 보고 ‘저게 울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게 힘이라면 힘이겠구나’ 싶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의외의 장소와 상황에서도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면 감정이 소통할 수 있구나를 처음 느껴서, 이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첫 녹화에서는 원하는 그림이 나왔나.
정효민 PD
: 그렇다. 15~20명 정도 되는 분들이 들어주셨는데, ‘그래, 이 정도라면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촬영한다고 난리법석도 아니고, 사람들의 일상에 들어가서 마이크 들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은 지나갔고, 앉아서 듣고 싶은 사람은 듣고. 강요받지 않는 그 느낌이 이색적이고 좋았다.
윤신혜 작가: 지인이 녹화장 주변에 왔다가 유럽식이라고 칭찬해줬다. (웃음) 보통 촬영하면 “가까이 가지 마세요”라고 제지하거나 “빨리 지나가라”고 하는 등의 통제가 있는데, [말하는대로]에서는 그 안에 질서가 있고 지나갈 사람은 그냥 지나가고 그래서 굉장히 유럽식이었다고 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데, 부담감은 없었나.
정효민 PD
: 부담감보다 기대감이 있었다. 강연/토크 프로그램은 준비된 상황, 틀 안에서 진행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게 낮아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불특정 다수 앞에 갑자기 섰을 때, 서로 알 수 없는 눈빛과 눈빛들이 마주했을 때, 사람들 표정이 달라지고 사람들 사이에 교감이 일어나는 걸 나는 봤다. 그 순간들을 담을 수만 있다면 이 프로그램은 성공하겠다고 생각해서, 사실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더 중요했다.

거리로 나가기 전 스튜디오에서 버스커들을 소개하는데, 스튜디오를 굳이 AA(알콜중독자 치료모임)룸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정효민 PD
: 연예인과 비연예인, 전문가와 비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섭외할 생각이었는데, 사람들이 MC, 버스커, 연예인 이런 구분 없이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랐다. 처음에 기획회의 할 때는 카메라도 빠지고 비공식적인 느낌의 자리에서 토크를 해보는 것을 생각하다가, AA룸 형식으로 가게 됐다.
윤신혜 작가: 그 모임에 가면 자기 이름 정도만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말문은 갑자기 버스킹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걸 예능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그런데 조연출 중에서 한 명이 말문 어떠냐고 했는데, 그거 괜찮다고 생각해서 진짜 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장면을 넣으면 편하게 장면 전환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건 싫어서 말문을 통해 순간이동이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말문도 그렇고 프로그램에서 말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정효민 PD
: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할 당시에는 말하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던 것 같다. SNS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매장되고, 말 하나만 잘하면 개념 있는 사람이 되고. 하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분위기가 되면 말하는 게 재밌어진다. 신중하게,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줄 수 있는 그런 방식이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작은 바람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나온 버스커들을 사람들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줬으면 좋겠다. 너무 비판이 많아지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TV에서 더 다양한 의견이 많아질 수 있다. 예능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면, 예능에는 공허한 웃음만 남는다.

[말하는대로] 첫 회에서 서로의 의견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말하는대로]에서는 버스커가 말을 던지는 거지 실질적으로 논의의 장은 SNS상으로 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효민 PD
: 무게중심을 조금 다르게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TV는 올드 미디어고, TV에서 나오는 논조나 수면 아래 깔려 있는 가치관도 올드하다. 하지만 [말하는대로]에서 나오는 가치들은 현재의 가치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다. TV에서 보기 어려운 의견들을 소개해주고, 새로운 시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손아람 작가의 경우를 보자면,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관점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페미니즘이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관점들이 소개됐을 때, SNS에서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더라도 보기 전과 후는 갈릴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이재명 성남 시장의 영국 브렉시트에 관한 주장에 대해 틀렸다는 반론도 있다. 이 경우도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했던 건가.
정효민 PD
: 나도 이재명 성남 시장에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브렉시트에 관해 주류에서 해석하는 방향이 있다면, 이재명 시장의 경우 자기가 생각하는 브렉시트의 의미를 말해볼 수 있는 거다. 그게 전혀 틀린 맥락이 아니라면. 방송 이후 “저렇게 생각하는 것은 틀렸다” 혹은 “저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 맥락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같은 논쟁 역시 우리 프로그램에서 바라는 부분이긴 하다. 물론, 방송하기 전에 전문가들에게 이게 가능한 맥락인지 팩트체크는 한다.

섭외는 어떤 기준으로 하나.
윤신혜 작가
: 각 작가들이 각 분야에서 궁금했던 분들을 정리해서 일단 무조건 만난다. 하루에 5~8명 정도를 만난 적도 있다. 말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무조건 만나고, ‘이 정도 주제라면 화두를 던질 만하다’ 혹은 ‘할 말이 있다’고 생각되면 추후에 같이 원고 작업을 진행한다.

윤신혜 작가와 정효민 PD는 SBS [스타킹]에서 같이 일한 것으로 안다. [스타킹]도 일반인이 출연해 스타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말하는대로]와 유사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윤신혜 작가
: 가끔 농담으로 [스타킹]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주제가 확실하고 빛나는 관점이 많지만, 방송에 나온 적이 없는 분들의 경우에는 2~3주 동안 담당자들이 붙어서 원고를 수정하고 스피치 연습을 시킨 후 방송에 나간다. [스타킹] 때도 지금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특히 말은 사람이 매력적이어야 잘 들리기 때문에, 손짓이나 움직임에서 매력을 발견한다면 “선생님은 이렇게 움직이실 때 매력이 있다. 어렵겠지만 움직이면서 말을 해봐라” 같은 조언도 해주고 원한다면 스피치 학원에 가서 대학생 20명 정도 앞에서 사전연습도 한다. 그 과정을 녹화해서 새는 발음, 안 좋은 습관 등도 잡아주게 된다. 섭외를 거절할 때 항상 “프로그램은 좋은데, 나는 나가서 말할 자신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만들어드릴 테니 용기를 내서 오시면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다. (웃음)

회사에서는 [말하는대로]를 어떻게 평가하나.
정효민 PD
: 다른 방송사도 그렇겠지만 2040 시청률이 1순위이고 그 외에 화제성, 주관적인 평가, 광고 등 여러 가지 지표들이 영향을 미치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말하는대로]는 아직 애매하다. SNS에서 화제성은 매우 좋고 전체 시청률도 굉장히 안정적이지만, 2040 시청률이 들쭉날쭉하다.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게 보고 있는 것 같다. 2040 시청자분들이 본방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말하는대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이 정치와 잘 붙는 것 같다. 혹시 대선에 대한 계획이 있나.
정효민 PD
: 우리도 웬만하면 달려보고 싶다. 과거 대선 주자들이 예능을 자신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이용했는데, [말하는대로]는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 [말하는대로]는 누군가의 의견이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어서 정치인들에게만 효용이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60일 내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선거법상 대선 날짜 기준으로 90일 전에는 방송 출연을 못 하니, 헌재에서 인용 판결이 나는 순간 이미 대선 후보들은 출연이 어렵다. 그래서 조금씩 대선 후보 섭외를 시도하고 있는데, 앞으로 상황에 따라 어떻게 될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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